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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바람이 불었다. 4월을 맞이하는 양 볼을 에이는 차가운 봄바람 !

문화집회를 알리는 웹자보
▲ 4.3의 기억, 오늘의 강정 문화집회를 알리는 웹자보
ⓒ 고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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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육지에 사는 제주사람과 한국 작가회의가 주최하는, '문화집회 : 4.3의 기억, 오늘의 강정'이라는 문화공연 형식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날마다 구럼비를 발파하는 해군기지 건설 소식에 뒤엉켜,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을 때리고 연행하고, 가두는 소식에 먹먹한 아픔으로 짓눌려 며칠 몇 날을 그렇게 뒤척이며 보냈는지 모른다.

해마다 4월이면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가슴앓이를 더욱 더 심하게 했다. 내 고향 제주는 바람이 많다. 삼다의 섬 제주, 걱정 근심과, 치기어린 마음으로 사회 정의를 위한다고 내달리던 20여 년 전의 내 가슴에 불어대던 가슴 벅찬 회오리 바람, 살을 비집고 비틀어 대듯 울어대는 겨울 삭바람에 두 손을 호호 불어대던 어린 시절, 깜깜한 밤하늘에 집집마다 제삿밥을 날라주며 마냥 좋아라 뛰어다니던 신바람.

하지만, 내 청춘이 비틀리듯, 내 몸을 흔들어대던 그 바람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많이 다른 것들이었다. 제삿밥을 먹기 위해 뛰어다니던 그 신바람은 64년 전, 북촌 초등학교 옆 옴팡밭에 널부러진 시신들 위로, 소개 당하고 쫒겨난 마을 사람들의 울음섞인 피바람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초가집을 삼켜버리던, 마을을 통채로 삼켜버린 불바다가 지옥처럼 엮여 있었다.

그렇게 바람은 언제나 나에게 혼돈과 고통 그 자체였다.

행사가 열리는 홍대입구 카톨릭 청년 회관 1층 카페 안젤로를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주최측에서 세심하게 붙여놓은 화살표를 따라 청년회관 입구로 들어서니, 인터넷에서 봤던 구럼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강정 마을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평화상단의 물품과 서적, 농산물을 판매하는 매대가 들어서 있고, 벽면에는 신영복 선생님이 써주신 '구럼비 바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마음을 비장하게 했다.

신영복 선생님이 보내주셨다는 글귀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 구럼비 바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영복 선생님이 보내주셨다는 글귀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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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내에는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작품을 사진으로 전시한 4.3사건 사진이 20여 점 , 카운터 옆으로는 강정에서의 투쟁과, 마음을 모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 작회의에서 준비한 시화전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노라니, 어느 새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미 연극판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문원섭씨의 사회로 문을 연 공연은 현기영 작가님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과거의 4.3 사건이 강정에서 벌어지는 국가 폭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인사하고 있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걸개그림에 걸려 있는 70 여일에 걸쳐서 강정의 구럼비 바위 파괴를 반대를 외치면서 죽음을 불사한 양윤모 영화 평론가의 모습을 기억하고 평화의 성지로 바꾸자고 설명하고 있다.
▲ 현기영 선생님의 인사말 과거의 4.3 사건이 강정에서 벌어지는 국가 폭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인사하고 있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걸개그림에 걸려 있는 70 여일에 걸쳐서 강정의 구럼비 바위 파괴를 반대를 외치면서 죽음을 불사한 양윤모 영화 평론가의 모습을 기억하고 평화의 성지로 바꾸자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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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wUKEUEOUbgQ
샌드애니메이션sand animation 제주도jejudo , 송아지

인사말에 이어서, 참석한 아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준비한 '송아지'라는 4.3 관련 애니매이션이 상영되었다. 뒤를 이어 작가회의 소속 조정 시인의 '선흘 목시물굴에서 만난 처녀 조수림'을 위한 진혼 굿이 벌어졌다. 살아 있었으면 70이 넘었을 수림씨는 아직도 17살 당시의 나이로 머물러 있었다. 편안하게 저승길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가라는 공연때문에 강연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정가악회는 공연을 위해 4.3 사건과 강정 해군기지 설치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서 행사 취지를 공유하고, 31일 공연에서 혼을 담아 순식간에 공연장은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 정가악회 알리오와 조정 시인의 선흘 목시물 굴에서 만난 조수림 정가악회는 공연을 위해 4.3 사건과 강정 해군기지 설치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서 행사 취지를 공유하고, 31일 공연에서 혼을 담아 순식간에 공연장은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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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인디언수니, 자전거탄풍경, 이우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선 공연이 김은경 시인의 '나의 꽃 나의 피'(김남주 시인의 나의 칼 나의 피를 변주함), 황규관 시인의 '구럼비의 상상력'으로 이어져 4.3 사건이 강정에서 어떻게 다시 변주되고 있는지를 노래했다.

