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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캐러 나갔다가 만난 배꽃...
▲ 봄... 쑥 캐러 나갔다가 만난 배꽃...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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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있기엔 몸이 근질근질하도록 맑고 화창한 봄날이다. 겨우내 침묵했던 나무들도 온몸이 근질근질,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우는 기적의 계절. 봄이 자꾸만 마음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 같다.

가까운 은행에 볼일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대문 밖을 나섰다. 문밖을 나서자마자 머리 위로,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이 제법 뜨듯하다. 오월 날씨처럼 햇살이 두툼해졌다. 우체국 가는 길가 한쪽에는 유채꽃이 피어 긴 띠를 이루고, 또 한쪽에는 보리가 자라고 있다. 보리의 그 초록이 곱디곱다. 어느새 들판은 초록으로 뒤덮고 있고, 고개 들어 바라본 오봉산은 노란, 연두, 초록 등으로 다양한 색을 물들여 놓고 있었다.

문득, 봄이 되면 엄마가 어김없이 해주던 '쑥버무리' 생각났다. 어디선가 쑥버무리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간절해졌다. 봄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골목 어귀에서부터 코끝에 와 닿던 쑥버무리 냄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갓 쪄낸 쑥버무리가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리고 있던 그 시절. 그 시설이 그리운 것도 같았다.

쑥 캐러 나갔다가 모과꽃도 만나고...
어여쁘다 모과꽃...
▲ 모과꽃... 쑥 캐러 나갔다가 모과꽃도 만나고... 어여쁘다 모과꽃...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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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추억 속에는 음식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몇 살 때인지도 잘 모르는 아주 어린 날로 기억한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엄마가 부엌에서 막 쪄 온 찐빵. 그 훈훈한 추억도 그렇고, 추억 속의 인물과 나누었던 음식…. 이렇듯 모든 추억 속에는 음식이 있다. 배고팠던 기억이든지,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맛난 음식 혹은 슬픈 추억도 말이다.

쑥버무리를 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집으로 오자마자 비닐봉지와 칼을 챙겨 들고 다시 나왔다. 골목길로 깊이 들어갔다. 오봉산 자락 끝에 있는 집들 사이사이 텃밭 가장자리 둔덕에 파르라니 돋은 쑥을 캐기 위해 쭈그리고 앉았다.

아담하고 조용한 집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그 집은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그 앞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과수 밭이 있다. 지난 가을에도 노랗게 잘 익은 모과와 발갛게 익은 감을 사진에 담기도 했던 곳이다. 과수 밭에는 배꽃이 하얗게 피어 흐드러졌고, 모과 꽃도 피었다. 모과 꽃이 이렇게 예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수줍어 발그레해진 소녀의 뺨처럼 연한 분홍빛인 듯 주황빛인 듯 은은한 빛깔의 꽃이 가지마다 피어 환했다. 밭 가에는 거름더미를 쌓아놓고 있었다.

쑥버무리 생각에...쑥캐러 나갔다가 만난 제비꽃...
▲ 봄... 쑥버무리 생각에...쑥캐러 나갔다가 만난 제비꽃...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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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천천히 한발씩 옮겨놓으며 쑥을 캤다. 저쪽 끝까지 다다랐을 때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밭두렁 끝 비탈에 머위잎이 보였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좋겠다. 얼른 머위잎을 캤다. 돌아오는 길에 돋나물도 캐고, 민들레도 캤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뭘 하냐고 묻길래 돋나물 캔다고 했다. 처음으로 돋나물 김치를 담아볼 생각이다. 할머니에게 내친김에 돋나물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 물어보았다. 돋나물만 김치에 넣지 말고, 얼가리 배추를 조금 넣어 같이 담그면 더 좋다고 한다. 매운 고추도 몇 개 송송 썰어 넣고, 밀가루 풀도 쑤어서 그 물에다가 담그라고 조언해 주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 올라올 봄...
내가 건진 봄이다.
▲ 봄... 식탁에 올라올 봄... 내가 건진 봄이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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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우리 집 식탁에는 봄이 올라온다. 동네 슈퍼나 마트에서 사온 봄이 아니라 내 손으로 캐온 봄이다. 내가 가져온 봄을 남편에게 자랑도 할 겸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머위잎이랑 민들레잎은 몇 번을 씻고 헹궈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냈다. 돋나물과 쑥은 따로 잘 다듬어서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다. 돋나물은 국물 김치를 만들고, 쑥은 쑥버무리를 해 먹을 생각이다.

남편은 쑥국도 쑥버무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 봄에 쑥버무리 한 번 안 해 먹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엄마가 해 주던 쑥버무리처럼 그때 그 맛은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추억을 되살리며 쑥버무리를 해 먹어야겠다. 그래야 이 봄을 산 것 같을 것이다. 작년 봄에도 그랬고, 그 전해도 그랬고, 또 그 전전 전전해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봄도 쑥버무리를 먹어야 한다. 추억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이 봄도 아쉬움 없이 보낼 수 있을 테니까.


태그:#쑥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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