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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만나러...
▲ 등산선교회 계룡산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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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일대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위용을 자랑할 만한 산은 구경하기 힘들지만 아기자기 오밀조밀한 높이 400~500미터의 산들이 많다.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거제의 진산 계룡산은 거제의 10대 명산 가운데 으뜸이다. 계룡산(해발 566m)은 용을 닮은 데다 봉우리는 닭 머리와 흡사하다하여 계룡산이라 부른다. 마음먹고 찾은 산행이라면 주변에 있는 명승지와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거제 해금강을 비롯해 옥포대첩기념공원과 계룡산온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관, 내도와 외도, 소매물도 등등.

그럼에도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나였지만, 아직까지 거제의 산들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고 인색했다. 몇 년 전이었다. 남편이 꼭 한 번 계룡산을 가고 싶다고 해서 늦은 시간에 함께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래도 아무런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전국엔 빼어나게 아름답고 높은 산들이 많은데다 양산 인근만 해도 언제 찾아도 좋은 영남 알프스를 비롯한 좋은 산들이 있어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번개산행...산길 오르다 잠시 휴식...
▲ 등산선교회 번개산행...산길 오르다 잠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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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의 일로 거제시에 갈 일이 있는 집사님이 번개산행을 알려왔다. 산행을 떠나기로 한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는 산행 당일(11일)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번개산행으로 잡은 목적지는 거제 계룡산. 일 때문에 참석 못하게 된 남편은 계룡산 간다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같이 가자고 할 땐 노오! 노오! 하더니 웬일로?"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멋쩍어서 나도 웃었다. 그리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여럿이 함께 가니까 그 재미로 가는 거죠. 우리 둘이 갔을 땐 늦은 시간이었잖아요."

그랬다. 그저 함께 간다는 즐거움에 나도 따라나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산이 좋아 시간만 나면 산을 만나러 가는 벗도 있으니 그 에너지에 내 마음도 실렸다. 설령 궂은 날일지라도 함께 가 보자 생각하였다. 다행히 오전 중에 비가 그친다고 하니 믿어보자.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 계룡산...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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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로 향하는 승합차에는 8명의 사람이 탔다. 부산을 벗어나 거가대교를 타고 넓게 뚫린 도로를 달려 거제시에 도착했다. 거제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창엔 빗물이 엉겨 붙었다. 막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거제시에서 볼일을 다 본 후에 계룡산 들머리를 찾아 이동했다.

거제도포로수용소 근처 계룡사 아래 차를 세웠다. 계룡산 등산기점은 거제 실내체육관에서 산길 안내표지판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고 계룡사에서 오르는 길, 기독병원에서 오르는 길, 사상리 거제저수지에서 오르는 길 등이 있다. 대개는 실내체육관에서 산길 안내표지판을 따라 오르는 길을 택한다. 몇 년 전에 계룡산을 만나러 가다가 중도에 내려온 길도 바로 이 길이었다. 완만한 경사 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산책하듯 걸어 올라갔던 기억이 새롭다.

안개 속을 걷다
▲ 거제 계룡산 안개 속을 걷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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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바위를 타고...
▲ 거제 계룡산 안개 속...바위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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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가 산행기점으로 삼은 곳은 계룡사에서 오르는 길이다. 지도로 봐도 알 수 있듯이 들머리에서부터 힘겹게 치고 올라가는 직등 코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온 탓에 땅은 축축하게 젖었고, 습도가 높아 공기는 후텁지근하다. 막 산행로에 들어섰건만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입고 왔던 잠바는 애초에 벗어 배낭에 넣었건만 가벼운 옷차림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처음엔 완경사로 이어지던 길이 얼마 못가서 경사가 점점 높아지고 나무 계단 길에서 젖은 흙길로 이어진다. 올라갈수록 마치 땅이 눈앞에서 일어서는 것처럼 고도가 높아진다.

헉헉대며 올라가다가 임도를 만났다. 여기까지 차가 올라오나보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로 접어든다. 이곳은 야생화 천국이다. 여백이 느껴지는 등산로 양쪽 가에는 오밀조밀, 오종종한 야생화가 피어있다. 연보라빛 얼레지도 날아오를 듯한 표정으로 피어 지천이고 연한 하늘빛 종모양의 작은 꽃들도 무리지어 피었다. 하얀 제비꽃도 피고 손톱 끝만 한 꽃잎을 단 야생화도 눈길을 끈다. 장미꽃도 백합화도 벚꽃도 목련도 아름답지만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야생화에 더 마음 끌린다.

