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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4일 오전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공인된 서울 중랑구 면목2동 '나래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숫자 놀이를 하고 있다.
 2009년 5월 4일 오전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공인된 서울 중랑구 면목2동 '나래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숫자 놀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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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어머님~ 뉴스 보셨죠? 지금 세 가정 아이들만 등원했어요. 그동안 어린이집은 여러 공문들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우리가 휴원하기는 처음이잖아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동네 어린이집 전체가 휴원했어요. 우리만 빠지기가... 사정이 안 되시면 몰래 보내셔야 하고, 29일은 전체 불을 끄고 있을 예정입니다." 

민간어린이집이 집단 파업에 들어간 월요일(27일) 정오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이번 주를 신학기 준비기간으로 정해 맞벌이 가족 아이들만 등원하게 안내장을 보낸 터라, 휴원 소식에 편치 않았지만 이날 아침 아이를 맡겼다. 그런데 뒤늦게 어린이집에서 연락을 해와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이런 당부(?)를 듣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맞벌이 부모뿐 아니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라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맞벌이는 미리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맡겨야 해 분주할 수밖에 없고, 이도저도 어려우면 직장 눈치를 봐가며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전업주부도 일 주일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아이와 예상치 않게 씨름을 하게 되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 완전히 문을 닫은 어린이집은 없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등원하지 않도록 하루 전날 통보하면서 사실상 어린이집은 문을 닫은 거나 마찬가지다. 

다음 아고라에 교사가 쓴 글, 누리꾼 '부글부글'

어린이집 휴원을 두고 며칠 전부터 기사가 나왔고, 인터넷이 이와 관련된 기사와 의견들로 들끌었기 때문일까. 28일 오후,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29일 행하기로 했던 전면 휴업 방침을 철회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어린이집에 대한 논의가 봇물 터지듯 이뤄지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도 민간어린이집 집단 휴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민간어린이집 교사가 쓴 글(아이디: 아잉)이 올라가면서 이틀이 채 안 돼 4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원장과 남편이 나와 페인트칠을 직접 할 정도로 원 운영이 딱하고, 보육교사들도 화장실 갈 시간도, 밥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이 힘들게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다며 힘을 보태달라는 호소문이었다. 운영의 어려움과 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보육교사와 원장들이 수많은 탄원서를 냈는데도 정부는 귀를 닫아 부모와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탓에 집단 휴원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누리꾼들이 많았다. 비일비재한 어린이집 가혹행위, 썩은 음식, 영아 사망이나 부당하게 돈을 가로채는 원장이 여론화되면서 어린이집을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누리꾼들은 보육교사들의 사정은 공감하지만 아이를 볼모로 잡는 집단 휴원은 반대한다고 분노했다. 부모들이 보육료 외에 기타 명목으로 많은 돈을 내는데,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며 되묻기도 했다.

반면 같은 처지의 원장이나 보육교사 경험자들은 어려운 어린이집 현실을 재차 강조하며 누리꾼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형이나 공공형으로 쪼개져 어린이집마다 지원이 다른 게 말이 되느냐며 힘없는 민간만 지원이 적다고 억울해했다.

한 육아 카페에는 '어린이집 파업'이라는 제목으로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은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해달라면서 왜 원장이 파업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한다. 보육료 올려주면 교사들 월급 올라가는지 알 수도 없고, 오히려 원장들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생각들이다. 게다가 특기활동비를 받으면 얼마를 쓰는지 공개하는 게 당연한 건데, 오히려 공개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거다. 적정하게 책정된 보육료로 왜 보육교사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 왜 운영이 어려운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 한 번 따져보자는 격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보육료 인상, 보육교사 처우 개선, 특기비 규제 철폐 등을 내건 이번 민간어린이집의 파업에 대다수 학부모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무상보육을 한다고 좋아했는데 웬 날벼락이냐는 반응이다.  

무상보육, 왜 이 지경에?

