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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콘서트가 시작하기 세 시간 전인 4시 반에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손에는 우비가 각각 들려 있었다. 기나긴 파업에 점점 더 가혹한 대우를 하는 방송국들처럼, 하늘은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의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점점 흐려지더니 결국 비를 흩뿌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의도 공원에는 벚꽃대신 사람들의 열기가 만발했다. 흐린 하늘에 '나는 꼼수다'(줄여서 나꼼수) 팬카페의 깃발이 휘날렸다.

오후 7시 20분이 되자 카피머신의 노래가 콘서트 장을 덮었다. "거짓말만 늘어가는 세상, Shut up!'이라는 가사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밴드 카피머신의 노래가 수많은 군중의 마음에 열기를 지피고 있다.
▲ 카피머신, 수많은 군중과 함께 밴드 카피머신의 노래가 수많은 군중의 마음에 열기를 지피고 있다.
ⓒ 최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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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업 콘서트의 진행자인 MBC 오상진 아나운서, KBS 최원정 아나운서 그리고 YTN의 권민석 방송 기자가 그 다음에 등장했다. 그들은 방송이 국민의 것임을 강조하면서 재밌고 즐거운 파업을 진행할 각오를 보여주었다.

파업과 콘서트가 함께? 약방의 감초가 되었던 콘서트!

파업 콘서트라 해서 게스트가 부실할 것이란 편견은 진작 깨졌어야 했다. 리허설까지 째고 왔다는 이승환은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왔다고 하며, 자신은 이 의지를 노래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 감미로웠던 첫 곡과 신나는 노래들로 비 때문에 축 처졌던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가수 이승환이 파업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이승환의 열정적인 무대 가수 이승환이 파업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최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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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있어요'로 유명한 이은미도 등장했다. 그녀는 감미로운 노래 대신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히트곡과는 다른 터프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발라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적 역시 파업 기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그는 그의 히트곡인 '다행이다'와 '하늘을 달리다'를 빼먹지 않았다. 그 후, 파업 기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장 잘 담았을 노래인 '왼손잡이'를 불렀다. 이 상황에 적용을 시켜보니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라는 구절에서 딱 세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왼손잡이' 노래는 이 파업에 담긴 정신과도 연관성이 있다.
▲ '왼손잡이'를 부르고 있는 이적 '왼손잡이' 노래는 이 파업에 담긴 정신과도 연관성이 있다.
ⓒ 최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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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을 빼놓고는 저항 정신을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힙합 전사들이 빠질 리 없었다. 드렁큰 타이거는 터프한 이미지답게 거친 노래로 강자에 대한 저항 정신을 표현했다. 강렬한 비트 속의 거침없는 랩으로 속에 응어리져있던 뭔가를 터뜨려 주었다. DJ DOC 역시 '나 이런 사람이야', 'Run To You' 의 히트곡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익숙하면서도 신나는 노래에 다 같이 하나 되어 방방 뛰니 차가운 현실도 열기 속에 달아올랐다.

누군가만의 罷業이 아닌, 모두에게로 흘러가는 波業

이렇게 출현 게스트가 많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콘서트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완급 조절을 하듯, 콘서트와 파업 토크를 번갈아 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항적인 MC 김제동은 진지한 얘기를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모두에게 웃음을 안겼다.

풍자와 해학으로 이번 파업의 의미를 풀어낸 김제동
▲ 파업콘서트의 김제동 풍자와 해학으로 이번 파업의 의미를 풀어낸 김제동
ⓒ 최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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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회자로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이장을 들었다. 그 옛날의 솔직하면서도 알아듣기 쉬웠던 이장의 방송을 예로 들며 참 언론인의 모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빨갱이 같은 나라를 만들지 않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한다"라며 자신을 친북 좌파로 몰고 가는 세력에 대해 억울함도 호소했다. 그는 "사랑하지 않은 조국을 가진 적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정치인을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했는데 임기가 4-5년 밖에 안 되는 정치인에게 정말 걸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직접적인 비난을 하는 대신 풍자와 은유로 조롱하는 화법을 택했는데 그 편이 오히려 재치 있어서 동감이 잘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문제가 해결되는 서양 동화를 따라가지 말고, 우리 동화식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도 직접 무대에 등장했다. YTN 박진수 기자는 지금까지 해직된 기자들을 열거하며 복직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장기하의 '우리 지금 만나'를 개사한 복직 노래가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MBC 최진구 기자는 역사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 방송국 3사가 똘똘 뭉치면 어떤 역경도 이겨나갈 것이라 역설했다. 그의 "사막이 왜 아름답습니까? 바로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MBC 파업 기자들이 결성한 노래패는 '이태원 프리덤'을 개사한 노래와 율동으로 모두를 참여하게 했다. 그 중의 어느 누구도 파업하면 으레 떠오르는 붉은 머리띠를 두르지 않아 한결 친숙한 모습이었다.

'이태원 프리덤'을 개사한 노래에 율동도 추고 잇다.
▲ MBC 기자로 구성된 노래패 '이태원 프리덤'을 개사한 노래에 율동도 추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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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신입 기자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 연극도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웃음만을 남겨 주었다. 그 안의 재치 있는 풍자와 해학으로 KBS 김인규 사장과 MBC 김재철 사장을 비난하면서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였다.

