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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일 오전, <숨> 편집인 효진님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입양간 강아지 황금이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었습니다. 산책을 하던 중 땅에 떨어진 뭔가를 집어먹었는데, 순식간에 경련을 일으키며 피를 토했고,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차에 태웠지만 결국 차에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숨> 사무실에서 임시보호하던 황금이는 1월 초 새주인에게 입양을 갔으니, 그 집에서는 100일 정도 지낸 셈입니다. 황금이는 유기견이었습니다. 8월 22일 효진님이 성미산 마을에서 발견한 황금이는 마포구 유기동물 담당 병원에서 두 달가량을 지내다 10월 21일부터 <숨> 사무실에 새둥지를 틀었습니다. 총 두 달 보름 정도를 사무실에서 보낸 셈이죠.

지자체에서 지정한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무한정 유기동물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구조돼 들어오는 강아지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죠.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조한 개가 안락사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었고, 무턱대고 사무실로 데리고 올 수도 없었습니다.

<숨> 사무실은 단독으로 쓰는 곳이 아니라 성미산 마을극장 식구들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성미산 마을극장팀은 황금이를 받아주는데 동의했고, 10월 21일 황금이는 드디어 병원 밖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길 위의 천사, 황금이... <숨> 사무실로 오다

황금이가 병원에서 나온 첫날 산책 도중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진.
 황금이가 병원에서 나온 첫날 산책 도중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진.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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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떠나 사무실로 오던 날, 병원 직원 언니들은 황금이 칭찬을 많이 했더랬죠. 황금이는 항상 배변을 실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패드를 깔아주고 문을 열어주면 그제서야 용변을 봤습니다. 병원 언니들은 황금이를 '이쁜이'라고 불렀습니다.

풀과 잔디, 나무, 꽃을 좋아하고 산책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황금이. 지난 가을 성미산 마을 산책길에서.
 풀과 잔디, 나무, 꽃을 좋아하고 산책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황금이. 지난 가을 성미산 마을 산책길에서.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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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이는 산책을 좋아했습니다. 끈을 달아 계단을 내려갈 때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냅다 내달리는 통에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황금이는 꽃, 잔디, 나무를 좋아했죠. 거의 아스팔트로 돼 있는 길에서도 약간의 흙이나 잔디 있는 곳을 찾아가려고 애쓰곤 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정원이 있던 집에서 살며 풀숲 안에 배변을 했을 거라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황금이는 호기심이 많아 온 동네의 전봇대와 기둥, 차 바퀴 등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물건에는 다른 강아지의 체취가 묻어있기 마련입니다. 황금이는 다른 동료의 소식을 알고 싶어하는 듯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접하듯이, 강아지 세계에서 전봇대는 방송국이자 신문사인 셈입니다.

황금이는 늘 사람들을 궁금해 했습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쳐다보고 꼬리 흔들고, 낯선 손님이 오면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종종 제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옆쪽으로 와서 코로 내 팔을 치기도 했습니다. 심심하다고 놀아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반응하고 소통하고 싶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죠. 강아지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 매우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심심하다고 한껏 어지럽히고 나서. 혼날까봐 표정이 약간 변했습니다.
 심심하다고 한껏 어지럽히고 나서. 혼날까봐 표정이 약간 변했습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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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황금이가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와 한꺼번에 등이며 머리며 만지고 떠드는 데도 황금이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황금이는 성격이 순하고 착한 개였습니다.

황금이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황금이를 입양한 분은 부부 교사로 막상 황금이를 데려간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한 번 키우면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책임감 때문이죠. 아내분은 몇 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는 남편분에게 '우리가 데려가지 않으면 앞으로 황금이는 어떻게 되겠어'라며 설득했습니다.

황금이가 떠나던 날. 낯선 곳에 낯선 사람과 함께 가는 것에 불안해 할까 봐 저는 황금이와 함께 입양자분의 차에 함께 탔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내 무릎 위에 놓고요.

입양가는 날 차 안에서. 무릎에 머리 대고 있는 모습. 언제나처럼 그냥 병원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입양가는 날 차 안에서. 무릎에 머리 대고 있는 모습. 언제나처럼 그냥 병원간다고 생각했을까요.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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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이 없는 집은 황금이에게 불안했기 때문에 입양자분은 황금이가 지낼만한 공간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황금이는 지난 11월 임시보호소 담을 넘어 탈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임시보호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 오후 9시 반. 택시를 타고 의정부시에 도착한 것이 10시 반. 사력을 다해 황금이를 찾다가 발견한 것은 익일 오전 4시. 황금이를 붙잡자 놀란 녀석은 제 손을 물었지만 놓지 않았습니다. '놓치면 끝이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황금이를 다시 잃어버리고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죠. 황금이는 유기견 출신이고 두 번 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볕을 쬐고 있는 황금이. 사진에 보이는 것이 입양자분이 직접 만든 담입니다.
 볕을 쬐고 있는 황금이. 사진에 보이는 것이 입양자분이 직접 만든 담입니다.
ⓒ 황금이 입양자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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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그런 황금이의 특성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발돋움할 곳이 없도록 세심하게 설계됐죠. 황금이의 집 역시 입양자분이 직접 만드셨습니다. 사람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직한 공간에 단열재도 여러 겹 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살짝 기울여 만든 지붕은 비가 오면 빗물이 고이지 말고, 아래로 흘러야 한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죠. 입양자분의 부모님도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면 추울 것 같다며 매우 걱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입양자분이 직접 만든 황금이 집. 공간도 넉넉하고 따뜻하게 단열재도 여러겹 넣었습니다.
 입양자분이 직접 만든 황금이 집. 공간도 넉넉하고 따뜻하게 단열재도 여러겹 넣었습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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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이를 입양자분 집에 두고 나오는데 황금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는 것을 봤습니다. 언니가 자기를 낯선 곳에 두고 가니까 뭔가 두려웠겠죠. 그래도 자기 집에서 진짜 주인과 적응해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이런 일을 겪은 이후 강아지를 보러 가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슴에 묻는 거죠. 개를 위해서도, 입양자분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는 판단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끔 입양자분이 보내주는 새로운 소식들에 만족합니다. 소소하고 작고 기쁜 일상들. 황금이가 갔던 곳. 황금이가 만난 마을 아이들 이야기….