이날 성미산을 지키려는 투쟁을 노래한 신보선 작가님의 '봄비 오는 날의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어느 동네 이야기'를 통해 서울시와 홍익학원에 맞서 생활의 터전을 지키려는 작은 노력이 제주 강정에서 벌어지는 해군투쟁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임을 간파했다. 강정에서의 투쟁도 현실에 천착한 공동체 회복, 생활의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의  격리를 막기 위한 투쟁임을 선언하였다. 신보선 작가의 낭독에 이어 성미산 투쟁과정에서 직장인들로 구성된 성미산 노래패 '진동'의 공연은 투쟁과 생활이 어우러진 사람들의 진정성과, 호소력 있는 트럼펫 소리로 '강정아'란 노래를 이끌어 큰 호응을 얻었다.

성미산 노래패 진동은 서울시와 홍익학원에 맞서 성미산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노래패이다. 신보선 작가의 호랑이를 잡으려는 작가와 삶과 조우하고, 일상의 기억, 기반들을 파괴하는 개발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투쟁을 강정 투쟁에 오버랩시키는 작품과 어우러져, '강정아'란 노래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 성미산 노래패 진동 성미산 노래패 진동은 서울시와 홍익학원에 맞서 성미산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노래패이다. 신보선 작가의 호랑이를 잡으려는 작가와 삶과 조우하고, 일상의 기억, 기반들을 파괴하는 개발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투쟁을 강정 투쟁에 오버랩시키는 작품과 어우러져, '강정아'란 노래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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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막바지에 결의문을 통해, 강정마을 주민들의 6여 년에 걸친 투쟁을 지지하며,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해군기지를 백지화할 것을 촉구하고,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대림과 삼성측에 대해서 불법적인 공사를 계속 진행하려 할 경우 불매운동을 조직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해군기지 건설의 백지화하여 강정을 평화의 마을로, 제주를 진정한 세계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제주출신 고순덕 어린이 동화작가의 편지글을 통해 모진 탄압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온 강정 삼촌들의 건강을 확인하며, 고향에서 뿌리 뽑혀진 제주 출신 조카들도 투쟁에 함께 할 것임을 밝혔다.

육지 경찰을 불러들여 평화의 섬 제주의 작은 마을 강정을 사실상의 전쟁터로 만들고 화약과 포크레인으로 구럼비 바위를 깨고 있는 참담한 상황. 제주4.3 64주년을 맞는 오늘,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날이면 날마다 육지경찰의 폭력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고 심지어는 성직자가 구속되고 노벨 평화상 후보자가 추방되는 현실을 고발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 현장이었던 제주4.3의 진실을 밝히고 그 역사적 교훈을 제주를 인권과 평화의 가치로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사랑해요 강정, 주먹을 들면 안 된다는 현지 경찰의 주장에 대해 주먹을 쥐지 않고 바람과 하트 모양을 통해 강정에서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 고대립  강정
▲ 사랑해요 강정 사랑해요 강정, 주먹을 들면 안 된다는 현지 경찰의 주장에 대해 주먹을 쥐지 않고 바람과 하트 모양을 통해 강정에서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 고대립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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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름과 작가회의는 자료집을 통해, 해군기지가, 동북아 미군기지의 전진 배치, 대중국 압박을 위한 미 해군 항공모함 입항, 그리고 대북, 대중 방어라인임을 분명히 하고, 해군기지 건설로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강정과 제주의 불길한 미래상임을 우려했다.

그래서, 제주도 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가슴 아픈 현실이 4.3으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이어져온 긴 역사와 맥을 함께 하고 있음을 각성했다. 멀리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탐라 총을 건설하여 조랑말을 사육한 몽고 강점기로부터,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한 대미 결사항전용이었던 알뜨르 공항, 정뜨르 공항, 성산 일출봉의 해굴 건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대정 지역의 공군기지 신설 시도, 화순 항과 연결되는 강정의 해군기지 불법, 편법 공사 강행까지, 제주 섬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적했다.

동시에 제주 민들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항거와 오롯이 선 눈매로 태손땅을 지켜온 굵은 손마디를 소중히 여기며, 반세기 만에 4.3의 진실을 조금씩 밝혀내고 그 참극에 대한 성찰이 제주를 인권과 평화의 성지로 만들어내자는 공감대로, 그리하여 제주 평화의 섬 선포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했다.


태그:#문화집회, #4.3 사건, #해군기지 건설, #강정 마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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