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문했던 박물관 중 최고
▲ 제주4·3평화기념관 내부 방문했던 박물관 중 최고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지난주, 삼일절 다음 날에 휴가를 내어 4박 5일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명분은 지난 2월에 있었던 장인어른의 환갑 기념이었지만, 3월 1일 3주년을 맞는 우리 부부의 결혼도 꼽사리로 기념하는 발걸음이었다.

장모님은 자식들의 부담 때문에 여기에다 7월에 있을 당신의 환갑도 덧붙여 기념하자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환갑이지 않은가. 차라리 장모님 환갑을 명분으로 식구들 모두 여행을 또 가게 된다면 그게 더 나은 일이려니.

마음 같아서는 두 분을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으나, 작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사경을 헤매셨던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제주도 여행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작년 9월만 하더라도 장인어른의 환갑 상을 차려 드리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번 제주도 여행이 매우 특별하고 기쁠 수밖에.

이번 여행은 남편으로서 결혼기념일도 챙기고, 사위로서 장인어른도 챙김으로써 아내에게 생색낼 기회다. 이것이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물론 장인 어른과 4박 5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일말의 어색함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 벽이 조금 더 허물어지겠거니.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가다

그렇게 떠난 4박 5일간의 제주도 여행. 그러나 나의 기록은 여행 첫날이 아닌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여행 마지막 날의 경험이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고 있는 3월 9일 현재와 더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은 일기예보대로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식구들은 궂은 날씨와 11시 출발이라는 애매한 비행기 시각을 핑계로 숙소에서 늦장을 피우며 그동안 쌓였던 여독을 풀고 있었지만 난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숙소 바로 뒤에 제주 4·3 평화공원과 기념관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어른들을 모시고 유아 둘과 함께 여행하는 탓에 강정마을은 갈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주 4·3항쟁의 흔적은 되새겨야지 않겠는가. 광주에서는 망월동 참배가 예의라면, 제주에서는 4·3항쟁의 복기가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비행기 시각을 감안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시간. 난 아내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숙소를 나와 기념관을 향했다. '그래, 제주 4·3 평화기념관이 바로 지척인데, 이 서방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노'라는 장모님의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지만 그렇다고 주저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장모님이 날 이해하겠거니 믿을 뿐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제주 4·3 평화기념관. 굳은 날씨에 이른 일요일 아침이어서일까?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우리의 역사를 되새기면 좋으련만 이는 역시 나의 과한 욕심이었던가. 제주를 단지 관광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시대의 천박함이 야속할 뿐이었다.

모스크바3상회의, 친-반탁 등
▲ 시작은 비슷하다 모스크바3상회의, 친-반탁 등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전국의 다른 근현대사 관련 박물관과 엇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했다.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제주의 항쟁을 시작으로 해방 당시의 시대 상황과 분단으로 넘어가던 해방정국 그리고 제주4·3항쟁이 벌어졌던 시대적 배경과 그 전개과정, 그로인한 상처 등등.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 섬사람들의 시각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그럼에도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다른 박물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시가 제주도라는 특정 지역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4·3항쟁이 제주에서 있었으니 당연한 것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해방정국 당시 전국의 모든 항쟁을 나열하기에 급급한 여타 박물관과 달리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제주도에 집중함으로써 4·3항쟁을 좀 더 지역 공동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교과서적 나열이 아니라 4·3항쟁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민의 입장으로 바라본 4·3항쟁. 그것은 결국 섬사람의 시각이었다. 우리는 4·3항쟁을 빨갱이와 정부 싸움으로, 제주도민 간의 분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하지만, 기념관은 이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4·3항쟁은 5·10 선거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정권차원에서 좀 더 키운 사건으로서, 평화협상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뭍사람들이 섬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극우청년단 '서청'의 등장이었다. 제주도가 '레드 아일랜드'로 지목된 뒤 1947년 신임 도지사 유해진은 부임하면서 호위병으로 서청 단원을 데리고 왔는데, 이후 서청은 무차별한 '빨갱이 사냥'을 자행함으로써 제주도민의 원성을 듣게 되었다. 이는 결국 뭍사람이 들어와 섬사람을 학살한 것으로 4·3항쟁이 섬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기념관은 이와 같은 학살에 대한 설명 이후 세계의 제노사이드를 전시함으로써 제주4·3항쟁의 성격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4·3항쟁은 단순히 해방정국 좌우대립의 한 사례가 아니라, 정권차원에서 자행된 제노사이드였던 것이다. 따라서 4·3은 섬사람들이 뭍사람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의 또 하나의 기원이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이며 제주를 찾을 때마다 상기해야 할 비극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정마을과 4·3항쟁

제노사이드
▲ 기념관의 결론 제노사이드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건 역시 강정마을의 비극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

물론 혹자는 많은사람이 죽어나간 4·3항쟁과 지금의 강정마을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냐며 비판하겠지만, 결국 두 사건의 원인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1948년의 4·3항쟁이 미-소 냉전을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면, 현재 강정마을의 비극은 미-중의 신냉전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의 구조적인 문제가 이 땅 대한민국의 제주도에서 64년을 텀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학살
▲ 4·3 항쟁의 원인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학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잔인한 역사
▲ 4·3 항쟁의 기억 잔인한 역사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이와 같은 엄중한 현실 속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강정마을의 비극을 단순히 급진 환경론자 혹은 종북좌빨의 준동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추태를 벌이고 있는 서경석 목사의 '제주 해군기지 찬성집회'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그들은 결국 앞서 언급한 4·3항쟁의 '서청'과 같은 이들이다. 모든 문제를 좌-우의 분쟁으로 빨간 칠하며, 섬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뭍사람들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강정마을의 비극이 64년 전 4·3과 다를 바 없음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비록 언론들은 '구럼비 바위'에 천착하고 있지만 결국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오히려 전쟁을 불러들이는 일이며, 제주도민의 공동체를 깨는 일이며, 또, 다시 뭍사람들이 섬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자행하는 것임을 알려야 한다. 왜 똑같은 비극이 하필 또 제주도에서 자행되어야 하는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뭍사람들의 학살
▲ 서청의 등장 뭍사람들의 학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이 그립다
▲ 대통령의 공식사과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이 그립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전시관의 마지막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였다. 64년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던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의 사과. 부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또 다른 사과가 필요 없기를 바란다. 제발.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제안한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박물관, 기념관 중 최고로서 제주도에 가면 꼭 한 번 방문하시기를.


태그:#제주도, #강정마을, #4.3항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