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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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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광역시 구청장을 임명제로 바꾸고 구의회를 폐지한다'
'홍성-예산, 안동-예천은 여론조사 없이 강제 통합한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이하 지방행정개편추진위)가 지난 13일 본회의를 통해 의결한 내용이다. 74개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겠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들끓고 있다.

지방행정개편추진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도 발끈했다. 안 교수는 24일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자치구가 하급기관이냐'며 "한국의 지방자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방행정개편추진위에 대해 "반민주적 발상이자 지방자치를 척살하려는 무모한 결정"이라며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지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통념의 오해... 행정규모 커질수록 효율성 떨어져"

그는 추진위의 무리한 결정배경과 관련 우선 '통념의 오해'를 꼽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행정규모를 키우면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연구결과 행정 규모가 커질수록 민주성과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즉 행정단위가 작을수록 민주적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한 때 미국에서도 행정 단위 규모를 키우려는 세력들이 득세했지만 많은 부정적 연구결과와 경험으로 실제 실행에는 옮기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부 학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해 연구결과를 잘 알지 못하거나 무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스위스 글라루스 칸톤 주민들은 일 년에 한 번씩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일상적 삶과 직결된 주요 사안들을 직접 결정한다. 일종의 주민총회라 할 수 있는 란츠게마인데는 칸톤의 최고 의결기관이다(자료 사진).
 스위스 글라루스 칸톤 주민들은 일 년에 한 번씩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일상적 삶과 직결된 주요 사안들을 직접 결정한다. 일종의 주민총회라 할 수 있는 란츠게마인데는 칸톤의 최고 의결기관이다(자료 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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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다른 무리한 추진 이유로 "규모가 커질수록 국회의원에게는 유리하다"며 "국회의원들이 위협적 정치적 경쟁자인 시장, 군수, 구청장를 없애기 위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추진위원회의 자치구를 폐지 논거에 대해 하나하나 논박한 후 "시군구 존폐 결정은 오직 주민만이 결정할 수 있다"며 "구시대 관치행정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주민들이 나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지방자치학회(회장 안성호)는 내달 9일 오후 2시, 서울YMCA 강당에서 '자치구 폐지, 타당한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지방분권국민운동 등이 참여한다.

다음은 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와 나눈 주요 인터뷰 요지.

"74개 지방자치단체 폐지, 지방자치 척살하려는 무모한 결정"


-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개편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진위 역할은?

"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지난 해 2월부터 27명의 위원(위원장 강현욱)이 활동하고 있다. 주로 지방행정개편추진방향에 대해 논의해 왔다. 특별법에 '위원회 의결내용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어 일정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원 대부분이 지방자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주류 정치권과 정부의 의도대로 지방자치체제 개편이 이루어질 경우 우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 왔다"

- 지방행정개편추진위가 내놓은 74개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는 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치구의 주민이 30만이나 되는 지역에 지역의회를 두고 민선구청장을 두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외국 대도시에 대한 사례 제시도 매우 편향돼 있다. 미국과 영국의 예만 보더라도 한국의 자치구 같은 자치 단위가 큰 권한을 갖고 있는데 추진위 결정안에서는 그 반대로 보이도록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상식 수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한국의 지방자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지방자치를 척살하려는 무모한 결정이다"

- 왜 이 같은 무리한 결정이 나왔다고 생각하나?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치단체 규모가 커질수록 행정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통념의 오해'다. 지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일리노 오스트롬(EIinor Ostrom)은 '중앙집권화와 합병은 대부분 실패했다. 중앙집권화가 효율성을 높인다는 통념은 그릇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지방분권적 다중심체제가 단일중심체제보다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때 행정 단위 규모를 키우려는 세력들이 득세했지만 유사한 많은 연구결과가 알려지면서 실제 실행에는 옮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부 학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해 이 같은 연구결과를 잘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이해관계다. 정치인들은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 시군구를 없애면 국회의원들이 위협적 정치적 경쟁자인 시장, 군수, 구청장이 없어진다.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행정개편 추진한다면, 공론화 과정 거쳐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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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개편을 추진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보나?
"금치산자 등 판단능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의 운명은 스스로 판단하게 하듯이 공법인격인 자치구의 합병여부도 자기결정 원칙에 의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즉 주민들이 합병(안 교수는 '통합' 대신 '합병'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에서도 '합병'으로 표기한다)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듣고 논의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거치지 않고 합병또는 분리를 강요하는 것은 관치행정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합병을 강요하는 것은 '주민들은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민(주민)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방자치 정신의 명백한 훼손이다. 주민들에게 기회를 줘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시민정신에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 지방자치 아닌가"

