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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돼지의 사육실 스톨.  몸을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160여일간 갇혀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출산을 반복해야 한다.
 어미돼지의 사육실 스톨. 몸을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160여일간 갇혀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출산을 반복해야 한다.
ⓒ 더불어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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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①]
철문이 열리자, 돼지가 슬라이딩 판으로 굴러 떨어졌다. 직원은 돼지가 옆으로 쓰러지자 능숙한 솜씨로 경동맥을 잘랐다.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때 작업줄에서 도망쳐 온 돼지가 도살장 안을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직원 중 하나가 전기봉을 돼지의 몸에 가져다 댔다. 돼지의 비명 소리가 도축장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 2008년 한 도축장

[장면②] 눈앞에 상상속의 지옥에서나 볼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트럭의 뒷문이 열리자 살아있는 돼지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쏟아졌다. 돼지들이 구덩이로 쓸려 들어가자 굴착기가 돼지와 흙을 속아냈다. 돼지들은 구덩이 안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수천마리의 돼지가 내는 비명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쳐 울렸다. 그날 이후 밤마다 돼지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머리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졌다. 길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했다. 마치 내 영혼이 병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2011년 1월, 구제역 살처분 현장

사람은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필름처럼 스쳐간다는데 진짜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의 경우 위 두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도축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돼지, 그리고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히던 돼지들... 나는 평생 돼지와 함께 생활해 본 적이 없다. 또 돼지가 내 친구도 아니다. 무엇보다 돼지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토록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을까? 그건 그냥 죽음을 목격했다는 찝찝한 기분이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돼지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에 '공감'한 것이다. 난 특별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2005년 퍼진 인터넷 동영상, 내 삶을 바꾸었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두 번째 이야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두 번째 이야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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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캐나다에서 살아있는 아기하프물범을 몽둥이로 때려잡아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비싸게 팔리는 어린 동물의 가죽을 얻기 위한 사냥이었다. 그 동영상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오직 입맛과 패션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일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고기를 끊었다.

그런데 난 동물을 이용하는 잔인한 산업뿐 아니라, 그 동영상을 찍은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많은 이들에게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동물들의 처지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야, 위험한 현장에 가서 그런 영상을 찍을 이유가 있을까. 인간이 아닌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도처에 있었다. 나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싶었다.

2005년 활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 동물운동의 기초가 되는 책으로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유일무이했다.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된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은 전 세계의 동물보호운동을 대중적으로 알린데 기여한 책이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 피터싱어가 이후 새롭게 변모한 동물보호운동의 과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동물보호운동가들의 글을 엮어 1986년 낸 초판에 일부 내용을 수정해 2006년 개정판을 냈고, 한국어판은 7년여 만에 나오게 됐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두 번째 이야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2012)이 그것이다.

피터싱어는 2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의 규칙, 즉 '세상 모두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하여 이익이 예상되는 충족이 극대화되도록 행동한다'는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 싱어에 따르면 공리주의는 동물을 둘러싼 논쟁에서 매우 유리하다. 그 이유는 첫째, 국적과 성별, 인종을 비롯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의 이익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보편주의적이다.

둘째, '행복하고 쾌락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고통이 없는 삶'이 이익이라는 윤리규칙, 즉 복리주의를 지향한다. 셋째, 공리주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 행위의 예상되는 결과를 예측한다. '행위가 이익을 얼마나 충족했는가' 그 결과를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리주의는 행동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의 이익을 합산하기 때문에 집합적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선택하려면 나에게 가능한 모든 행동에 영향을 받는 이익의 크기, 지속 시간, 개수를 견주어 계산해야 한다. 현실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직 동물보호활동가로서, 싱어가 제시한 네 가지의 특징은 동물운동 내에서 공리주의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동물학대, 무지와 뿌리 깊은 습관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을 위한 활동을 한다고 할 때 일상적으로 하는 고민을 일반화한다면 사실상 다음의 질문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이 행위를 함에 있어, 동물의 이익을 고려할 것인가? 혹은 어느 정도까지 고려할 것인가? 누구에게 어떤 피해가 갈 것이고, 그것을 고려하는 것보다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물에 집중한다면 어떤 결과가 예측되는가? 서로의 입장을 어디까지 고려할 것인가?' 공리주의는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준다. 우리가 동물이 처한 위치와 동물을 대우하는 현실제도를 바꾸려고 한다면 사실상 공리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주장에 대한 반격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으며, 이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합리성, 지능, 언어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존재도 일종의 합리성과 언어를 갖추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동질적 계통을 밝혀낸 다윈의 후손이다. 싱어의 공리주의는 현실적 고려를 통해 윤리적인 판단과 실천을 제시한다.

