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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 먹는 것이 왜 이리 귀찮을까? 하긴 흔히 말하는 '아점'을 먹는 날의 연속이다 보니 특별히 밥과 국을 차려놓고 먹는 아침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만, 그래도 뭔가 간단하면서도 격식차려서 모양과 맛이 모두 좋은 것을 먹고플 때가 있다. 이럴 때 딱 맞는 식재료로는 뭐니뭐니 해도 계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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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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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열면 와르르 쏟아질 듯이 꽂혀있는 이 달걀들이 뭐가 그리 특별할까 싶겠지만, 영화 '귀여운 여인'에 보면 줄리아 로버츠를 위해서 리차드 기어가 호텔 룸서비스를 시켜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아침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달걀이었다. 오믈렛부터 시작해서 온갖 달걀 요리가 줄줄이 룸서비스 되어 들어와서는 실로 다양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는 각종 달걀 요리들이 한 여자의 마음을 움직여놓는다는데 이 장면의 의의가 있다 하리라.

이렇듯 일상에서 가까이 보는 달걀이다 보니 그저 생각 없이 대하곤 하지만 기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민족은 유달리 '알'을 신성시해서 신화 속에서 알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는데, 동명왕·탈해왕·박혁거세·수로왕 등의 시조신(始祖神)이 알이나 난형(卵形)의 것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는 우리나라 시조신 신화 중 가장 많은 형태를 차지하면서, 한민족이 가진 알에 대한 경이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 귀한 이미지로 자리한 알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달걀은 매우 귀한 선물로 다뤄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지인의 생일, 회갑, 결혼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달걀을 꾸러미에 담아 선물하던 풍속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또한 조선시대의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 시의전서(是議全書), 주방문(酒方文) 같은 전통 요리책에는 달걀탕, 알국, 알탕이 기록돼 있을 만큼 이 시절에도 달걀으 이용한 음식이 다수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요즘 우리처럼 중국집에서 볶음밥 시켜 먹을 때 '국물은 계란국!' 하듯이 조상님들도 '어흠, 요즘은 기력이 없으니 계란 풀어서 탕 좀 끓여 보게나'했을 런지도 모른다. 한편 가까이 1950년대 까지는 달걀꾸러미가 명절 선물로 가장 큰 역할을 했으니, 실로 달걀이 이웃과의 정을 만들어 준 특별한 물품이라 할 수 있으리.

달걀에 대해 좀 더 일상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장년 세대들의 도시락 추억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겨울철 교실의 난로 위에 하나씩 올려져 있던 양은 도시락! 그 도시락의 묘미는 밥 아래 숨겨져 있던 달걀프라이다. 형제 많은 집이라면 으레 장손에게만 돌아가던 그 시절엔 따로 단백질을 보충할 수단이 많지 않았기에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으로써 친구들에게 빼앗길까 도시락 맨 아래에 숨겨서 손으로 가려 먹던 것이 달걀프라이였고, 요즘에 분식점의 복고 메뉴인 추억의 도시락이야 말로 달걀에 대한 예의와 경의를 가장 잘 표현한 진수라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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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프라이를 얹은 옛날 도시락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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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달걀을 특이하게 활용한 음식으로 모닝커피를 빼놓으면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노른자 동동 띄운 이 커피는 7,80년대의 한국에서 다방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으로 생겨났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아침을 거른 직장인을 위해 레지들이 내놓는 최고의 음료라 할 것이다. 게다가 날달걀 하나 띄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위에 참기름까지 한두 방울 치기도 했다니, 너무 지나치게 앞서가는 동서양의 조화 아닌가 싶어서 피식 웃음도 나오지만 말이다.

아침상에 딱 어울리는 부들부들한 새우젓달걀찜, 도시락 반찬으로 짭쪼롬하니 양념 잘 밴 소고기 달걀조림, 냉면 위에 고명으로 꼭 얹혀야만 맛과 모양과 건강까지 완성되는 삶은 달걀 반쪽까지 우리는 달걀 덕분에 눈이 호강하고 더 나아가 영양을 챙길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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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계란을 얹은 냉면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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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엄마가 하숙방 아저씨에게 삶은 달걀을 매일 밥상에 올려놓았듯이 이것은 조심스레 정성 다해 내놓는 소박한 음식의 대명사이다. 한편으론 영화' 북촌방향'에서 자취 중인 남자들이 집에 와서 특별히 먹을 만한 게 없자 냉장고를 뒤져 나온 달걀 여러 개로 프라이를 해서 나눠 먹는, 이른바 일상에서 늘 존재하며 우리를 문득 기쁘게 해주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 해준다.

한편으론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눈두덩이 시퍼렇게 됐을 때는 달걀로 문질러서 멍을 없애고, 가장 예쁜 얼굴을 일컬어 '계란형 미인'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계란이 우리의 정신과 일상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은 문화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달걀. 이제 브런치가 대중화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이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양 음식을 빛내주는 최고의 주연이면서 우리네 삶에서 오래 전부터 정서를 만들어 온 특별한 조연이다. 소중하고 귀한 것, 사랑과 정 그리고 이루기 어렵지만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욕구에 대한 갈망이 달걀하나에 모두 담겨 있다고나 할까?


태그:#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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