황금이는 이렇게 여러 사람을 하나로 엮어 줬습니다. 황금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만날 일도, 서로 대화를 나눌 일도, 서로를 위로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황금이의 지병(심장사상충) 치료비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지원해 줬습니다.

카라는 100%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유지되는 시민단체입니다. 여러 시민들이 모아 준 돈으로 황금이는 건강을 회복한 셈이죠. 수많은 시민들과 우리와 황금이는 그렇게 또 연결됐습니다.

황금이는 한동안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큰 개인데도 흔쾌히 태워주신 택시아저씨, 너무 감사드립니다. 황금이 치료 도와주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독립문동물병원 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황금이는 한동안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큰 개인데도 흔쾌히 태워주신 택시아저씨, 너무 감사드립니다. 황금이 치료 도와주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독립문동물병원 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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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라는 동물은 참 이상합니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마을이든 그 강아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누가 밥을 챙겨 줄 것인가' '누가 오늘 산책담당인가' '오늘 아픈가' '저 행동은 무슨 의미일까' 등등. 소원했던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강아지를 돌보면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아지는 표면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니 가족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인 듯합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강아지를 돌봐주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강아지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동물들이 살기에 척박한 세상, 하지만 희망도 있다

황금이가 주워먹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쥐를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쥐약 묻은 먹이, 혹은 길고양이를 죽이기 위해 독을 묻힌 것일 듯합니다.

물론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쥐들이 들끓지 않겠지요. 서로 천적이니까요. 간혹 고양이를 너무 싫어하시는 분들에게 왜 싫으냐고 물으면 속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더군요. 그냥 울음소리가 싫고, 눈빛이 싫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피폐화시킬 정도의 피해가 아니라면 굳이 고양이들을 박멸해야 할까요. 공존을 위해 잠깐의 불편조차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여유없는 사람들의 시선은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고양이들이 우리 인간에 비해 약자고, 무엇보다 그들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황금이도 그런 사람들의 무심한 행동에 희생됐는지도 모릅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2010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유기동물은 총 10만899마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중 2만6996마리가 안락사되고, 2만5096마리는 분양, 1만9066마리는 보호소에서 폐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보호소에 신고를 받고 입소한 동물에 한정된 통계입니다. 길거리에서 '로드킬'을 당해 죽었거나 누군가 식용으로 활용한 강아지까지 합하면 15만 마리는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연적 생을 다하지 못하고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안락사도 끔찍하지만, 길거리에서 다쳐 고통스럽게 방치돼 죽거나 낯선 사람의 손에 끌려가 공포 속에서 죽어간 동물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제가 동물보호 분야에 관심을 가져 채식을 시작하고,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5년도부터니 저도 벌써 8년 차 활동가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다치고 불쌍한 동물을 보는데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길거리를 떠도는 개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치고 학대받은 동물을 봐야할 때가 되면 심장이 쿵쿵 뜁니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지만 심리치료는 꿈도 못꾸고, 아직도 여전히 최소생계비 같은 돈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나는 천사도, 영웅도 아닙니다. 대학교 때부터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죠. 진리를 향한 열정.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잘못됐고,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리니까요.

황금이의 일상이 적힌 그림일기. 그림과 글, 황금이의 삶이 적혀있죠. 그림은 황금이가 사상충 치료받던 장면입니다.
 황금이의 일상이 적힌 그림일기. 그림과 글, 황금이의 삶이 적혀있죠. 그림은 황금이가 사상충 치료받던 장면입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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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휴대전화 사진첩의 절반은 모두 황금이 사진들이고, 사무실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황금이가 있습니다. 황금이의 일상을 담은 그림일기 책도 제가 만들었고, 황금이와 함께 산책갈 때 배변봉투를 담았던 가방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렇게 황금이가 남겨놓은 추억이 아직도 곳곳에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역시 이별은 늘 가슴 아픕니다. 사랑하면 기쁨도 있지만, 고통도 따르죠. 그래도 끊임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이겠지만, 황금이가 우리에게 오고, 함께 정을 나누게 된 과정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황금이 같은 유기견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 문제입니다. 결코 자연의 문제가 아닙니다. 키우던 개를 버리는 것은 순식간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황금이 같은 강아지를 구조해 보호하고, 치료하고, 입양 보내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 돈이 소요됩니다.

아무리 동물보호법과 제도가 발전한 선진국이라도 유기동물은 끊임없이 나옵니다.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 길거리를 헤매다 다치고, 학대받고, 보호소에서 안락사하는 동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동물을 통해 세상을 보니 사람들이 참으로 잔인하고 무심하더군요. 하지만 희망도 있습니다. 황금이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황금이에게 내준 넉넉한 마음과 정성은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척박하지만은 않은 것임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야겠죠. 다르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그:#더불어숨, #동물보호책 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유기견, #동물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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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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