정상에서...
▲ 거제 계룡산 정상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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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땀을 많이 흘려보기는 최근 들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땀 흘리며 걷다가 잠깐 쉬고 또 걷다보니 드물게 불어온 상쾌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좀 많이 올라온 모양이다. 얼마쯤 가다보니 계룡산 약수터다. 바위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약수터의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상쾌하다. 함께 온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대숲 길을 지나 지척에 있을 계룡산 정상을 향해 걷는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우리는 안개에 갇힌다. 짙은 안개 속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기암들의 실루엣이 어렴풋하다. 짙은 안개를 헤치며 바위에 붙는다. 반전이다. 내내 육산을 걷다가 바위에 붙으니 짜릿한 전율이 인다. 잠자던 피가 생생하게 돌고 세포들이 소스라치듯 깨어나는 것 같다. 안개 속에 흐려져 희미하지만 조심조심 걷는 바위 옆은 낭떠러지다.

계룡산 약수터 옆 바위 식탁...만찬을 나누기 전 김미경 집사님의 신 아리랑 ...ㅎ
▲ 거제 계룡산 계룡산 약수터 옆 바위 식탁...만찬을 나누기 전 김미경 집사님의 신 아리랑 ...ㅎ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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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포위된 채 바위를 오르는 일행들의 얼굴은 뿌옇게 흐려 보이지만 표정은 밝기만 하다. 지척이 분간되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저만치 진달래도 피어 아련하다. 눈앞이 짙은 안개로 흐리다. 안개 속에서 바위에 붙어 오르고 로프를 잡고 오르고 바위를 더듬 듯 넘어간다. 얼마 정도 가니, 앞에 계룡산 정상 표시석이 있다. 드디어 정상석 앞에 섰다.

맑고 화창한 날엔 푸르른 바다 빛과 거제 시가지가 환히 보이겠다.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지척이 분간하기 어렵지만 어떠랴. 맑은 날 산행도 좋지만 안개에 갇힌 계룡산을 만나는 것도 운치있다. 안개 속에 사물은 지워져도 일행들의 얼굴은 모두 햇살처럼 밝기만 한데. 안개에 갇힌 채로 우린 한동안 계룡산 정상에 서 있다. 지독한 안개다.

야생화 천국...
▲ 거제 계룡산... 야생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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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천국...
얼레지꽃
▲ 계룡산... 야생화 천국... 얼레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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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왔던 길로 다시 되짚어 내려간다. 얼마쯤 내려가자 안개는 머리 위에 있다. 다시 만난 약수터. 약수터 바로 옆에 우리를 위해 준비라도 한 것처럼 편편한 바위 식탁이 있고 그 뒤에는 긴 나무 의자도 있어 여기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로 한다. 약수터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판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았다. 오늘 함께 온 성악전공 집사님의 <신 아리랑> 노래로 식사 시간을 행복하게 한다. 바위 식탁 위에 올려놓은 밥도 반찬도 가지가지다. 꿀보다 더 달디 달다. 만찬이 따로 없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말도 있지만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허물고 가깝게 이어주는 끈이기도 하다. 행복한 만찬을 나누고 하산 길에 선다.

내려가는 길에도 야생화들은 낮게 피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끈다. 그것들은 마치 대지와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이, 땅의 심장 박동소리 엿들으려는 듯이 귀를 바짝 대고 피어 군락을 이뤘다. 임도를 지나고 나무 계단 길로 내려가다가 처음 출발지였던 곳에 당도했다. 번개산행으로 택한 거제 계룡산. 별 기대 없이 만난 계룡산에 나는 오늘 반해버렸다. 남편이 한 번쯤 꼭 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언제 한 번 손잡고 함께 와야지. 그땐 몇 년 전에 못다 올랐던 실내체육관 옆 산길 안내도를 따라 걸어봐야겠다.

하산 길...
▲ 거제 계룡산 하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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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계룡산 들머리(11:15)-임도(12시)-계룡산 약수터-계룡산 정상(1시)-약수터(1:25)-
점심식사후 출발-임도(2:15)-주차장 도착(2:45)-부산으로 출발(2:50)



태그:#거제 계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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