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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해품달> 포스터
 <해품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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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심을 훔친 명품 국민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15일 드디어 끝났다. 40%를 훌쩍 넘는 시청률과 마지막 2회 결방까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뿌렸던 드라마였던 만큼 방송이 모두 끝나기 전부터 <해품달>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쏟아졌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해품달>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원작소설은 이미 80만 부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해품달>의 인기는 가히 하나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해품달>은 왜 그렇게 인기가 높았을까? 탄탄한 스토리, 아역들의 놀라운 연기, 수염 없는 미소년 같은 '꽃미남 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 타이틀 롤을 맡은 김수현의 매력, 화려한 색감, 역사에서 자유로운 판타지 사극 등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아 둘 요소를 <해품달>은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해 버리면 뭔가 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해품달>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해품달>의 가장 큰 성공요인인 뭐니 뭐니 해도 탄탄한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세한 스토리보다는 스토리 '구조'의 치밀함, 즉 완성도 높은 구성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해품달>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라서 예컨대 <선덕여왕>처럼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스토리 하나하나가 치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여타의 멜로물에서 보기 어려운 치밀한 구성력이 멜로라인에 큰 생명을 불어넣었다.

<해품달> 구성의 핵심은 한마디로 '가혹한 운명'과 '어긋남의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가혹할수록 그 속의 로맨스는 그에 반비례해서 빛나는 법이다. 고전에 속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하고 영화 <타이타닉>도 마찬가지다. <해품달>에서는 정쟁의 희생양이 된 세자빈 연우와 그 일가의 비극, 그 뒤 기억상실로 가장 가까이서도 훤(김수현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액받이 무녀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 둘의 로맨스를 더욱 애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세자 훤과 연우(한가인 분)의 로맨스는 아직 정치나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연우의 죽음과 함께 그 시절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비극적 운명의 직접적인 원인인 윤씨 일파의 추악한 모략과 절묘하고도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시청자 사로잡은 <해품달> 인기비결은 탄탄한 구성

나는 <해품달>을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탓에 그 당시에는 왜 훤이 중전(김민서 분)에게 그리 박하게 대하는지, 연우에 대한 연정이 왜 그리 애틋한지 100%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뒤 1회부터 다시 볼 기회를 갖게 된 후에는 주요 인물들의 모든 행동과 감정선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는 드라마 초반, 정확히는 아역 배우들이 등장했던 6회까지의 설정에 따라 전체 스토리의 분위기와 긴장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즉, <해품달>에서는 이 설정과 구성이 충분히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게다가 6회까지의 전개는 대단히 속도가 빠르다) 애절한 로맨스가 생명을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는 처음부터 보든 중반부터 보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해품달>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중반부터 띄엄띄엄 보면서 이건 그저 무녀 월의 한 맺힌 이야기구나 하고 쉽게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좋은 구성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면 <해품달>의 구성과 설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훤이 중전과의 합방을 거부하는 이유가 다른 사극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지 중전에 대한 연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전체 구성을 잘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훤의 합방거부에는 원자 생산 시 자신이 외척에 의해 곧 암살될 것이라는 현실인식이 또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이해하고 있다. 훤은 그만큼의 시간을 버는 셈이므로 그때까지는 자신이 정적들로부터 암살되지 않을 것임을 꿰뚫어보고 정국을 운영한다. 중전에게 연심이나 최소한의 동정심이 있다 해도 합방을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이들의 운명이 꼬여버린 것이다.

따라서 훤이 무녀 월을 구하기 위해 중전과의 합방에 응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일종의 도박이었고, 그런 만큼 애절함도 배가되었다. 또한 그렇게 연우와의 연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던 혜각도사의 심정도 대단히 절박했음을 납득할 수 있다.

'너무나 가혹하고, 슬프지 않소? 과인도, 중전도, 형님도, 그리고, 그 아이도.' (14회, 훤)

손을 벤 중전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훤은 흐느끼는 중전을 품에 안고 이렇게 되뇐다. 그 넷을 가혹하게 얽은 운명이 바로 <해품달>의 원동력이다.

또한, 가혹한 운명은 주인공들의 계속된 엇갈림과 결부되어 극적 긴장감이 훨씬 높아졌다. 사람들은 뭔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약간 어긋나 있으면 그것을 똑바로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젓가락이 약간 어긋나 있거나 옷매무새가 살짝 틀어져 있으면 대부분 거의 반사적으로 반듯하게 정리한다. 드라마의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뒤틀리고 어긋난 것을 바로 펴고 싶은 시청자들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면 이들을 매일 밤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

