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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봄의 진면목을 보여줄 '꽃봄'이 시작됐다. 완도 보길도와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이 피어나고,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섬진강변 매화도 꽃을 피우며 꽃비를 만들어 뿌릴 준비에 들어갔다.

 

하얀 매화에 앞서 진분홍색으로 남도의 새봄을 화사하게 만드는 홍매는 벌써 만개했다. 그 홍매의 향을 쫒아 전남 순천으로 간다.

 

순천 낙안면에 있는 금전산(667.9m) 금둔사. 여기에 진분홍 빛깔의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분위기도 섬진강변의 하얀 매화와 다르다. 꽃잎도 이중으로 붙은 토종이다. '납월매'라고도 한다. '납월매'란 엄동설한에 꽃망울을 틔운다고 해서 이름 붙은 것. 불가에서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섣달을 '납월'이라고 하는데, 그때 꽃을 피운다.

 

금둔사 납월매는 입춘이 지나면서 꽃망울을 머금고 지난달 하순부터 겹꽃망울을 터뜨리며 피고지고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겹매를 피우는 납월매와 정월에 피는 홑매까지 어우러져 '홍매세상'을 이루고 있다.

 

납월매는 온갖 추위를 견뎌내고 먼저 꽃을 피운다. 눈 속에서 피우기도 하고, 혹독한 바람을 이겨내기도 한다. 오랜 기다림은 무엇이든 아름다운 법. 납월매가 시인묵객들의 예찬 대상이 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색깔만큼이나 향기도 진하다. 모름지기 꽃의 매력이 향기에 있다고 볼 때 최고의 봄꽃이라 할 수 있다. 꽃도 한꺼번에 피웠다가 꽃잎 떨치지 않는다. 몇 송이 피웠다가 추위가 강하면 사그라지고, 다시 몇 송이를 피운다.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아름다움이 납월매에는 담겨 있다.

 

이곳 납월매는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1980년대 초에 심어졌다. 금둔사를 중건하던 지허 스님이 폐허된 낙안마을의 조씨 집에서 씨를 채취해 심었다. 당시 스님이 씨앗을 받아왔던 그 납월매 한 그루는 노목이 되어 이미 사라졌다. 납월매는 금둔사에 있는 여섯 그루가 유일한 셈이다.

 

홍매가 귀한 이유

 

납월매는 열매를 잘 맺지 못한다. 추운 날에 꽃을 피워 벌이나 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한 탓이다. 더러 수정을 하는 것도 있지만, 겨우내 꽃을 피우느라 기진맥진해져 열매를 받아 심어도 싹이 잘 나지 않는다. 홍매가 아주 귀한 이유다.

 

'수행과정을 거쳐야 큰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게 지허 스님의 얘기다.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피어난 납월매처럼 고통을 이겨내고 얻은 즐거움과 행복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게 스님의 바람이다.

 

진분홍색으로 물든 금둔사는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금전산(668m)이 품고 있는 절. 백제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정유재란 때 흔적도 없이 불탄 것을 지난 1980년대 초에 다시 지었다.

 

절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대웅전과 설선당 그리고 보물로 지정돼 있는 3층석탑과 석불비상이 단아하게 어우러져 멋스럽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돌다리인 홍교도 운치 있다. 연꽃봉오리처럼 생긴 바위에 돋을새김 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도 아기자기한 절집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선방과 대웅전 사이 담장을 따라 난 작은 오솔길도 정겹다. 널리 알려진 절이 아니기에 관광객들의 발길도 그리 북적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호젓하다.

 

금둔사는 또 우리나라 차 시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창건 당시 9세기 무렵 철감국사와 징효대사가 차나무를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절집 주변에 야생차나무가 지천이다. 예나 지금이나 비료와 거름을 전혀 하지 않고 따로 가꾸지도 않는다.

 

이번 주말, 간질이는 몸 억누르기보다 꽃봄을 찾아 금둔사로 가보자. 진분홍색의 홍매가 가슴 설레게 하고 아름다운 절집이 새봄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섬진강변과 어우러지는 백매는 덤이다.

 

덧붙이는 글 | ☞ 금둔사는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857번 지방도를 타고 선암사 방면으로 가다 죽학삼거리에서 좌회전, 낙안읍성 방면으로 가면 된다.


태그:#납월매, #금둔사, #금전산, #홍매,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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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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