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왔다고 하지만 바람 끝이 찹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남학생들이 공을 찹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색깔을 달리한 조끼를 입고 두 편으로 나눠 시합이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힘찬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녀석들에겐 아직 찬바람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지치지 않은 젊음이 보기에 참 좋아 보입니다.

화단 한쪽에서 여학생 둘이서 속삭입니다.

"야, 나무에 꽃이 피었어?"
"응, 벌써 그러네! 몰라봤어!"
"이건 무슨 나무 꽃일까?"
"글쎄…."

이야기를 나누다 말다 날 쳐다봅니다.
내가 말을 붙입니다.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머금다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머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터질 듯 부푼 산수유 꽃망울
 터질 듯 부푼 산수유 꽃망울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거 산수유나무 꽃이야."
"아 맞다! 빨간 열매 달리는 거 맞죠?"

터질 듯 부푼 노란 산수유 꽃망울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소녀들은 신기한 듯 보고 또 쳐다봅니다. 그리고 코끝을 꽃망울에 살짝 갔다 대봅니다. 소녀의 미소가 꽃처럼 예쁩니다.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지내다 문득 봄소식을 전해준 산수유가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요. 따사로운 봄볕을 느끼기에는 좀 이르지만 연한 봄바람과 함께 봄은 분명 우리 곁에 깊숙이 왔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학교 화단 여기저기를 둘러봅니다. 그러고 보니 봄소식은 산수유뿐만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자나무라는 산당화도 꽃망울을 머금고 빨간 입술을 내밀 날을 기다립니다. 붉은 구슬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참 신기합니다.

산당화도 꽃망울이 맺혔다
 산당화도 꽃망울이 맺혔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붉은 꽃잎이 드러날 것 같은 산당화
 붉은 꽃잎이 드러날 것 같은 산당화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산당화 꽃말은 겸손, 열정입니다. 어느 시인은 산당화 꽃잎이 다섯 장인 줄 알 때, 그 때가 사랑이라네요.

제일 먼저 너에게
꽃소식 전하고 싶다.

간밤 실비에 실려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달려온 새빨간 봄소식을

오늘 아침 제일 먼저
너에게 보내고 싶다.

- 권달웅의 시 <산당화> 전부

봄에 돋아난 풀 중에는 먹는 나물이 많습니다. 봄나물 새싹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화단에도 나물거리가 눈에 띕니다. 돌나물이 무더기로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원추리 싹도 군데군데 널려있고, 쑥은 지천으로 돋아났습니다.

돌나물이 돋아났다.
 돌나물이 돋아났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당귀의 어린 싹
 당귀의 어린 싹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힘이 느껴지는 원추리 싹
 힘이 느껴지는 원추리 싹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봄에 캔 나물을 살짝 데쳐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고, 쑥은 삶아 된장국을 끓이면 보약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합니다.

당귀 어린싹도 보입니다. 이파리 한 장을 뜯어 향을 맡아봅니다. 진한 향이 가득 전해옵니다. 당귀 어린잎은 쌈 채소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문득 작년에 핀 금낭화 핀 자리가 생각나 찾아봅니다. 아직 녀석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네요. 금낭화를 찾다 아주 작은 보라색 꽃잎이 보입니다.

'아, 이거 개불알풀이 아냐?'

아주 작고 가느다란 보라색꽃이 앙증맞습니다. 눈길 한번 주지 않은데도 서걱거리는 마른 풀 사이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개불알풀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당당히 살아있다고 소리라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꽃잎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새가 제법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개불알풀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개불알풀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작은 꽃잎이 보라색으로 아름다운 개불알풀
 작은 꽃잎이 보라색으로 아름다운 개불알풀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개불알풀꽃은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 오래 핍니다. 한여름에 씨를 맺는데, 씨방 모양이 바로 개의 불알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개불알풀이라 부른답니다. 우리 조상의 순박한 의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것 같은 꽃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개불알풀의 다른 이름은 봄까치풀입니다.

녀석을 한참 들여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연한 보라색이 꽃잎 바깥부분을 살짝 물들이고, 흰색이 안으로 파고 들어간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어느새 점심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조금 있다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나옵니다. 학생들 떠드는 소리에 금세 차임벨은 묻혀버립니다.

학생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함께 봄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오늘 꽃바람에 실린 찬란한 봄날을 느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찾아봅니다.


태그:#산수유, #산당화, #개불알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