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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공휴일이잖아요. 그날은 쉬어서 투표할 수 있어요(공공기관 청소노동자 50대 강아무개씨)."
"투표는 하죠. 우리 회사는 말 나올 일들은 처음부터 없게 하는데요(대기업 회사원 30대 신아무개씨)."
"소방관들의 경계근무를 강화해도 평소처럼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투표에 지장은 없습니다(소방방재청 방호조사과  천아무개씨)."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며(헌법 제24조), 근로시간 중에도 이를 행사할 시간을 보장받는다(근로기준법 제10조), 단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 공공기관 근로자 일부에 한해서다.

한 학습지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특수고용직노동자 A씨는 매 선거일마다 출근했다. 오는 11일 총선날에도 그는 정상근무를 한다. 10년째다. 중소기업인 'ㄷ'식품회사에서 일하는 B씨 역시 '10년째 무투표 중'이다. B씨는 "선거날 출근해도 거래업체들 모두 휴무여서 실상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항상 출근했다"며 "이번 선거날도 출근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 파견근로자란 이유로 '투표일에 출퇴근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의견조차 무시당한 이들도 있다. ㅁ용역업체 소속으로 ㅂ국립공원에서 파견근무 중인 C씨는 "회사와 국립공원 관계자들끼리 11일은 쉬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업무 특성상 주로 휴일에 근무하고, 평일에 쉬는데, 이번 총선일은 파견 근로자들에게 해당 안 된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9일 전국민주노동총연합(민주노총)은 "'노동자 투표참여 캠페인' 차원에서 지난 3일~8일 동안 전화와 이메일로 오는 총선일 투표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사례를 접수받은 결과, 783건을 제보받았다"며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고 발표했다.

또 제보 받은 업체 가운데 연락처를 파악한 364곳에 직접 확인한 결과 295개 업체는 시정을 약속했으나, 나머지 업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거나 특별한 대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법정 공휴일임에도 선거일에 정상출근을 하거나 출근 시간 조정이 안 돼 투표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글
 법정 공휴일임에도 선거일에 정상출근을 하거나 출근 시간 조정이 안 돼 투표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글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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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 침해 사례'  2010년 이후 확인된 것 없어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공공기관이나 정규직에 비해 노동조합이 없거나 300인 이하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투표권을 침해받기 쉽다"며 "투표율이 떨어지는 이유를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서만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고 싶어도 괜히 일자리를 잃을까 투표를 못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란 것이다.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도 '노동자의 투표권 침해'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박 부대변인은 또 "그동안 관련 법을 위반한 업체가 제대로 처벌받은 경우도 없었다"면서 "노동부에서 실태조사를 한 적도 없고, 처벌규정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 수준으로 세지 않다"고 했다. 사업주가 1시간이라도 투표 시간을 보장하면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문제인데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현행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노동부가 '투표권 침해 사례'로 처리한 것은 2006년 2건, 2007년 1건, 2008년 1건, 2009년 2건 등 모두 6건뿐이고, 2010년 이후로 확인된 사례는 없다. 근로자나 노동조합의 신고가 없는 이상, 노동부가 먼저 나서 실태조사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6건마저 형사처벌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에 노동부 관계자는 "공민권 행사를 보장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법 규정이 있지만, 매년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감독관이 사업장을 다니면서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체불 임금을 못 받았든가 하는 다른 사건도 많은데다 전국의 근로감독관은 고작 950명(지방청 기준)이라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하고, 사회적 분위기도 환기하자고 제안했지만 노동부 쪽에서 '굳이 만날 필요는 없다'고 거부했다"며 "노동자들의 참정권은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것인 만큼, 노동부가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데 의지가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투표일(11일) 당일까지 '노동자 투표참여 캠페인'을 지속하고, 이후 현재 임시공휴일인 투표일을 유급휴일로 정하는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게다가 10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노동부가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산업인력관리공단 등 10여개 산하기관 등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투표 권유나 정당활동 등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돼 선거개입 논란까지 일고 있다.

노동부는 이 교육이 "산하기관 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들에게 실시된 것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행위 부분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공무원이 아닌 산하기관 직원의 정당가입 및 투표 권유 금지 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기관 노동자들은 실제로 그런 교육을 받았다며 "거짓 해명"이라고 반박했다.


태그:#투표권, #4·11총선, #투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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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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