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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 기념관 바로 앞에는 암베르카드와 부처상이 나란히 있다. 사람들은 이들 두 조각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드린다
 암베드카르 기념관 바로 앞에는 암베르카드와 부처상이 나란히 있다. 사람들은 이들 두 조각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드린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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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할 때 인도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타고르와 테레사가 살았던 꼴카타이고 또 다른 지역은 낙푸르다. 낙푸르에는 간디와 비노바바베, 암베드카르와 바바암티가 살았다. 바바암티는 나환자촌을 세워 봉사활동을 하고 마을 공동체를 건설했다. 인디고여행팀이 간디가 살았던 세바그람을 떠나 열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낙푸르를 찾은 것은 암베드카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도의 거의 모든 열차가 그렇지만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는 열차는 한국의 귀성 열차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발이 거의 떠있는 와중에도 음식장사, 과일장사, 차표검사, 화장실 가는 사람으로 정신이 없다. 복잡한 속에서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코리아에서 왔으면 남한이냐? 북한이냐? 등을 물으며 악수하자" 거나 얼굴을 쳐다본다. 인도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익숙해 진 학생들은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낙푸르역에서 내린 일행이 오토릭샤를 타고 찾은 곳은 암베드카르 대학이다. 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체육관처럼 생긴 공간이 있고 거기에 암베드카르박사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그가 살아온 길과 저서 및 연설문 등이 게시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은 기념물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기도를 한다. 우리에게 생소한 암베드카르는 누군가.

인도에는 힌두교의 전통인 카스트제도가 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가지 신분제도가 있어 직업과 사회적 대우가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최하층 신분의 사람들을 불가촉천민 혹은 달리트라고 부른다. 이들은 카스트계급에 속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없고, 식사는 물론 대화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대중교통은 물론 공동 우물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나 동물 시체처리, 화장실 청소 등의 비천한 일만 했다.

암베드카르 대학 정문에서 실내체육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암베드카르 기념관이다.
 암베드카르 대학 정문에서 실내체육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암베드카르 기념관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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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영국에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박사 학위 2개를 받은 그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초대 네루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민주적인 헌법을 기초했다. 그는 불가촉천민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이에 관한 많은 책을 남겼다. 또한 인도에서 가장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을 위한 자유 투쟁에도 힘썼다. 카스트, 이슬람, 소수집단, 파키스탄, 여성문제 등에 관한 많은 저술과 수필 등이 이를 말해준다.

암베드카르는 힌두교를 용인하는 간디와 맞서기도 했다. 간디는 힌두교에 바탕을 둔 평등사상을 주장했지만, 그는 힌두교의 전통을 거부한 사회개혁가였다. 간디가 식민지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투쟁했다면, 암베드카르는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결국 간디의 단식투쟁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혔지만, 불가촉천민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암베드카르 대학 정문 오른쪽에는 암베드카르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기념물이 서있다. 1956년 10월 15일 22개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불교로 개종하자 50만명이 그를 뒤따랐다. 손이 보이는 석조물이 개종 기념물이다
 암베드카르 대학 정문 오른쪽에는 암베드카르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기념물이 서있다. 1956년 10월 15일 22개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불교로 개종하자 50만명이 그를 뒤따랐다. 손이 보이는 석조물이 개종 기념물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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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는 힌두교가 망해야 인도가 진정으로 변한다는 신념으로 힌두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을 선택했다. 선택의 길에선 그는 불교를 선택했다. 기독교가 외래종교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가 1956년 10월 15일 22개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불교로 개종하자 즉석에서 50만 명의 추종자들이 불교로 개종했다. 그 후 그가 죽을 때까지 200만 명의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로 개종했다. 암베드카르 대학 정문을 들어서면 당시 그가 개종하면서 발표한 선언문이 그대로 적혀있다. 간디가 힌두교를 용인한 채 외세에 맞서 독립운동을 통해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면, 암베드카르는 인도 내부의 제도 개혁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사회개혁가였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암베드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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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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