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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전경
 만어사 전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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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에는 북풍이 없다. 김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무척산과 신어산이 시내로 불어오는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남쪽에는 바다와 평야가 있고, 동쪽은 낙동강의 마지막 하류가 풍요롭다. 김해는 정말 배산임수의 좋은 땅이다.

김해의 북쪽을 막고 있는 신어산과 무척산의 서쪽 비탈을 넘으면 금세 삼랑진에 닿는다. 삼랑진은 김해가 아니라 밀양 땅이다. 삼랑진(三浪津)이라는 이름에는 이곳이 한때 낙동강과 밀양강이 물(浪)로 삼(三)거리를 이룬 큰 나루터(津)였다는 증언이 들어 있다. 게다가 일제 시대 이래로 서울, 부산, 진해로 가는 기찻길이 갈라지는 곳이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낙동강을 건너 만어사로 가는 길

삼랑진으로 들어가는 낙동강
 삼랑진으로 들어가는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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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도 김해와 삼랑진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에는 다리가 많다. 삼랑진읍 시가지를 남쪽으로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에는 동쪽에서부터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다리, 58번 국도의 삼랑진교, 구낙동철교, 낙동인도교, 낙동철교가 총총 놓여 있다. 과연 교통의 요지라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다리들이다.

읍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갈래로 나눠지는 철길 아래로 지하도를 지나게 되고, 역까지 닿기 이전에 나타나는 삼랑진파출소 앞에서 다시 삼거리를 만난다. 이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간다. 김해에서 생철리를 지나고, 다시 이곳에서 만어사로 가는 길이 모두 북진(北進)이다.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사에 있는 경상남도 기념물 152호 '어산불영(魚山佛影)'을 보러 가는 길이다.

무수한 경석을 지나 미륵전 건물이 아득하게 보이는 풍경
 무수한 경석을 지나 미륵전 건물이 아득하게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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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萬) 마리의 물고기(魚)가 있는 절(寺)이라는 만어사(萬魚寺), 물고기(魚)가 있는 산(山)에 나타난 부처(佛)의 그림자(影)라는 뜻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신비로운 이름이 답사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유혹한다. 그런데 어산불영(魚山佛影)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글 한 편의 제목이다. 줄여서 읽어보자.

수로왕 때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독룡(毒龍)이 살았다. 그리고 만어산(萬魚山)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녀(羅刹女) 다섯이 있었다.

독룡과 나찰녀는 서로 왕래하면서 사귀었다. 그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오곡(五穀)이 익지 못했다. 수로왕은 주문을 외어 이것을 금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께 청하여 나찰녀에게 오계(五戒, 살생·도둑질·간음·거짓말·음주)를 내렸고, 그 후로 재앙이 없어졌다. 이윽고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변하여 만어산 골짜기에 가득 차게 되었는데, 각각 쇠북과 경쇠 소리가 났다.

일연이 직접 가서 두드려 보았는데, 골짜기 속의 돌이 2/3가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내었다.

일연, 만어사 돌들이 악기 소리를 내는지 직접 확인

경석 너머로 미륵전이 보인다.
 경석 너머로 미륵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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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돌들은 종석(鐘石)이라는 이름도 얻고, 경석(磬石)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종(鐘)은 '쇠북'이고, 경(磬)은 '옥이나 돌로 만든 악기'를 뜻하니, 종석과 경석은 결국 만어사의 돌들이 여느 곳의 평범한 돌들과 달리 악기 소리를 낸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창의적 임금인 세종대왕이 만어사의 종석을 알고도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대왕은 이 돌들로 악기 종경(鐘磬)을 만들려고 했다. 종석과 경석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와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끝내 제대로 된 악기 제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창의대왕' 세종, 만어사 돌들로 악기 제작 시도

만어사 미륵전
 만어사 미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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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528호인 만어사 너덜지대는 정말 엄청나다. 지천으로 쌓이고 깔린 돌들이 가로 100m, 세로 500m의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바깥에 서서 바라보노라면 너덜지대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나? 여기까지 와서 정말 돌에서 종소리가 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돌아설 수는 없지 않나.

사람들 중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이 천연기념물을 너무나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만어사 주지스님은 '만어석에 이름 등을 새겨 훼손하게 되면 이를 보는 많은 이들의 저주 대상이 돼 세상살이에 많은 장애를 받게 됩니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을 너덜지대 입구에 세웠다.

밀양시장도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에 의해 만어산 암괴류(경석)가 파손 또는 무단 반출되어 불법으로 훼손되고 있으며, 향후 이러한 행위 발견시 문화재보호법 제99조의 규정에 의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을 알려드리니 우리 모두 소중한 관광자원이 보존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판'을 세웠다.

천연기념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많은 듯

만어석 장관
 만어석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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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석에 이름을 새기거나 돌을 집으로 가져갈 계획은 전혀 없지만, 안내판 등을 읽으니 공연히 마음이 위축된다. 그렇다고 너덜지대 안으로 들어가 돌을 두들겨보는 신기한 체험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과연 돌들은 악기 소리를 낸다. 둔탁하거나, 나는 둥 마는 둥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쇠종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신기한 일이다. 그 놀라운 악음에 취해 한참 동안이나 너덜지대 속에 파묻혀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만어석에 파묻힌 듯한 미륵전이 조그맣게 보인다. 2층 건물인데도 너무나 넓은 만어석들에 밀린 탓이다. 누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나? 돌이 부처의 법당을 압도하고 있는데...

덧붙이는 글 | 현장 사진은 지난 3월에 촬영된 것임을 밝힙니다. 이 기사는 newsMIN에도 기고할 계획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 송고를 허용합니다.



태그:#만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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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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