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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7일 삭발한 머리칼을 투명봉투에 담아 든 이들이 새누리당 당사 앞을 찾았다. 진수희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성동갑 당원협의회' 당원들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진 의원의 공천과 함께 여론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이하 공천위)는 5일 이 지역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진 의원의 공천을 유보했다. 이들은 "권영세 사무총장 나와라"를 외치며 당사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내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에게 가로막혔다. 당원들은 "자살도 불사하겠다"며 격하게 맞섰다.

 

지난 2월 27일 1차 공천자 명단 발표 이후 새누리당 당사 앞은 연일 공천결과에 항의하는 당원들로 어수선하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대구와 부산 등에서도 당원협의회원들이 '상경집회'를 열고 있다.

 

'친이학살'·'친노부활'...연일 계속되는 '공천내홍'

 

항의 기자회견도 이어지고 있다. 공천결과와 관련해 '친이 학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공천을 하지 말고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을 해 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에도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과 탈당이 이어지자 한 때 '친박계 좌장'이었다 '탈박'으로 돌아선 김무성 의원은 지난 12일 "우파 분열의 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끝에 백의종군이라는 결론을 냈다"며 당 잔류 입장을 밝히고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민주통합당도 공천을 둘러싸고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1차 공천심사 결과 발표부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선거 사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사무처장,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을 지낸 구인호씨를 경선후보자로 낙점했다가 철회하는가 하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임종석 사무총장,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 역시 단수공천을 받아 논란이 됐다. 결국 임종석 사무총장은 공천 반납과 함께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새누리당에 '친이학살' 논란이 있었다면 민주통합당에서는 공천결과와 관련해 '친노(노무현)의 구 민주계 공천학살'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급기야 지난 12일에는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한광옥 전 의원 등 구 민주계를 주축으로 '정통민주당'이 출범했다. 

 

"공천혁명으로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모바일 국민경선의 선거인단 모집과정에서 '투신자살' 사태를 불러왔고, 불법 조직 동원과 선거인단 대리등록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지난 6일부터 시작된 '국민경선'은 누가 얼마나 많은 '조직'을 동원하느냐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계파 갈등 속 '공천 개혁' 실패...언론은 '중계방송'만

 

하지만 이러한 공천 내홍 속에서 정작 유권자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10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12 총선유권자네트워크(이하 총선넷)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여든 야든 할 것 없다. 전체적으로 공천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계파갈등 속에서 이건 이렇게 해서 봐주고 저건 저렇게 해서 봐주고..."라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작업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 사무처장은 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공천 개혁 요구가 나오는 것은 과거의 의정활동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해 물갈이가 확실히 되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그런데 여든 야든 말이 개혁공천이지, 지난 4년의 실정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새로운 의정활동을 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을 대거 공천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사무처장은 '공천개혁 실패'의 이유로 '리멤버뎀(Remember them)' 낙천·낙선운동 명단에 포함된 이들이 대거 공천된 것을 들었다. '기억, 약속, 심판'을 기치로 내건 총선넷은 지난 2월 9일 출범식을 갖고 소속 연대기구인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 조중동 방송 저지 네트워크,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정교분리 헌법준수 네트워크, 역사정의 실천연대 등 총 6개 단체에서 '총선 심판 명단'을 발표했다.

 

해당명단에는 새누리당 193명, 민주통합당 13명, 자유선진당 5명, 무소속 12명 등 정치인 223명이 포함되었고,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총 5개 단체에서 심판대상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야당에서는 김진표 민주통합당 의원이 유일하게 3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통합당에서도 시민사회단체의 낙천운동 명단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FTA 관련 낙천대상자 160명 가운데 70여 명이 이미 공천을 받았다. 민주통합당에서도 FTA와 관련해 입장이 오락가락 했던 분들, (FTA 비준안 통과에) 책임이 있는 분들이 당 중진이라는 이유로 다 공천됐다"면서 "민주당이 FTA에 대해 다시 잘 해 보겠다는 게 맞는 건지, 미덥지 않다"고 말했다.

 

총선넷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계보에 줄 잘 선 것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인사들이 줄줄이 공천을 받는가 하면, 소위 새누리당 X맨 논란의 인사들을 줄지어 공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역 의원 교체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라며 공천 결과를 비판했다. 이어 "MB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안주하여 인적 정책적 쇄신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야당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총선 한 달 앞두고도 '후보 미확정'...'정책 비교'는 언제?

 

공천보도에서도 '기억, 약속, 심판'이 실종되기는 마찬가지다. '4·11 총선보도 민언련 모니터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지혜 모니터 부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정책 이슈를 검증하는 보도들은 거의 없고 공천상황을 중계하는 보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4년 전인 2008년 총선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동일하게 나타났다. 2008 총선 미디어연대가 작성한 '선거보도에 대한 모니터 총평가 보고서'를 보자.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공천혁명'을 제외한다면 2012년 선거정국, 이에 대한 보도행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초반에는 통합민주당 박재승 위원장이 이끄는 공천심사위원회의 '공천혁명'과 한나라당의 '물갈이 공천'으로 '도덕성' 경쟁을 펼치게 되어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기도 했으나 막판 탈락자들의 반발과 탈당, 특히 한나라당의 계파갈등과 다툼으로 선거정국은 혼탁해졌다. 선거는 오직 공천 여부와 공천에 대한 반발과 갈등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정책과 의제는 실종되어 버렸다. 신문에서도 공천보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선거준비 일정이 늦어진데다가 '권력다툼'에 대한 보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책에 대한 보도가 거의 없다보니 유권자들은 정책을 접할 수 없고,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4·11 총선은 트위터 등 'SNS 혁명'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선거를 불과 한 달 여 앞둔 3월 13일 현재, 새누리당의 경우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지역이 무려 80곳에 이른다.

 

민주통합당은 이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경선이 마무리 되는 오는 18일쯤 되어서야 후보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들의 정책을 꼼꼼히 비교하기에 20여 일은 결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유권자 없는 공천 속에 국민의 '대의기관'을 뽑는 총선은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태그:#공천, #4.11 총선, #총선넷,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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