당선후 첫 보육시설 방문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마포구 상암2지구 10단지내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당선후 첫 보육시설 방문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마포구 상암2지구 10단지내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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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무상보육이라며 생색내기를 할 때마다 안으로 곪은 보육 문제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는 만 5세 누리 과정을 만들어 2012년부터 월 20만 원씩 지원하고, 만3~4세 지원도 같은 방식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권에서 만 0~2세 보육료 지원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시설 미이용 아동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야기했다. 급기야 전 연령층에서 진짜 무상보육을 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부의 성급한 성과주의와 정치권의 정치적 계산이 무상 보육의 우선순위를 무너뜨리면서, 무상보육 여론을 쓰나미로 맞고 있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만0~5세 아이들 보육 지원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만5세아 무상보육 지원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부모와 어린이집의 갈등을 초래했다. 부모는 무상보육이라고 해 부담이 줄어들 거라 기대했는데, 기본 보육료 외에 20만 원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받는 기타 경비가 보육료 지원에 빠져 부모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어린이집이 추가로 걷는 특기활동비 등을 동결하고 회계를 공개하라는 규제를 내린 모양이다. 또 영유아 전 연령에서 무상보육 요구가 잇따르자, 정부는 애꿎게 교사 임금을 동결해 버렸다.

만0~2세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이 전 소득계층으로 확대되면서 기현상이 벌어졌다. 집에서 키우던 아이들조차 보육시설로 몰려들어, 정작 맞벌이 가정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이 부족하게 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영아의 추가 보육 수요가 최대 13만 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어린이집의 여유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증원이나 증설이 불가피하고, 보육교사 1만 명 이상 추가 채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의 보육료 지원으로 어린이집 대기자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회 선거를 앞두고 표 결집을 위해 강경대응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여러모로 절묘한 시점에, 민간어린이집이 일주일간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뻔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정부의 무상보육을 마냥 좋아한 학부모, 재정이 여의치 않았던 정부, 열악한 보육 환경? 모두가 무상보육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무상보육이 과연 답인지 짚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무상보육은 정부가 부모 대신 보육료를 내주는 것이다. 부모들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인데 정작 무상보육 이해당사자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국공립 30% 확충 강력하게 요구

당선 후 첫 보육시설 방문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마포구 상암2지구 10단지내 어린이집들을 방문한 뒤 부모들을 만나 심각한 수준의 보육시설 미비 실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당선 후 첫 보육시설 방문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마포구 상암2지구 10단지내 어린이집들을 방문한 뒤 부모들을 만나 심각한 수준의 보육시설 미비 실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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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상보육은 좋지 못한 정책일까? 무상보육은 아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오랫동안 보육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돌려왔다. 이제라도 정부가 사회경제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미래 인재에 대한 투자를 늘려간다는 점에서 무상보육은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현재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들의 불만을 산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정부의 총 보육투자액이 턱없이 적고, 보육정책 수단들 중 현금(보육료) 지원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액수와 재정의 분배 문제이다 보니 결국 재정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은 재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는 정부의 보육 철학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보육정책 수단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민간어린이집의 집단 파행 사태로 피해를 입은 맞벌이 한 부모로서 국가의 책임이 현저히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보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 국가가 보육 인프라를 늘려간다는 말은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는 것이고 임대료, 운영비, 교사인건비 등을 걱정하지 않고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시설을 늘려간다는 말과 동일하다. 부모들이 말하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인 셈이다.

현재 우리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의 5.3%에 불과하고, 민간보육시설이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대하다. 민간보육시설이 사실상 소규모 지역 시장 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집단행동에 돌입할 경우 손 쓸 방법이 없다.  

우리의 국공립 비중을 최소 30%로 확충해 양질의 보육을 확보해야 한다. 공공인프라 30% 확충은 민간시장의 질을 견인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을 의미한다. 우수한 민간시설에는 교사처우개선 항목으로 인건비 지원, 대체교사 지원, 주40시간 이외 수당 지급 등을 통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동시에 국가의 재정이 눈먼 돈으로 낭비되지 않도록 규제와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민간어린이집은 자율권 침해를 이유로 규제 완화를 요구하지만, 이는 정부가 보육료를 더 지원해주든가 아니면 부모에게 돈을 더 받는 걸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건 학부모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민간보육시설 중 옥석을 가려내 부모와 아이들의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공공 인프라를 늘리고, 열악한 서비스 시설을 감독해 질 낮은 보육의 고질병을 고쳐줘야 한다.


태그:#민간어린이집, #파업, #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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