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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MBC <무한도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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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또 다시 무료했다. '무도빠'인 남편과 결혼해 지난 5년여 동안 챙겨보던 <무한도전>을 못 본 지 한 달째. 나도 어느새 '무도빠'가 됐었나, 자각 못했던 증상을 새록새록 깨닫는 중이다. 하하와 홍철의 '형님' 대결이 4주째 중단된 가운데 "재탕, 삼탕도 볼 수 있다"면서 <무한도전> 스페셜 방송을 웃으며 보던 남편도 급기야 지난 주말엔 아예 TV를 끄고 5살 아들과 놀아줬다. 졸지에 아들만 횡재했다. (물론 아들도 토요일 저녁, TV를 보며 깔깔거리는 엄마, 아빠 옆에서 "저 아저씨들 웃기다"면서 좋아라 했었다)

MBC 파업 사태로 우리 가족의 단란했던 주말 저녁이 어그러졌다. 그 원인제공자인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반감도 한껏 올라가고 있는 중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최일구 앵커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는 기사를 뒤늦게 봤다. 주말 MBC의 간판 뉴스인 <뉴스데스크>에서 '뿌잉뿌잉'을 감행할 정도로 용기 있는 최 앵커가 용기 있게 보도국 부국장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파업에 동참한 이유가 뭘까. 갑자기 몇 달 전에 봤던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앵무새짓 이제 안 해!" 드라마 속 앵커에 속이 후련

사실 이 드라마를 본 이유는 약간 음흉했다. 그날도 무료했던 주말 밤이었다. 잠은 안 오고 지나간 단막극이나 보자고 IP TV로 <KBS 드라마스페셜>의 지난 회들을 살피고 있는데 19금 빨간 딱지가 붙은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은가. 19금은 무섭거나 야할 터. <기쁜 우리 젊은 날>(2011. 8. 28 방영)이란 제목이 무서울 것 같지는 않았다. 공중파 방송에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주말 밤이 살짝 뜨거워지길 기대하며 플레이를 눌렀다.

물론 드라마 시작과 함께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최루탄이 터지는 대학 교정의 모습, 다른 쪽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드라마였던 게다. 배경은 1980년, 대구에 사는 개그맨 지망생 형주(최성원 분)와 민구(문혁 분)는 광주방송국에서 개그맨 오디션이 열린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광주로 떠난다. 형주는 방송국에서 만난 아나운서 지망생 순남(유다인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세 사람이 광주항쟁 한복판에 선다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역사이야기다.

극 중 한 여성 앵커가 계엄군한테 총칼로 맞는 대학생들을 빤히 보면서 계엄군에서 내려온 보도문대로 북에서 침투한 간첩이 데모대를 선동하고 있다는 방송은 못하겠다고 나선다. 그가 "계엄군에서 내려오는 대로 읽기만 하는 앵무새짓 같은 따위 이제 안 하겠다"다고 보도문을 던지는데 속이 후련하면서도 짠했다. 2012년의 언론인들 모습이 겹쳐졌다. MBC에 이어 KBS, YTN, 연합뉴스까지 '공정보도 재건'을 내건 파업을 결의했다고 한다.

한 백성의 응원이 그들의 투쟁에 작은 힘이 되길 기원하며...

2012년의 언론현실을 뒤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KBS 드라마스페셜> '우리 기쁜 젊은 날'(2011. 8. 29방영)의 한 장면. 최근 방송중인 KBS 드라마 <보통의 연애>의 유다인이 아나운서 지망생 순남으로 출연했다.
 2012년의 언론현실을 뒤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KBS 드라마스페셜> '우리 기쁜 젊은 날'(2011. 8. 29방영)의 한 장면. 최근 방송중인 KBS 드라마 <보통의 연애>의 유다인이 아나운서 지망생 순남으로 출연했다.
ⓒ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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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항변에 지금은 비상시국이라며 "방송 안 하면 밖에 나가서 데모라도 할 생각이야? 방송이 장난이야? 니 본분 지켜. 그게 지금 니가 할 일이야"라고 말하는 선배가 비단 1980년에만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본분 안 지키고 나가서 데모 한다고 MBC 사측은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최일구 앵커 등 무더기 징계를 예고하고 있다.

언론만 1980년과 똑같지 않다. "거짓부렁을 씨부리지 말고 진실을 말혀. 진실을 말하라고" 외치는 시민도 1980년만 아니라 2012년에도 있다. 그래서 MBC노조의 파업이 한 달을 넘어서도 그 비난의 화살이 노조보다 사측으로 더 많이 날아가고 있을 터.

최일구 앵커는 <경향신문> '김재동의 똑똑똑' 인터뷰(2010. 12. 30자)에서 "백성의 소리를 많이 전파해주는 것"이 뉴스의 본령이라고 밝혔었다. 언론이 백성의 소리를 더 많이 전파하기 위해 잠시 마이크와 카메라, 펜을 놓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 마음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순남이가 대신 전하는 것 같다.

"지금껏 저는, 우리 방송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진실을 숨긴 죄, 권력에 순응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해고·파업 중인 언론인들이 <뉴스타파>나 <제대로 된 뉴스데스크>를 통해 전하는, 그들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진실들에 눈 뜨고 있다. 그 진실들을 다시금 공중파에서 볼 수 있기만 한다면 우리 가족은 좀 더 무료한 주말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다. 한 백성의 응원이 그들의 투쟁에 작은 힘이 되길 기원하며….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하하와 홍철의 '형님' 대결 마지막판이 방송되길 기대하는 시청자의 목소리가 파업 26일만에야 출근했다는 김재철 사장에게 함께 전해지길 바란다.


태그:#MBC 파업, #기쁜 우리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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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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