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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지난 2008년 9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 4층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점검 1팀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당시 사무실에 혼자 있었던 김충곤 팀장이 전화를 받자, 전화를 건 남자는 대뜸 꾸짖는 말투로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이 버젓이 게재되어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것을 왜 처벌하지 않고 가만두느냐"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날 오후 김 팀장 앞으로 CD 1장과 A4 문서 2장이 든 행정봉투가 배달됐다. 종이에는 그 동영상이 링크돼 있다는 블로그 주소와 CD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상은 김충곤 팀장이 검찰 조사에서 지원관실이 어떻게 '김종익씨 사찰'에 착수하게 됐는지에 관한 진술을 요약한 것이다. 김 팀장은 김종익씨 사찰을 최일선에서 수행한 인물이다.

지원관실이 왜 직무범위를 넘어 한 민간인을 그토록 집요하게 사찰했는지 궁금증을 푸는 데 '제보자가 누구인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김충곤 점검1팀장이 제보자로부터 받은 우편물의 내용에 대해 검찰에 진술한 내용.
 김충곤 점검1팀장이 제보자로부터 받은 우편물의 내용에 대해 검찰에 진술한 내용.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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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는 왜 하필 '지원관실'에 제보했을까

김 팀장의 진술에 따르면, 김종익씨 사건은 우연한 전화 제보에 의한 '인지 사건(위에서 하명받은 게 아닌 감찰기관 자체 착수 사건)'이라는 것이다. 모든 지원관실 직원들은 김종익씨 관련 사실을 제보받은 경위에 대해 입을 맞춘 듯 한결같이 김충곤 팀장의 얘기와 똑같이 진술한다.

그러나, 그의 진술은 검찰의 삭제파일 복원 기술에 의해 금방 거짓임이 드러난다. 점검 1팀의 한 직원 컴퓨터에서 '다음 블로그 'gold&wise' 게시글 확인보고'라는 한글 삭제파일이 발견된 것이다. 'gold&wise'는 김종익씨의 블로그 이름이다.

문제는 이 파일의 최초 생성시각이 7월 24일으로, 김 팀장이 처음 제보받았다고 주장한 9월 10일 보다 훨씬 앞선 시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종익씨 사찰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제보를 받은 것이란 주장을 받아들이더라고도, 며칠 사이에 급속도로 진행된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다. 제보자는 대통령에 대한 비방 사건을 왜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지원관실에 제보했을까. 당시는 7월 21일 지원관실이 출범하고 불과 3 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따라서,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고발하려는 목적이라면 곧바로 떠오르는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고 굳이 이름도 생소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제보하는 이유가 과연 뭔지 궁금해진다. 당시엔 지원관실이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만약 제보자가 정말 있다면 그는 아마도 공무원일 것이며, 그 중에서도 공공기관 조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검찰이 김충곤 점검 1팀장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 일반전화로 제보가 온게 맞냐'고 추궁하고 있다.
 검찰이 김충곤 점검 1팀장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무실 일반전화로 제보가 온게 맞냐'고 추궁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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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의 연락처도 적어두지 않았다?

제보를 받은 김충곤 팀장의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제보자가 보내준 우편물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을 어떻게 했냐는 검찰의 질문에 "CD는 동작경찰서로 이첩할 때 보냈으며, 나머지 설명자료들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익명의 제보자가 보내는 자료는 단서로서의 의미밖에 없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아리송한 답변을 한다. 과연 자료의 중요성이 제보자가 익명이냐, 실명이냐에 좌우될까.

게다가 김 팀장은 첫 제보를 받고 이틀 후인 12일 제보자와 마지막 통화를 한 이후 전혀 연락을 한 사실이 없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그의 연락처를 적어두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사안 자체가 중요하므로 별도로 기재하여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찰 과정에서 언제 다시 제보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사안 자체이므로' 제보자의 연락처는 남겨놓지 않았다는 것을 믿기는 어렵다.

인지사건이라면서 '하명사건처리부'에 기록

지원관실 직원의 USB에서 발견된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에 김종익씨 사찰 건이 포함되어 있다.
 지원관실 직원의 USB에서 발견된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에 김종익씨 사찰 건이 포함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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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의문점들 때문에 과연 제보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관심이 쏠리게 된다. 제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윗선에서 내려온 '하명' 사건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대통령 비방 내용이라 해도 이미 수백만 명이 본 동영상을 단순히 자기 블로그에 링크시켜 놨다고 해서 지원관실이 그토록 집중적으로 달려들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백보 양보해 제보자가 정말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의 말을 쉽게 넘길 수 없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지원관실에 근무했던 김기현 경정이 검찰에 제출한 USB 속의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 목록에 이 사건이 들어있는 것이 주목된다. 여기에는 김종익씨 사찰 건이 '인터넷 VIP 비방글'이란 제목으로 들어있고 '인터넷 대통령 비방글 처리대책 논의'라고 부연설명돼 있다.

이에 대해 김충곤 팀장은 또다른 진술에서 "(이 사건은) 하명사건이 아니라 인지사건인데, 2008년에는 하명사건과 인지사건이 하명사건처리부라는 하나의 목록으로 작성되는 바람에 하명사건인 듯한 오해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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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이 발견된 '1팀 현재 추진중인 업무 현황'이란 문서에 나오는 '인지' 사건 6건 가운데 '하명사건처리부' 목록에 올라있는 것은 김종익씨 사찰 건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종익씨 "제보 아닌 하명사건 분명"

한편, 사찰 피해 당사자인 김종익씨는 5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제보자는 없다"며 "청와대에서 내려온 하명사건이 분명하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이어 "청와대가 이광재 의원을 잡기 위해 요주의 인물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해오다가 마침 쥐코 동영상이 내 블로그에 올라오자 지원관실에 조사 하명을 내린 것으로 본다" 말했다.

그는 지난 2010년 6월 방영된 <PD수첩>에서는 원충연 점검1팀 직원이 전 국민은행 노무팀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종익씨 관련 내사를) 전부터 계속해오고 있었다", "쥐코 동영상이 블로그에 올라오자 이제 구체적으로 드러내놓고 내사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는 증언을 전하기도 했다.


태그:#김종익, #민간인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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