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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번 총선은 첫째로 이념 투쟁이냐 민생 우선이냐를 선택하는 선거다. 지금 야당은 철지난 이념에 사로잡혀서 국익을 버리고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오직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가치로 민생을 우선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4·11 총선 중앙선대위 첫 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념투쟁 대 민생우선'을 이번 선거의 프레임으로 설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는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은 틀린 말이다. 철 지난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이번 선거가 '미래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또 MB 정권 내내 민생을 외면한 부자 감세로 입방아에 오른 집권여당의 수장이 '민생우선'을 선택하려면 새누리당을 찍으라고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박 위원장은 "이번 총선이 과거로 회기냐, 미래로 전진이냐 갈림길에서 이념과 갈등, 말바꾸기의 과거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미래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게 볼 때 이번 총선의 의미가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는 선대위의 조윤선·이상일 대변인 등 당직자들이 "(경기동부연합은) 김일성 신년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을 하고 회의를 시작하는 그런 분들"이라고 비판하거나 '경기동부연합은 어떤 조직인가'라는 자료 등으로 군불을 땐 수준이었으나, 이제 박 위원장이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이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새누리당의 전부'인 박 위원장이 이번 총선의 의미를 "이념투쟁이냐 민생이냐를 선택하는 선거"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이념공세'가 이번 총선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총노선임이 분명해졌다. 몇 마디 언급하면 될 사안을 놓고 다시 한 번 전면적인 '이념공세'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전과 달리 진보당이 타깃...'보수색' 강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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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동시에 '민생'(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을 살리려면 이념투쟁에 골몰하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을 선택달라는 당부이자, 민생은 자신과 새누리당이 맡겠다는 강조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때까지 새누리당의 이념공세 대상이 민주당과 시민단체였던데 비해 이번에는 통합진보당이 주요 타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새누리당의 전통지지층을 다독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야당들의 최대무기인 '야권연대'를 겨냥한 것이다.

교섭단체(20석) 구성 가능성이 커진 통합진보당의 이념편향을 집중부각함으로써 이들과 손잡은 민주통합당까지 한꾸러미로 묶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위해 '정체성 우선' 공천을 함에 따라 구민주계와 관료출신인사들이 이탈하면서 민주당 지지성향의 중도층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 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이념 공세가 얼마나 중도층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선까지 감안하면 더 그렇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의 사학법개정을 "국가정체성 문제"라고 비판하면서 50일간의 장외투쟁을 벌였다. '나약한 여성' 이미지를 불식시켰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국가보안법 절대사수'에 이어 이념투쟁의 전면에 나서면서 보수색채가 최고조로 강화됐다.

여기에 손학규 전 대표까지 탈당하면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이미지'를 차지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하고 말았다. 당시 이 대통령 쪽의 핵심이었던 정두언 의원은 "손 전 대표 탈당 소식을 들으면서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다"며 "박 위원장은 이념적인 보수 색깔이 너무 강해서, 우리가 중도층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5년 6개월만에 다시 당의 전면에 나선 그가 당 강령을 복지와 경제민주화,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 추진' 등의 내용으로 전면개편한 것은 이같은 과거사가 그 배경이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는 당이기 때문에 단순한 이념공세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선대위의 한 핵심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친이-친박계에 대해 알려지고 보도되는 것처럼, 이제는 통합진보당도 누구는 경기동부연합파이고, 누구는 어디 출신이고 또 어떤 생각을 가진 그룹인지 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이념정당으로 시작한 당이 색깔을 말하면 왜 그렇게 민감한 것인지, 아예 색깔을 무시하자는 색맹론인 것 같다"고 말했다.

MB 감세=박근혜의 '줄푸세'... 공천결과도 강령과는 큰 거리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등 양당 지도부가 지난 2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권연대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앞서 손을 잡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등 양당 지도부가 지난 2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권연대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앞서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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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민생을 맡겠다는 강조도 설득력이 약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약 90조원의 감세를 해줬고 이는 부유층에게 그 혜택이 집중됐다. 또 재벌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소비자물가지수가 2007년에 2.5%에서 2008년에 4.7%로 급등하는 등 유례없는 물가상승을 초래했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지수 4%를 물가안정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2010년 3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 발표자료에 따르면 고환율 정책의 혜택이 현대차 삼성전자 등 16개 수출대기업에 집중됐다.

박 위원장도 2007년 대선경선때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감세정책을 내세웠었다.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의 '줄푸세'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박 위원장 쪽은 MB의 재벌과 성장중심 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강령을 전면개편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공천결과 등장한 후보들은 이와는 큰 차이가 있다. 최경환(경북 경산·청도), 이한구(대구 수성갑), 나성린(부산진갑) 의원 등은 당내 대표적인 보수파 의원들이고, 비례대표 10번을 배정받아 사실상 당선 확정 상태인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윤진식(충북 충주)·류성걸(대구 동갑) 후보는 'MB노믹스'의 핵심 인물들이다. 박 위원장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안종범 교수(비례 12번), 이종훈 교수(분당갑), 김태기 교수(서울 성동갑)는 '줄푸세'의 입안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투쟁 대 민생우선'이라는 프레임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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