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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야기>(나한기획 펴냄)는 메시지 강한 그림동화다. 한적하고 작은 오솔길에서 넓고 반듯하고 큰 길로 변해버린 어떤 오솔길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발전'이라고 자부하는 '살기 좋은 환경'과 '최첨단 문명 기기들이 주는 각종 혜택과 편리' '옛날에 비해 비교적 적은 돈으로 24시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풍족함' 등의 폐해를 아울러 생각하게 하는 그런 동화다.

<길 이야기>
 <길 이야기>
ⓒ 나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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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솔길이 있었다. 예쁜 풀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아기 뱀이 하품을 하며 지나가기도 하고, 못난 돌멩이가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작은 길이었다. 또한 해맑은 아이들이 재잘재잘 신나게 달려가고, 띠링 띠링 띠리링 자전거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는 그런 길이었다.

어느 봄날, 오솔길은 비가 오는 날이면 질퍽하게 젖어 진흙탕이 되고 마는 자신이 못 견디게 싫어졌다. 오솔길의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사람들도 자전거를 끌고 가며 불평을 늘어  놓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도시에서 얼마 전에 이사 온 아저씨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어느 날 밤에는 이장님이 풀을 밟아 넘어지는 등, 사람들이 오솔길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잦아진다. 사람들은 '돌멩이 뿐인 길'이라는 등, 없애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겠다'는 등 오솔길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가 하면 툭툭 차기도 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나.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오솔길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길가의 나무들을 잘라내더니 넓고 반듯하고 아주 큰 길로 만들어 준 것이다. 오솔길은 이제 더이상 작고 못생긴 예전의 시골길이 아니었다. 오솔길은 말끔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자기도 모르게 싱글싱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오솔길은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 멋진 모습이 되면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자신이 바뀐 지 한참이 지났건만 아무도 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수많은 차들이 쉴 새 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통에 오솔길은 매연에 눈이 핑핑 돌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솔길을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멋진 모습 때문에 꽃님이 할머니나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 등,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끊임없이 죽어가는 것이었다.

"다 나 때문이야."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너무 무서워!"

<길 이야기>에서
 <길 이야기>에서
ⓒ 나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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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지금 인간들이 믿고 있는 개발과 발전이 훗날에는 되돌릴 수 없는 자연 파괴와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의 생각이 짧고 얕아서,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땅과 하늘을 상처내는 일이다. 요즘 하는 지나친 공사와 개발 사업을 볼 때마다 그저 바라만 보고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는 나의 무기력함에 나는 한탄한다. 마치 인간이 하늘과 땅을 지배할 수 있다는 듯 일방적으로 상처내고 훼손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림 작가의 말에서

<길 이야기>는 두 번, 세 번 거듭 읽은 동화다. 언급한 것처럼 한 오솔길의 비애를 다루고 있지만 오솔길 대신 무엇을 대신하는가에 따라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들이 몇 가지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와 오솔길 여기저기를 파헤쳤기 때문에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오솔길은 끙끙 앓는다. 정신마저 아득해 질 지경이다. 그런데 오솔길은 "하지만, 예뻐지려면 참아야 해. 그래야 반듯한 길로 변신하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싱글싱글 웃는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솔길의 맨살에 뜨거운 아스팔트를 엄청나게 들이 붓는다. 사람들이 마구 파헤쳤기 때문에 상처투성이인데 게다가 뜨거운 아스팔트까지 계속해서 부어 버리니 오솔길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럼에도 오솔길은 '으으, 뜨거워! 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길이 되어야 해! 멋진 길이 되려면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냐!'라며 제 살이 타들어 가는 듯 한 고통을 참아 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들었던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와 성형 열풍이다. 한쪽에서는 부작용의 고통을 호소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한 선망인.

두번째까지는 무심히 읽었는데 세번째 읽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 이처럼 불편한 길이면 사람들이 먼저 짜증을 내고 불편을 호소했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크게 불편해 하지 않고 다녔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자전거 소리가 노래처럼 울려 퍼졌다는 표현을 보면 말이다.

작가는 오솔길이 먼저 어느 봄날 울퉁불퉁 못생긴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느끼고 그 이후 사람들의 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나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것 등을 말하고 싶어서 이처럼 쓴 것은 아닐까?

최근 개발바람을 타고 산천이 마구 망가져 간다. 이를 지켜보는 어린아이들 마음 또한 망가져 간다. 최근 날이 갈수록 증가되는 청소년 범죄 또한 어릴 적에 망가진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차분히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다.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참으로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추천사 '이기동(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수)


덧입혀진 아스팔트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고 예전처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오솔길이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책하는 모습에선 드라마를 통해 흔히 봤던 출세나 성공, 명예나 권력 등을 위해 제대로 된 사람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태극 문양을 기본으로 그려진 <길 이야기> 그림. 필요에 의해 여러 족의 모습을 잘라 모은 것이다.
 태극 문양을 기본으로 그려진 <길 이야기> 그림. 필요에 의해 여러 족의 모습을 잘라 모은 것이다.
ⓒ 나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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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문양이자 동양사상의 상징인 태극을 기본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 자연의 소리보다 현실의 편리와 이익에만 길들여진 어른들의 무심한 태도 등을 눈여겨 읽는 것도 이 동화를 훨씬 의미있게 읽는 방법들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무엇보다 <길 이야기>를 가장 제대로 읽는 방법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4대강사업, 뉴타운 등 우리들의 쾌적한 환경과 편리란 명분을 앞세워 그동안 무분별하게 희생된 땅(들)의 울음을 생각하며 읽을 때 일 것 같다.

<길 이야기>는 이처럼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유치원생부터 어른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동화'다. 나처럼 오솔길에 다양한 사람들과 현상을 대신해 읽어도 좋지만, '우리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읽어도 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책은 문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을 모색하는 통합문학치료연구소 두번째 책이다. 참고로 필자는 <길 이야기>를 읽으며 20여년 넘게 '빼앗겼다'라는 피해의식과 함께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고향마을 길을 떠올렸다. 사실 책속 오솔길의 사정과 너무 비슷하다. 때문일까. 내 아픔을 누군가와 나누고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길 이야기>를 통해 나처럼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길 이야기>ㅣ통합문학치료연구소(임민주 글·김태연 그림)ㅣ나한 기획ㅣ2011-12-24ㅣ값:18000원



길 이야기

김태연 그림, 임민주 글, 나한기획(2011)


태그:#오솔길, #개발, #그림동화, #통합문학치료연구소, #나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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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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