지식인들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영상으로 문재인 상임고문, 안철수 연구소 의장, 신윤복 교수, 조국 교수의 응원을 들을 수 있었다. 안철수 의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방송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을 꺼내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경영진이 바뀌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국민의 사명"이라고 역설했다. 신윤복 교수는 "신뢰받지 못하고 소통이 안되는 사회는 제대로 일어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지난 수 년간 민주화 성과를 하나하나 무너뜨려 온 것도 사실이다."고 하였다. 조국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여러분의 역할에 따라 우리나라 언론이 바뀐다."고 말했다. 네 사람 모두 지금의 현실을 비판하며 파업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문재인 상임위원의 응원 메세지가 담긴 영상.
▲ 문재인 상임위원의 응원 문재인 상임위원의 응원 메세지가 담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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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을 받은 기자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하다!

콘서트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파업으로 불이익을 받은 기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전 KBS 정연주사장,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 KBS 엄경철 노조위원장, 국민일보 조상운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공병설 노조위원장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먼저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옳은 일을 위해서 박해받은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성경 구절을 이야기하며 해직된 기자들이야말로 복 받은 사람들이라 말했다. 뒤를 이어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개인적으로 복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반드시 복직하겠다."고 외쳤다.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양심에 속임이 없이 살아가고 옆에 있는 동지와 국민과 시청자를 믿고 살아간다면 누구도 실직자가 될 수 있었던 4년입니다."고 말문을 열며 "그럼에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며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불합리한 현실로 인한 피해를 KBS, YTN, MBC 기자들만 본 것은 아니었다. 조용기 목사 일가, 세습되는 회장과 85일 째 투쟁중이라고 밝힌 국민일보 조상운 노조위원장도 있었다. 그는 조용기 목사 성대모사를 했다가 명예 훼손으로 3억원 손해 배상에 휘말렸지만 그럼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 성대모사를 모두를 웃음 터뜨리게 만들었다.

연합뉴스 공병설 노조위원장은 세 가지 사과할 것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첫 째는 뛰어오르다가 무대에서 미끄러진 것이고 두 번째는 유일하게 정직이나 해고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며 다른 이들과 함께할 것이란 의지를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박종찬 사장이 있는 동안 벌여온 일들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하였다,

콘서트 마지막 이번 파업에 참가한 기자들이 무대 위에 서 있다.
▲ 비록 고통스럽지만 행복합니다 콘서트 마지막 이번 파업에 참가한 기자들이 무대 위에 서 있다.
ⓒ 최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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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은 '행복'의 다른 말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완전히 그늘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높은 데서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가 단순히 무대 탓은 아니리라.

지상 최대의 훈훈한 콘서트

입장료 없이 들어온 콘서트였으나 나갈 때는 돈을 내긴 해야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정해진 액수가 아닌, 자신이 응원하고 싶은 만큼 넣는 것이었다. 모금함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콘서트에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먼지가 남은 지갑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또한, 다른 콘서트와는 다르게 공연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이 곧장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의자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공연장이었다면 스텝들에게 맡기고 미련 없이 떠났을 관객들인데, 이 파업 콘서트가 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런 관객들 중 두 분과 인터뷰를 나누며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서 강(24)과 황시원(25)은 갑작스런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 주었다.

- 해품달이나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파업 때문에 중단되었는데 아쉽지는 않나요?
서: 사람들에게 굉장히 방영이 계속되도록 기대를 갖던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기대를 접어서라도 같이 지금 언론이 장악된 현실에 대해 발 벗고 뛰어드는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 (언론인들이) 그만두신 거잖아요, 굉장히 맞다고 생각하고, 방송을 재미로 보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더 큰 새로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 같아 바랍직한 것 같습니다.

황 : 네티즌을 보면 "왜 무한도전 안 하냐." 이런 친구들도 있는데,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들을 발송을 안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 왜 방송을 안 하지?"라며 더 시선을 주는 것 같아서 저는 파업에 찬성합니다.  

- 일반 파업과는 다르게 콘서트까지 같이 하여 진행된 이 파업 콘서트에 대한 소감은?
서 : 당연히 즐겁죠. 마지막에 노조 위원장들이 말씀하실 때 '즐겁다, 해피하다' 하시면서도 힘들다고 내색을 하시잖아요.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을 때 다 같이 엄숙하면 그것은 자조하거나 암울한 분위기로 끝나지만 이 파업 콘서트는 '승리할 수 있다. 즐겁게 투쟁할 것이다.' 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요.

황 : 왠지 이렇게 즐기는 것 자체가 블랙 코미디처럼 전혀 웃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같이 웃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비 오는 날도 같이 했는데 비 안 오는 날에는 더 많이 왔으면. 저는 지방 사람인데도 이렇게 왔지만, 서울까지 거리가 먼 친구들은 그 지역구에서 열리는 곳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YTN 박진수 기자가 복직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우린 지금 원해, 복직복직!! YTN 박진수 기자가 복직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함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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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내내 결연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파업 기자들을 응원하며 열심히 뒷정리를 하는 그들의 뒤로, 이 파업 콘서트의 테마 곡인 YB 밴드의 '흰 수염고래'가 울려 퍼졌다. 3시간 반의 파업 콘서트가 끝난 그 자리엔 쓰레기 대신 관객들의 뜨거운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태그:#파업 콘서트, #방송 3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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