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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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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서 어머니가 실수로 애완견을 잃어버렸어요. 애완견이 없어져서 애들이 슬퍼하니까 어머니가 더 털이 북실북실하고 예쁘게 생긴 비싼 개를 사왔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없어진 개와 새로 생긴 개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전히 슬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쿨하게 '개가 똑같은 개지 뭘그래 얼른 이리와서 밥먹어!'라고 하시면 아이들은 상당히 서럽겠지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나 죽으면 비슷하게 생긴 딸을 입양할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의 말은 틀렸어요. 두 개는 전혀 같지 않아요. 없어진 애완견은 아이들에게는 단독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단독성.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는 시인 김수영이 한국 문학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이유로 단독성에 추구했던 그의 삶을 꼽았다. 강 박사는 지난 28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김수영 다시 읽기 네 번째 강의에서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혔던 김수영이 가졌던 단독성을 향한 열망과 '단독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사상에 대해 강의했다.

강 박사는 "인문학과 시인은 타인이나 사물, 혹은 사건에서 단독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한다"며 "특히 인문정신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들뢰즈가 주창했던 '단독성'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독성을 보장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강 박사는 수업을 시작하며 들뢰즈의 단독성(singularity)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단독성이란 글자 그대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성질'을 말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서양의 형이상학에서는 일반성(gener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적인 작업이었지만 들뢰즈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가령 '인간' 이라는 개념이 일반성이라고 칩시다. 강신주는 인간이니까 '인간' 이라는 일반성 안에 포섭되는 특수한 무엇이 됩니다. 이게 특수성입니다. 이 질서에서는 일반성 안에 포섭되는 특수한 것들끼리는 교환이 가능합니다.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과도 교환할 수 있잖아요. 이때 돈은 일반성을, 사람이나 물건은 특수성을 상징하지요. 들뢰즈는 각각의 사람과 각각의 사물, 생명들은 모두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개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단독성입니다. "

강 박사는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으로 보면 모든 개체는 교환 가능하기 때문에 소모품처럼 소비되지만 단독성의 도식으로 보면 모든 것이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중하게 된다"며 "사회에 비유해보면 특수성이 가득한 사회는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겠지만 단독성을 보장하는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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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삶도 단독적이길 원했던 김수영

그렇다면 단독성과 시인 김수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 답은 김수영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나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강 박사는 "시인은 단독적인 삶을 통해서 인간적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려고 한다"며 "단독적인 삶과 시를 완수하지 못한 시인은 시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수영은 사태든 자신이든 간에 모든 것에 존재하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독성'을 집요하게 추구했다"며 "단독성에 대한 투철한 자각이 없었다면, 김수영이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라는 이념도 불가능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영이 지은 <우리들의 웃음> 이라는 시를 보면 '선생과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지요. 단독성에 입각한 시각으로 보면 모든 아이는 개별적인 존재입니다. 반면 특수성에 입각한 시각으로 보면 한 아이를 가르칠 때도 다른 수 천 명의 아이와 비교해서 보는 셈이지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구절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한 아이를 가르치면서 다른 아이들과 더 이상 비교하지 않게 될 때에 우리는 단독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강 박사는 "김수영이 쓴 여러 편의 시에서 드러나는 단독적인 삶을 살아내려는 특유의 고집을 보면 김수영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사회를 알 수 있다"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고, 그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김수영처럼 자신만의 삶을 살아냈을 때, 타인의 설움과 고통, 환희에 공감할 수 있는 법"이라며 "'아이들'과 '아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하고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수영, #강신주, #단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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