욘사마 열풍 부른 <겨울연가> 조선판 <해품달>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한 장면.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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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진부한 클리셰가 돼 버린 출생의 비밀이나 기억상실, 영혼의 바뀜 등은 이 어긋남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짝패(출생의 비밀)> <시크릿 가든(영혼의 바뀜)>, <성균관 스캔들(남장여자)>이 그러했고, 근래 최고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추노>에서는 양반이던 대길이 추노꾼으로 전락하고 그 집의 노비였던 언년이 양반으로 변신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아내의 복수극을 그린 <아내의 유혹>도 어긋남이 주는 긴장감(예컨대 정체가 언제 드러날까, 어떻게 원래 자리로 돌아갈까 하는 궁금증과 긴장감)을 극대화한 드라마였다. 거지행세의 이몽룡이 언제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옥중의 춘향이를 구할 것인지 기대하게 만드는 <춘향전>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해품달>은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겨울연가>의 조선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연가>의 준상이 우연한 교통사고(이 역시 진부한 클리셰이다)로 기억을 잃은 것에 비하면, 세자빈 연우가 정쟁의 제물로 죽다가 살아나면서 기억을 잃은 <해품달>은 얼마나 세련된 모양새를 갖추었는가! 그만큼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우가 기억을 잃기 전인 극 초반(1~6회)에는 세자와 연우의 계속된 어긋남이 있었다. 어린 세자는 어린 연우에게 잠시나마 신분을 감추었고, 어린 연우는 어린 세자가 자신을 염의 동생이라고 인지한 것으로 잠깐 착각했었고, 또 세자가 자기보다 윤보경(이후의 중전)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한다. 이런 엇갈림을 다잡아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시청자는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해품달>의 어긋남은 과하지 않아 스토리를 필요이상으로 복잡하게 꼬아 비틀지는 않는다. 이는 <해품달>이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그것도 미니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년 큰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사극 <뿌리 깊은 나무>는 어긋남이 새로운 어긋남을 낳고 그것이 다시 잔 가지를 치는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작가인 박상연-김영현은 이전작인 <선덕여왕>(그리고 김영현의 <대장금>이나 <서동요>)에서 보여주었듯 디테일한 스토리에 굉장히 능하다. 만약 <해품달>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복잡한 스토리구조를 가졌다면 멜로의 장점을 크게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욕만 가진 이들, 2012년 대한민국에도 있다

이처럼 <해품달>이 완성도 높은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멜로드라마이기에 다소 사소한 점이긴 하나, 절대악인 외척 윤씨 일파의 경우 그 존재이유가 단순한 권력욕뿐이다. 이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대척점에 있던 정기준과 밀본이 내세웠던 '재상총재제'에 비하면 격이 한참 떨어진다. 마치 영화 <다이하드3>에서 온갖 거창한 테러를 다 일삼은 테러리스트의 목적이 결국 돈이었던 것만큼이나 허탈하다.

하지만, 2012년 지금의 대한민국(조선이 아닌)을 돌아보면 그렇게 단순한 권력욕으로만 똘똘 뭉쳐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집권세력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19회에 영의정이 양명에게 역모를 제의하며 원상제(임금의 권한을 재상들과 함께 공유하는 제도)를 말하기는 했다).

이보다 더 아쉬운 대목은 연출이다. 물론 주연여배우인 한가인이나 양명 역의 정일우가  세수조차 제대로 못할 만큼 살인적인 촬영일정에 쫓겼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연출의 완성도가 떨어진 점은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시청자의 감정을 폭발시켜 줄 결정적인 장면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시청자들은 뺨만 때려주면 밤새 엉엉 울 준비가 돼 있는데 정작 드라마에는 뺨 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장면이 없었다.

예컨대 태석(원빈)이 은서(송혜교)에게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라고 했던 <가을동화>의 삼각관계와 비교하면, 연우에게 같이 도망가자고만 하는 양명의 구애에서는 안타까움이나 애틋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크릿 가든>은 윗몸일으키기 장면이나 거품키스 장면을 선보이며 이른바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기억이 돌아온 연우에게 자기 자신을 선물하는 이훤의 은월각 장면은 가히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 할 만하다. 극 전체의 모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일시에 해소되는 19회와 20회에서도 주요 인물들의 최후가 다소 민망하게 그려진 점은 실망스러웠다(인터넷에는 반란군과 이훤의 대치장면이 엉성함을 빗대어 양명의 '겸손한 반정'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었다).

