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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낸 후, 홍역을 치렀다. 두 초등학교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관한 설문내용을 바탕으로 한 기사였다. 부자동네 학교 아이들과 가난한 동네 학교 아이들의 꿈은 현실적 빈부격차만큼이나 매우 달랐다는 내용이었다.

 

홍역은 기사내용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치렀다. 뒤늦게 내가 도둑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앓이를 하고, 한나절 전화통을 붙들고 싸우고 결국 내가 살 길은 내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던 사건. 되찾을 길 없는 명예를 말하고자 한다.

  

논란은 엉뚱한 곳에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한 건 2월 23일 오후, 기사가 정식으로 나간 건 2월 25일 오후였다. 기사가 게재되고 이틀이 지난 27일 오전에도 <오마이뉴스>의 기사에는 댓글 대여섯 개, 트웟 열 몇 건, 페이스북 '좋아요' 추천자 100여 명. 외형상 핫이슈가 된 기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장래희망' 검색을 했다가 뜨악했다.

 

논란은 딴 곳에서 벌어졌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내 기사 전문이 실려 있었고, 그곳에는 공식 댓글이 306건, 댓댓글 달린 댓글은 100개가 넘었다. 게다가 어느 한 댓글에는 추천자가 700명이 넘었다.

 

내가 네이트를 찾은 건 27일 오전, 그런데 댓글이 마지막 달린 건 26일 점심 무렵이 끝이었다. 이미 네티즌들이 찾지 않는 기사였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미처 몰랐다. 내 기사가 오마이뉴스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논쟁 중일 줄은.

 

아니, 내가 도둑이라니...

 

"이경숙 기자님 엄청 약으셨다. MBC다큐멘터리에 나온 거 그대로 뺏겨서 자기가 쓴거처럼 자기이름 다 붙여놓았내 뭐여."

"대구 MBC에서 "교육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중 나온 내용입니다. 오마이뉴스 이경숙 기자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기사를 쓰네요."

 

네이트 댓글을 보다가 발견한 글. 댓글 300여개 중 겨우 스무 개밖에 확인하지 않았는데, 이런 댓글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평상시 표절에 예민하고, 표절비판 기사도 쓴 사람으로서,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다. 이게 뭔가.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니. 분명히 설문조사는 대구 MBC와 공동조사 한 것이고, <교육을 말한다>라는 프로는 1월 25-27일 방영되었다고 기사에 적었는데. 네이트 기사를 다시 확인했다. 오마이뉴스 기사 원문에는 있던 출처가 사라지고 없었다.

 

네이트에 전화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적어놓은 기사의 출처는 어디로 사라졌느냐. 당신들 때문에 내가 도둑이 되지 않았느냐. 이런 댓글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다 찾아다닐 수도 없다. 당신들 때문에 내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네이트의 대답은 뻔뻔했다.

 

"우린 기사 전문을 싣는다. 당신이 기사 전문에다가 그 내용을 밝히지 않았던 게 아니냐. 우리 잘못은 아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 내가 분명히 내 손으로 출처를 적었다. 그런데도 그걸 쏙 빼고 네이트에서 기사화하는 바람에 내가 졸지에 도둑이 된 것 아니냐. 당신들이 출처를 빠뜨렸다고 해명하는 글을 써라."

 

설전은 계속 되었다. 전화통을 붙들고 한나절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은 이랬다. 나는 대구 MBC 다큐멘터리 <교육을 말한다> 제작과정에 참여했다. 기사화 한 설문조사는 내가 만들고 직접 분석한 것이다. MBC 방송에도 한 줄 자막 속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방송에는 다 내보내지 못했던 설문조사 내용들을 추가하여 작성하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모르는 시청자는, 오마이뉴스에는 적혀있던 출처가 빠져 있자 내가 MBC방송을 베꼈다고 적은 것이다. 이건 순전히 출처가 빠짐으로써 생긴 문제였다.

 

뒤늦게 안 사실, 쫒아가 막을 수 없으니, 결국....

 

벌써 하루가 지나가버린 인터넷 기사, 그 기사는 더 이상 찾는 이 없는 빈 집이었다. 어쩌면 철지난 해변 같았다. 여름 해변의 사람들은 내가 도둑인 줄 알고 각자 돌아갔고, 난 그들이 누군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으니... 뒤늦게 댓글에다가 해명의 댓글을 달았으나, 아무도 그 글은 읽어볼 이가 없었다. 전화통을 붙들고 네이트와 오마이뉴스에 항의했으나, 말뿐인 실없는 사과. 결국 나는 죽은 놈 불알 만지는 격의 해결책 한 두 개로, 내 마음을 접기로 했다.

 

해결책 하나는 오마이뉴스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나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기사작성 때 포털사이트 기사전송 사실을 공지하고 기자 본인이 기사를 전송할지 선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사가 링크되는 것과 기사전송은 달라서, 기사가 전송되면 기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곳에서 논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해결책은 늦었지만 네이트 기사에 원래의 출처를 덧붙이도록 하는 것. 그러나 아무도 찾지 않는 해변가에 홀로 가서 '난 도둑이 아니요' 종이쪽지 하나 써 들고 있는 격이니, 한심하다. 그래도 이마저 안할 수야 없으니.

 

무엇도 도둑이 된 내게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인터넷의 빠른 속도를 뒤따라가며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네이트 기사를 보았을 뿐이지, 수많은 트위트와 페이스북, 블로그들이 옮겨간 글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순간, 감내해야 하는 문제인 줄 안다. 인터넷에서 개인의 명예가 훼손돼도, 막을 방도가 없다. 가장 큰 해결책은 내 마음을 접는 것이었다. 그래, 내가 아니면 되는거야. 그래야 내가 살지. 긴 한나절의 끝은 그렇게 끝났다.


태그:#인터넷 기사,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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