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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조립라인에서 근무했던 노동자가 유방암으로 사망한 것을 두고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1995~2000년까지 5년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김도은(36)씨가 지난 3일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4일 '재해발생 경위 및 유족급여 청구이유서'이라는 자료에서 "김씨의 사망원인인 유방암과 삼성 반도체 근무환경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에서 입수한 김도은씨의 수술을 담당한 조선대학교 주치의의 소견서에 따르면 해당 주치의는 "체내에서 유방암이 발생 후 치료를 요할 정도의 임상증세의 발현까지는 수년 이상의 장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1995~2000년까지의 삼성전자 업체에서의 근무여건(방사선 노출, 화학물질의 접촉 등....환자진술에 의함)과 유방암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망한 김도은씨 주치의 소견서
 사망한 김도은씨 주치의 소견서

"작업장에 방사선 측정계가 하나도 없어"

김씨의 유족이 3월 6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할 예정인 '재해발생 경위 및 유족급여 청구이유서'에 따르면 사망한 김도은씨는 1995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7라인 초기 셋업 멤버로 입사해 초기에는 임플란트 작업을 3년 4개월 동안 담당했다.

임플란트 작업이란 반도체 소자가 전기적 특성을 가지도록 웨이퍼 위 필요한 부분에만 고전압으로 가속된 이온을 물리적으로 주입하는 이온주입기를 관리하는 일이다. 이때 이온주입기에서는 전리방사선이 발생한다. 김씨는 임플란트 작업 후에는 포토, 식각 업무를 1년 5개월 동안 담당했다.

청구이유서에는 "포토(광학현상) 작업은 감광제(PR)를 사용하는데 감광제에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포함되어 있고 공정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젠 등을 발생시킨다"고 적혀있다. 김씨는 4년 9개월 가량 기흥공장에서 근무하고 2000년 퇴사했다.

반올림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2009년 유방암 판정 이후 반올림에 제보한 근무환경 진술에서 "해당 작업공간에는 방사선 측정계가 하나도 없었다"며 "납 차폐가 완벽하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면서 하루 8시간 내지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김씨가 디퓨젼(Diffusion)이라고 불리는 반도체의 전도를 좋게 하기 위한 확산 공정을 몇 개월간 겸무했다"며 "확산 공정에서는 황산(H2SO4)등의 발암 물질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디퓨전 공정 및 습식 식각 공정 작업을 한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의 경우 지난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업무와 백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김도은 씨의 주치의 소견이 담긴 반올림 자료 1
▲ 반올림 자료 1 김도은 씨의 주치의 소견이 담긴 반올림 자료 1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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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 이종란 노무사는 재해 경위서에서 김도은씨가 ▲ 삼성반도체 입사 전에 매우 건강했고 ▲ 유방암에 대한 가족력이 없으며 ▲ 유방암 발생이 드문 33세에 진단받았다는 점 ▲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전리방사선 및 TCE, 벤젠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복합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된 점 ▲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교대근무를 5년간 했다는 점 ▲ 면역력 저하를 통해 암 발생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인자인 직무스트레스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었다는 점 ▲ 비직업적 위험요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김도은씨의 유방암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충분하므로 산업재해를 신속히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실제 김도은씨는 3월 6일 고 황유미씨의 5주기 추모일정에 맞춰 '반올림'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올림은 3월 5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고인을 대신하여 반올림과 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예정대로 3월 6일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하려 한다"며 이후 "재해발생 경위 및 유족급여 청구이유서를 근로복지공단에서 서류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은 "고 김도은님처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유방암이 발생했다고 제보해 온 피해자가 7명이나 된다"며 "피해자 김도은씨를 비롯해 2명이 유방암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이어 "우리가 확보한 삼성 직업병 피해제보 수 137명 중 53명이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이 계속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자본은 정부의 비호 하에 계속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 "방사선 노출량 일반량에 못미쳐" 직무관련성 부인

김씨의 사망과 관련해 삼성전자 기흥공장 관계자는 "김도은씨가 1995년부터 4년 8개월 동안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었다"면서도 "(김씨가 직무관련성을 주장하는) 임플란트 공정의 직무방사선 노출량은 고용노동부(기준) 수치로 봤을 때 일반적 자연방선에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에칭과 식각 공정에서 김씨가 노출된 것으로 알려진 벤젠에 대해서도 "수도권 대기 중의 벤젠 농도 이상의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본다"며 김씨의 유방암 발병과 직무관련성을 부정했다. 김씨의 유방암 발병과 직무관련성이 높다고 제기된 교대근무에 대해서 삼성 반도체 관계자는 "국제암학회에서 유방암 발병 인자로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일반적 의미의 주장으로 이해할 뿐 직접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유방암 발병과 직무관련성을 부정하는 삼성 반도체의 입장과 달리 일부 전문가들은 연관성을 주장했다. 연세대학교 부설 근로자건강 지원센터의 산업의학 전문의 김인아 교수는 김도은씨가 노출되었다는 전리방사선의 경우 "어떤 암이라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벤젠의 경우도 여성노동자가 이에 노출되는 근무 환경이 드물기 때문에 역학조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유방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다.

반올림 활동을 하고 있는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씨는 "전리방사선은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낮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공유씨는 또 서울대산학협력단이 지난 2009 진행한 삼성전자 기흥공장 5라인의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결과를 들어 평소 이 공장의 화학물질 관리 부실 실태를 지적했다. 또 "교대근무와 유방암 발병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국제학회 등에서 학문적으로 입증된 사례들이 있다"며 김씨의 근무환경과 암 발병과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한편 '반올림'은 고 황유미씨의 유족 등과 함께 황유미씨의 5주기를 맞는 3월 6일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12시에 광화문에서 '대정부 책임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오후 4시에는 서울역에서 추모행사와 선전전을 한다.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노동자 추모 문화제를 연다

이에 대해 방송인 김미화씨는 트위터에 고 황유미씨 추모 글과 산재노동자 추모문화제 소식을 리트윗하며 동참의지를 보였다.


태그:#삼성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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