정당이나 후보들, <해품달> 성공요인 좀 배워라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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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해품달>은 사극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이 아깝지 않을 수작이다. 수많은 케이블방송과 종편채널, 그리고 온갖 인터넷 영상매체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40%를 훌쩍 넘는 시청률은 놀라운 수치다. <해품달>은 어떻게 해서 시청자의 마음을 얻은 성공적인 드라마가 되었을까,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하다보면 총선정국에 들어선 요즘 각 정당이나 후보들도 <해품달>의 성공요인을 꼭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먼저, 시청자들 특히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해품달>을 '본방사수'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AGB 닐슨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시청률 41.3%를 기록한 지난 16회분의 경우 여성 시청자가 65.3%로 남성 시청자(34.7%)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이훤 역을 맡은 김수현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좋은 배우는 그 자체로 시청자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품절녀' 한가인이 김수현이나 아역배우들과 비교되며 연기논란에까지 휩싸이지 않았다면 남성 시청자 비율이 좀 더 높지 않았을까. 선거도 마찬가지다. 좋은 후보, 매력적인 후보를 내세워야 유권자들은 표를 줄 확실한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선거에서 참신하고 '섹시한' 후보가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지금 각 정당들을 보면 왜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표를 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해품달>은 그 치밀한 구성 덕분에 스토리의 매  국면마다 꼭 그렇게 흘러가야만 하는, 꼭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야권이 총선에서 꼭 이겨야 할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권심판이다. 만약 집권당이 지난 4년 동안 국정을 잘 이끌어왔다면 야권의 심판론은 힘을 잃을 것이다. 이 경우 집권당은 총선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이유로 집권 기간 동안의 치적을 내세우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은 지금 국민의 정서상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조선일보> 12일자 1면(위)과 사설(아래)
 <조선일보> 12일자 1면(위)과 사설(아래)
ⓒ 조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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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론에 맞서 집권당이 꺼낸 대응카드는 바로 이념대결이었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나 한미FTA,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해군기지 건설의 경우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 뉴스와 맞물리면서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런데 중국이 이어도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시점은 지난 3일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자 중국 국가해양국장인 류츠구이가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이 사실이 별로 보도되지 않다가 약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크게 부각되었다. 이 시점은 마침 강정마을의 구럼비해안 발파를 시작한 뒤 반대여론이 비등하던 때였다. 이 며칠간의 시차 때문에 정부와 보수언론이 민감한 외교 사안을 국내정치에 악용한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을 무조건 '좌파'로 몰아붙이고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해군력을 결부시키면서 안보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좌우 편 가르기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소모적인 이념논쟁일 뿐이지만, 선거공학적인 면에서는 대단히 기특한 카드가 아닐 수 없다. 4년간의 실정 때문에 정권심판론에 맞서 집권당이 총선에서 꼭 이겨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총선구도를 좌우간의 이념대립으로 몰고 가면 집권당으로서도 총선에서 꼭 이겨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도 많이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라 안보도 걱정하지 않는 '좌빨'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수성향이나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4년간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을 꼭 선택할 이유가 될 수 있다. 3월말 예정된 핵안보정상회의나 천안함 2주기도 같은 맥락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 이러다간 국민들 마음 얻기 어렵다

4.11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문성근 민주통합당 후보가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4.11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문성근 민주통합당 후보가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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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야권은 이에 맞서 딱히 효율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연히 여소야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한미FTA와 해군기지 이슈가 터져 나오면서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의 '친이계 학살공천'이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야권의 심판론에 대한 기대감을 일부 박근혜가 선점한 효과도 있다. 이는 야권이 지나치게 안일하게 이번 총선에 임한 탓이다. 야권으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선택받아야만 하는,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만 한다.

이는 각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문성근의 경우, 왜 문성근이 꼭 부산까지 내려가서 출마해야 하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를 보통 유권자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노무현의 뜻을 잇겠다는 것은 문성근의 주장일 뿐이다. 유권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는 반발을 불러온다.

문성근은 오랫동안 "와 왔노?(왜 왔느냐?)"라는 질문에 일일이 해명을 하고 다녀야 했다. 부산 출신으로서 해석해 보자면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일차적인 거부감의 표시다.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서울의 유명인이 자신의 유명세와 노무현을 등에 업고 입신해 보려고 우리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하는 일차적인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주장과 행위에 꼭 그러해야만 하는 이유가 부족하면, 일단은 구차해지고, 결국에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해품달>의 이훤이 말했듯이, 정치란 만물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별로 없는 형국이다. 진실을 폭로한 사람이 고초를 겪고 죄를 지은 사람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권좌를 지키고 있다. 범죄를 수사해야 할 검찰은 권력핵심부와 결탁해서 증거인멸이라는 범죄행위까지 일삼는다. 지난 4년간 실정을 일삼은, 국회 절대과반의 집권당이 총선에서 '야권심판'이라는 전대미문의 구호를 들고 나온 것도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세태가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상이 이리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를 정(正), 그 한 자를 얻을 것입니다... 저의 순리는 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18회)

대왕대비와 마주 앉은 훤은 이렇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훤은 정(正), 이 한 자를 얻기 위해 자신의 혈육까지 도려내는 결단을 내렸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흑주술 자리에 단지 참석만 했던 누이 민화공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혜공주'가 독재 권력에서도, MB 치하에서도 여전히 권세를 누리는 우리의 현실로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달은 해를 품었고, 해는 천하를 위해 칼을 품었다. 2012년의 대한민국에선 어느 누가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그리고 바를 정(正)을 얻기 위해 칼을 품었더냐. 같은 남자가 봐도 참 매력적인 이 사내, 조선 팔도에 이훤 같은 정치인 어디 없을까?


태그:#해품달, #해를 품은 달,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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