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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김선동 의원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김선동 의원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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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최대 축제는 이취임식이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입니다. 대개 이런 날은 두 차례에 걸쳐 행사가 치러지지요. 외부에서 많은 화환들이 오고 축하와 함께 지도부의 첫 시험무대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업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정기대의원대회는 주로 1월부터 3월 사이에 열립니다. 행사는 1, 2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1부 행사 때는 조합원들과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내외빈도 많이 옵니다. 이날은 떠나는 전임자와 새 지도부의 이임행사 속에 축하와 격려 속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행사가 끝나면 간단한 다과회도 열립니다.

이후 2부 행사가 이어집니다. 본격적으로 대의원들의 열띤 토론이 오가는데 이날 뭐니 뭐니 해도 최대 하이라이트는 '예산안 승인 인준 안건'의 처리입니다. 예산을 삭감하려는 대의원과 사업비 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지도부들의 치열한 토론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화섬광전본부가 반쪽짜리 노조로 전락한 사연

한때 광주전남에서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화섬연맹광주전남지역본부(아래 화섬광전본부)는 이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조합지도부의 의지와 리더십이 얼마나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는 화섬광전본부의 역사가 말해줍니다.

화섬광전본부는 1998년 5월 11일 엘지화학여천나주노동조합에서 준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당시 금호타이어와 엘지화학여천나주, 한국레미콘, 대한시멘트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매월 1회 정례적인 회의를 통해 강력한 지역본부 건설을 위한 현안 문제를 논의합니다. 4개 노조 5154명의 조합원을 갖춘 조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1년 뒤 8개 노조 6644명의 조합원 대오의 광전본부(초대위원장 금호타이어 김선진)를 출범하게 됩니다. 이후 해마다 조직력이 확대되어 2000년에는 10개 노조 7722명, 2001년 17개 노조 9150명으로 급속히 늘어납니다. 이들은 2003년 공동교섭 공동투쟁을 요구하면서 광전본부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때 조합원 수는 24개 노조 1만44명에서 2005년에는 35개 노조 1만177명에 이릅니다. 이는 광주전남 최대의 규모입니다. 이후 주5일 근무와 40시간 쟁취, 비정규직 철폐, 산별노조건설을 주요사업으로 여수산단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대표자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이후 여수산단은 전국 최고의 근로조건을 갖춘 사업장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서 조합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서 조합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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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화섬광전본부가 쇠퇴의 나락으로 빠진 첫 번째 도화선은 2004년 엘지정유노조(현 GS칼텍스 노조) 파업 이후입니다.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기업의 사회적 책무, 여수지역 청년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엘지정유노조가 무참히 패배합니다.

그 여파로 조합은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민주노총도 탈퇴합니다. 더욱 가관은 2008년 L화학 김아무개 본부장 시절입니다. 김씨는 2009년엔 정기대의원대회도 개최하지 않고 중도사퇴를 합니다. 또한 당시 상부단체 의무금을 납부하지 않는 여러 개의 사업장은 상부단체에서 제명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결국 올 1월 기준 화섬광전본부에 남아 있는 조직은 7개 노조 2713명입니다. 앞서 2007년 산별노조로 전환된 곳은 여천NCC를 포함해 4개 노조 626명인데 이들을 합하면 3339명의 조합원이 화섬 광전본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역 노동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지도부들이 정파싸움에 휘말려 초가산간을 태운 격입니다. 파벌이 만들어낸 노동운동의 말로입니다.

지난 2월 29일 오후 여수근로자복지회관 4층에서 열린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와 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 다녀왔습니다. 5년 전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해 조합 일을 손뗀 지 오래지만 이번에 단위노조의 집행부에 합류하다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7기 임원으로 선출된 박상일 본부장은 "우리가 시장과 국회의원들에게 당당히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면 조직력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반쪽짜리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라며  "반 쪽짜리 화섬노조를 반드시 복원해 건설노조와 함께 노동운동의 선봉에 서겠다"고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어 박 본부장은 "이번 보궐선거에 나선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고생이 많은데 지도부들이 조합원의 맘을 얻도록 초심을 잊지 말고 조합원에게 헌신해 통합진보당 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서 지도부들이 제대로 활동하라는 요구에 따라 만세를 외치고 있다.(좌부터 최호연 전남지부장. 최병용 광전부본부장, 차호철 광전부본부장, 박상일 광전본부장)
 화섬연맹 광전본부 제7기/화섬노조 전남지부 3기 임원이 출범하는 광전본부장, 전남지부장 이취임식에서 지도부들이 제대로 활동하라는 요구에 따라 만세를 외치고 있다.(좌부터 최호연 전남지부장. 최병용 광전부본부장, 차호철 광전부본부장, 박상일 광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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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연 전남지부장은 "이 길이 험한 길인 것을 알지만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앞장서겠다"라며 "여수가 전임시장의 뇌물비리로 11명의 시도의원이 불명예스럽게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있는 부끄러운 도시의 시민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뇌물비리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노동자후보를 반드시 당선시키자"라며 민주당 심판론을 강조했습니다.

