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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총수 일가들이 평창 땅 투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알펜시아 리조트 전경
 재벌가 총수 일가들이 평창 땅 투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알펜시아 리조트 전경
ⓒ pyeongchang2018.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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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검소.

수천억대 재벌들의 성공신화를 언급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양복 소매가 헐도록 입고 다녔'거나, '양말을 기워 신고 살았다'는 대기업 회장이 있는가 하면, '밥상에 반찬 세 가지 이상 안 올린다'거나 '외식은 해 본 적도 없다'는 짠돌이 CEO들의 모습도 종종 소개된다. 그런 일화가 소개될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해야 돈 벌지... 부자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라는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상위 1%에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 탈색을 위한 의도성 다분한 이런 성공신화를 대할 때면,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걸 꼭 미담처럼 소개해야 하나란 생각이 든다. 아껴 쓰자는 절약 정신에 시비 걸자는 것은 아니지만 외형에 맞지 않는 소비가 과연 존경하고 박수 칠 일인가는 따져봐야 한다. 수입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소비로 쌓아올린 개인의 부(富)가 국가 경제를 동맥경화 상태가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누군가는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직들이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한 벌에 수 천 만 원짜리 옷과 가방을 든다고 '과소비'라고 욕하지만, 그들의 수입과 비교했을 땐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물론 국민 정서상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동계올림픽 예정지인 평창에 수십 억짜리 땅을 사놓은 뒤 몇 배로 불리려는 이들에 비하면, 그런 과소비는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다. 상위 1%의 사람들이나 대기업이 정작 비난받아야할 것은 과소비가 아니라 많이 벌면서도 쓰지 않는 이기적인 소비 형태다.

국민들 덕에 살아난 기업들 머리에 국민은 없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50대 기업의 매출은 2배 가까이, 이익은 4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고용은 35% 느는데 그쳤으며,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한화 등 10여개 기업은 오히려 노동자 수가 줄었다고 한다(KBS 2월28일자 보도 참고). 매출은 느는데, 고용은 정체거나 줄어들었다는 건 이미 채용된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강도가 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익은 4배나 늘어나는데 고용에는 인색했다는 것은 재벌 곳간에 돈을 쌓아 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골목의 영세상인들 밥그릇까지 빼앗으면서 부를 축척한 대기업들에게선 최소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들은 날이 갈수록 거대해졌고 기업 CEO와 고위 임원들은 덩달아 부유해졌다. 중소기업들은 그들의 먹잇감이 됐고 중산층이라 불리던 이들도 빚더미를 떠안게 됐다. 이게 끝이 아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설 자리를 잃었고 노동자들은 극히 일부의 고위 연봉자를 제외하고는 임금을 삭감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지난 1997년 불어 닥친, 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국가의 안일한 대처가 만들어낸 IMF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헌신적으로 희생을 감수한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직의 고통 속에서도 아이 돌 반지까지 내놓았던 국민들이 없었다면 경제위기 극복은 요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 덕에 살아난 기업들은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곳간에 돈을 쌓았을 뿐이다. 이런 연유로 IMF 경제위기 이후 서민들은 쪽박을 찼고, 이와 달리 기업들은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를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보다 가정경제가, 부자보다 서민이 더 위태로워 보이는 건 지금의 경제구도가 만들어낸 필연적 현상이다.

