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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볼 때 글을 쓴 당사자는 오자를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 글쓴이는 글의 내용이 마음속에 들어 있어 교정할 때 원고 위의 글자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글자를 보기 때문이다."(본문 55쪽)

글을 쓰고, 교정을 봐본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설명입니다. 남이 써놓은 글은 대충 읽어도 오자가 눈에 확 띄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쓴 글을 교정할 때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정독을 한다고 해도 오자를 발견하지 못하니 야속하기만 할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마음' 때문입니다.

왜 똑같은 개 짖는 소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멍멍'으로 들리고 미국사람들에겐 '바우바우'로 들릴까요? 개는 정말 '멍멍'거리며 짖거나 '바우바우'하고 짖는 것일까요? 이 또한 마음, '공통된 업' 때문입니다.

마음을 말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게 '마음'

불교와 관련한 책을 읽다보면 '마음' '공(空)'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를 말하고,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말하지만 정작 '심(心)'과 법(法), 무(無)와 아(我)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얼버무리는 게 현실입니다. 

<유식 불교의 이해> 표지
 <유식 불교의 이해> 표지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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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공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정작 마음과 공이 무엇인지, 그것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헛공부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리 봐도 좋고, 저리 봐도 좋기만 한 게 부처님 가르침이니 불교를 공부하며 얻는 지혜나 성과가 탄력 붙은 굴렁쇠처럼 술술 잘 굴러갔으면 좋으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뜻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뜻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본문 25쪽)

"불교 교리로써 반문하니, 설명도 다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이 쉽지 않아서 어려운 측면이 크다."(본문 39쪽)

딱 맞는 말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뜻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것도 너무 많고, 용어를 알아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를 공부하는 데도 '먼저 알아야 할 뜻'과 '사고 전환'에 필요한 사전 지식이나 도구가 있을 것입니다. 밭을 일구기 위해서라면 쟁기가 필요하고, 물을 주기 위해서라면 조루가 필요하듯이 말이죠. 불교를,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일구는데 필요한 전제 지식 중 하나가 바로 '유식'(唯識·모든 차별 현상은 오직 인식하는 마음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유식(唯識)이라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용어들도 생소하기만하고, 그 뜻 또한 새겨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고가 얼마만큼 전환돼 있지 않으면 겉돌기만 하는 말장난 같습니다. 

하지만 불교를,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하려면 유식(唯識)은 꼭 건너야 하는 강이며 어느 정도는 반드시 소화시켜야 할 상식입니다.

목경찬이 쓰고 불광출판사가 펴낸 <유식 불교의 이해>는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꼭 건너야 할 강, 유식(唯識)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식(常識)으로 놓은 징검다리입니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강의는 어렵지 않습니다. 논제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은 쉽고 재밌습니다. 저자 목경찬은 20년 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는 가르침이 궁금해 대학원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하다 유식을 공부하게 됐다고 합니다.

돋움을 도와줄 장대 <유식 불교의 이해>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유식 불교의 이해>는 저자가 20년 동안 유식을 공부하고 충분히 소화시켜 쓴 해설서입니다. '유식의 의미'는 갓난아이가 먹어도 잘 소화시킬 수 있는 이유식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의미의 영양가는 풍부합니다.

식이 전변한 세상과 안·이·비·설·신·의를 포함하는 8식에 관한 설명은 장마에도 끄떡없는 징검다리의 돌덩이처럼 분명하고 또렷합니다. 입으로만 말하던 마음과 공(空), 머리로만 새기던 무(無)와 아(我)가 또렷해지고, 술술 굴러가는 굴렁쇠처럼 이해됩니다. 

"공부는 일단 상식에서 시작하여 상식을 뛰어넘어야 한다."(본문 31쪽)

저자는 군데군데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미쳐 전환되지 않는 사고에 가끔은 비틀대는 굴렁쇠처럼 비틀 댈 수도 있지만 <유식 불교의 이해>를 읽고 다시 읊거나 독경해 보는 경(經)들은 가없이 깊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유식(唯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상식이라면 <유식 불교의 이해>는 불교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상식을 훌쩍 뛰어넘도록 돋움을 도와줄 장대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유식 불교의 이해>(목경찬 씀 | 불광출판사 | 2012.03 | 1만5000원)



유식불교의 이해

목경찬 지음, 불광출판사(2012)


태그:#유식 불교의 이해, #목경찬, #불광출판사, #유식, #아뢰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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