김선동 의원 "어렵고 힘든 시기엔 결연히 나서야..."

연대사에 나선 김선동 의원은 "여수지역 노동운동의 발원지는 여천NCC지만 화섬연맹이라는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운 곳은 엘지화학 노조가 그 중심에 있었다"라며 "내가 한때 민주노총의 상근자로 일할 때 광전본부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62명 대의원 전원이 참석해 30대 32의 표결로 본부장에 당선되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었습니다.

김선동 의원은 "하지만 지금은 위기다. 조합지도부는 그렇게 잘나갈 때 자리를 차지하기 보다는 어렵고 힘들 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고 꺼려할 때 나서는 것이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정신이며 민중 속에서 인정받고 존경 받는다면 역사가 추구하는 정신과 성과가 반드시 남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보궐선거에 나선 통합진보당 시도의원 후보를 격려했습니다. 

이어 한창진 여수넷통 대표는 "보궐선거 당시 내가 김선동 의원의 야권연대 공동선대위원장을 했다"며 "국회의원이 광전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것만으로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한 대표는 "저도 여천에서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여천교사협의회 회장, 여천시군 전교조 초대회장을 하면서 해직의 아픔을 5년 간 겪었다"라며 "요즘도 화섬연맹이 여수지역의 어용노조를 제외하고는 노동운동의 시작이고 중심이었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여수 산단 노동자들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한창진 대표는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었는데 왜 (여수을 지역구) 여천은 노동자 후보가 시의원에 도전해도 당선되지 못했을까, 여기 계신 노동자 후보인 천중근 의장이 여러 번 출마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노동자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 노동자 후보가 나오지 못한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고 일갈했습니다.

한창진 대표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로 가라"

화섬연맹 7기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한창진 여수넷통 대표는 "수가 적을 때는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지도부가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화섬연맹 7기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한창진 여수넷통 대표는 "수가 적을 때는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지도부가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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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요즘 진보진영인 민주노총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며 "왜 활동가들이 정말 내 자신한테는 엄격하고 남한테는 포용적이고 부드러워야 하는데 내 생각하고 조금만 다르면 그것을 다름으로 보지 않고 틀림으로 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여수지역의 중심인 화섬연맹이 둘로 나눠져서 보듬지 못하고 감싸 안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느냐"며 "발톱을 감춰야 할 텐데 실제로 힘도 없는 사람들이 발톱만 내세우는 이런 일들이 우리를 더욱더 왜소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화섬연맹이 수가 적을 때는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제대로 일해야 한다, 87년에 했던 그 자세로 돌아가면 못할 것이 없지 않겠냐"라며 "이제는 조합의 벽을 넘고, 공장의 벽을 넘고, 업종의 벽을 넘어야 한다"라고 지도부의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수 산단 노동조합 쇠퇴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한창진이가 월급도 많고 혜택도 많은 여도 초등학교에서 전교조 깃발을 여도 중학교와 같이 들었을 때 '노동형제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다' 이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관리자 못지않게 어떻게 대했나? 나는 노동자이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은 노동자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엄청 컸다. 담임선생님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빨간 띠 두르는 것을 이해 못했다.

노동자가 노동자인 것을 인식하지 못한 분위기가 여수산단이었다. 석유화학 장치산업이라는 특징이 노동자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비록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어도 내가 받은 급여, 내가 받은 복지는 전국에 어디 내놔도 의사 못지않게 변호사 못지않게 받으니까 필요에 의해 노동조합원이지만 삶의 질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노동자란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는 제 나름 대로의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결국에 지역민으로부터 귀족노동자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아온 것이 아닌가?"

오늘 한창진 대표의 연대사를 들으며 왠지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안일하게만 생활하려 했던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케 합니다. 동시에 작은 이익에 안주하려는 현장의 자화상을 들여다봅니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일상은 365일 밤낮없는 교대근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 귀족노조로 안주한다면 앞으로 우리 노동자들의 권리는 과연 누가 지켜줄까요?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와 여수넷통에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섬광전본부, #노동조합, #귀족노동자, #여수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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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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