- 합병으로 인한 장, 단점을 꼽자면?
"장점은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시장, 구청장의 갈등이 지나치게 격화되지 않도록 보완하는 기능을 들 수 있는데 갈등 또한 적절히 관리될 때 주민들의 바람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 갈등해소방안을 알게 하는 등의 순기능이 있다.

위원회에서는 자치구 폐지 및 합병이유로 '대주민 서비스 및 복지 불균형'을 말하고 있는데 자치구간 격차는 광역시와 특별시로 조정하면 해소될 수 있고 행정구로 전환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전혀 없다. 행정구로 전환하면 지역발전을 위한 구심점이 상실돼 자국적인 노력이 약화돼 낙후지역은 더 낙후하게 된다. 이 밖에 각종 인허가 사안에 대한 자치단체 간 다른 입장으로 사업차질을 들고 있는데 자치 단체 간 지역적 특수성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게 왜 문제라고 보는 것이 잘못됐다고 본다. 이는 오히려 지역을 획일화해 활력을 잃게 만들 것이다."  

- 위원회에서는 특히 예산-홍성, 안동-예천을 여론조사 없이 합병이 가능하도록 강제통합지역으로 분류해 놓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우선 합병 외에 방법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 방법이 있다. 우선 지금 상태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경계조정으로도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공동관리 방안도 있다. 아예 도청이전도시를 내포시 등 다른 자치단체로 분리하는 방안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주민들이 협상을 통해 합의하는 절차다. 이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알선, 조정, 중재 등으로 결론을 잘 내도록 도울 수 있다.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의 과정인데 중앙정부가 이를 돕기는커녕 합의과정을 무시하면 되겠나"

-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기초자치단체와 주민들이 합리적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논의기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마당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주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뒤에 서서 지켜만 보는 일부 광역자치단체의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시군을 통폐합 할 경우 잇점이 있다면?
"시군이 통폐합 될 경우 직선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수 감소가 초래된다. 대의민주주의에 결손이 생긴다는 것이다. 선출직 공무원 수의 격감은 재정부담은 줄여주지만 정책의 심의 결정, 다양한 주민이익 대변, 주민참여 기회확대, 민의 반영, 행정민주화 등 대의민주제 본래적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 기초정부와 주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방자치를 정치 관료들이 주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안성호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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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 사례를 들자면?
"특정한 나라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선진국 모두 한 명의 지방의원이 1000명 미만의 주민을 대표하고 있다. 북유럽의 대다수 국가들도 2000명 이하다. 한국은 지방의원 한 사람이 주민 1만 3000여 명을 대표한다. 더 이상 어떤 사례가 필요한가"

- 위원회 의결안의 향후 진행과정에 따른 대처방안은?
"위원회 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서는 대통령 보고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하지만 특별법에 '위원회 의결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어 연내 입법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원회 내에서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은 절차상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입법에 앞서 공론화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공론화 과정 이후에는 최종결정전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지방자치를 정치 관료들이 주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 위원회의 무리한 결정에 항의해 위원 사퇴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안다. 이후 행보는?
"사퇴는 유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과정이 남아있고 나를 위원으로 추천한 분들의 의견도 있고 해서 위원회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다."

-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전문적인 연구결과가 존중됐으면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합병하면 효율성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경험적으로 옳지 않다는 점이 국내외에서 모두 밝혀졌다. 여전히 합병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은 안 그래도 중앙집권적인데 합병하면 더 중앙집권화되고 지방자치와 역행하게 된다. 최종판단은 주민들이 하는 것이지만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충분히 듣고 논의를 거쳐서 숙고한 다음 주민투표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주민들은 나라의 주인이자 지방자치의 주인이다. 구시대 관치행정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주민들이 나서 지켜야 한다."


태그:#행정구역개편, #안성호, #지방행정개편추진, #행정개편,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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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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