평창 땅 투기를 '투자'라고 우기는 사람들

1% 부자들의 평창 땅 투기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평소 검소한 기업인을 언급할 때마다 상징처럼 등장했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을 비롯한 GS 그룹 총수 및 대주주 일가족 22명이 동계 올림픽 선정 전후에 수십억의 돈을 들여 평창 인근 땅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매우 허탈했다. 국민들의 올림픽 유치 염원도, 세계적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유치 노력도 그들에게는 재주넘는 곰으로 보였을 것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삼성 이건희 회장을 특별 사면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땅을 사들인 이들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주장한다. 풍광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조처였다고 항변한다. 그곳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매입이 불가능한 땅이다. 본인들은 농사지을 목적으로 수 십 억을 들여 땅을 샀다는데 대체 어떤 농사를 지어서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낼지 들어 보고 싶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내 눈에는 투자와 투기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당사자들의 변명이야 어떻든 국민들 눈에는 투기로 보인다. 농지를 수 십 억에 매입, 현지인을 고용하여 농사짓는 시늉만 하면서 시세 차액만 노리는 행위는 1% 부자들의 관습과도 같은 재산증식 수단이었다. 돈 없고 법에 어두운 국민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땅사랑
이 아닌, '땅투기'다.

고액 연봉과 수억 원의 성과급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는다고 해서 마냥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 돈으로 수 십 억 원어치 땅을 사서 수 백 억 원의 시세차액을 노렸다면, 그건 공공성을 해쳤다는 측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곳간에 돈을 쌓는 일이 아닌 재투자하고 인력을 충원해 사회에 부를 환원하는 것이다. 또 1%의 부자들이 해야 될 것은 막대한 수입에 걸맞은 소비지, 돈의 흐름을 막는 절약이나 몇 배 시세차액을 노리며 돈을 묻어 놓은 일은 아니다. 1% 부자들의 성공신화가 탐욕의 습관으로 비난받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소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이런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아쉽게도 IMF 경제위기를 겪고도 제대로 된 학습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민들은 금반지를 파는 등 기업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대신 치러줬지만,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공룡과도 같은 대기업의 식탐에서 영세자영업자나 서민들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를 만들지 못했다.

1% 부자들의 투기를 제재할 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탐욕의 습관을 옹호한 측면도 없지 않다. 특히 이런 일들은 기업하기 좋은 풍토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이명박 정권하에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종합부동산세가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라는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의 지적은 뼈아픈 지적이라 할 수 있다. 

19대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표심을 얻기 위한 각당이 행보가 분주하다. 나라 거덜 난다며 아이들 밥 한끼 먹이는데도 좌파를 들먹이던 정당조차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복지'라는 플래카드를 길거리에 걸어 놓는 등 선거를 앞둔 정당의 변신은 광대의 몸짓처럼 요란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경제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1% 부자들을 위해 일해 왔던 사람들, 평창 땅투기 사태가 보여주듯이 그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없다. 그들은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평창을 연호할 때 지도를 펴 놓고 투기할 땅을 골랐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유린하고, 값싼 노동력을 요구할 때 법으로 뒷받침 해오던 사람들과 1% 부자들이 전국의 노른자 땅에 투기로 수십 배의 재산을 불릴 때 최소한의 법적 제재 장치마져 풀어 버린 사람들. 이제 당신들도 심판 받아야 한다. 서민들도 살만한 세상, 부(富)가 축척되지 않고 골고루 돌아 갈 수 있는 세상, 돈이 땅투기에 발목 잡히는 게 아니라 국가의 모세혈관인 서민들의 삶에까지 흐를 수 있는 세상. 대다수 국민들은 19대 총선을 통해 이런 세상이 되길 바랄 것이다.

'이웃집 암소를 죽여주세요.'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이야기로, 가난한 농부가 도저히 가지지 못할 옆집의 암소를 보면서 하느님에게 소원을 비었다고 한다(<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김영사, 로버트 라이시). 1% 부자들의 탐욕 습관이 적당한 방법으로 제재되지 못하고, 빈부의 격차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 될 수 없을 때, 암소를 가지려는 노력보다 옆집 암소가 죽기를 바라는 저주가 생겨날 것이다. 이제 이웃집 암소가 죽기를 원하는 저주를 막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웃집 암소에 대한 죽음의 저주는 1% 부자나, 99% 사람들, 국가 전체에도 재앙일 수밖에 없다.


태그:#19대 총선, #평창 땅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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