실제로 동물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고려할 사항도 많다. 또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인격이 있는지를 논하는 데에도 많은 논쟁점이 존재한다. 동물의 권리를 부정하는 많은 주장이 있으나 피터싱어는 이 논쟁이 발전하지 못하는 혐의를 철학적 논쟁의 부재에서 보지 않는다.

동물학대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뿌리 깊은 습관을 바꾸기 꺼리는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습관의 압박을 이겨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동물이 불쌍하긴 하지만 고기를 끊기는 너무 힘들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고 고기를 먹고 있는 대중을 비난할 것인가?

80년대 이후 인권운동과 동물 권리 운동을 해온 브루스 프리드리히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동물운동에 적용해 이렇게 조언한다. "채식주의는 종교가 아니다. 채식주의의 목적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아무런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고 위선을 떠는 것에 더해 비 채식주의자에게 완전 채식주의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헨리 스피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한때 육식을 했지만 제가 죽을 죄를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스피라는 동물보호운동가들이 경계해야 할 태도를 제시한다. "우리는 성인군자이고 너희는 죄인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현대식 육식산업을 '차가운 악'이라고 불렀다. 시스템의 폭력을 감성과 감정에 기대서 바꿀 수 없다.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는 유럽의 성과를 통해 그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 바로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그간 서구, 특히 유럽에서 실험동물과 농장동물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벌인 활동은 한계적이나마 성과가 있었다. 이 책에는 실험동물과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유럽에서의 캠페인 성과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유럽의 농장동물복지 캠페인의 포커스는 송아지 우리 veal crate, 임신돈 우리 stall and tether-cage, 산란계를 가두는 케이지형 닭장 battery cage 를 없애는 것이었다.

유럽위원회는 임신 16주 기간 동안 몸에 꽉 끼는 철제 틀에서 만성 통증과 우울증, 장질환,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돼지들의 삶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유럽에서는 2013년부터 임신돼지를 개별 임신용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행위가 금지된다. 사방이 막힌 비좁은 나무 상자에 묶여 철분이 빠진 사료만 먹도록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하얀 살을 공급하기 위해) 고안된 송아지우리 역시 2007년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다.

평생을 날개조차 펼치지 못하는 비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머리위로 동료의 분뇨가 그대로 떨어지고, 신체적 한계로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하게 되면 2주 가량 강제로 굶어 털갈이되는 암탉의 삶. 암탉이 살아가는 케이지형 닭장 역시 유럽에서 2012년부터 금지된다.

이 책을 동물운동관련 서적보다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현장 활동가들의 생생한 활동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3부 '동물운동은 이렇게!'라는 장은 동물에게 실질적인 권리를 돌려주는 다양한 접근방식을 담아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마르틴 발루크와 동료들은 2003년 케이지형 닭장금지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결국 2009년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국인으로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가축 및 지속 가능한 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미연의 양계장습격사건은 2002년 전 세계 70여 매체에 동시에 보도되기도 했다.

산란계 닭이 살아가는 환경. 날개를 피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항상 질병에 시달린다.
 산란계 닭이 살아가는 환경. 날개를 피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항상 질병에 시달린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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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동물보호운동가는 개식용반대 캠페인을 하는 애견집단으로 각인되어 있다. 유럽에서의 성과는 아직 한국에서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동물보호운동은 국제연대활동이며, 약자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 근거한다.

한국의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활동가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헨리 스피라의 <운동가를 위한 열 가지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헨리 스피라는 기자, 민권운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등 여러 경력을 가지고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동물보호 캠페인을 펼쳤던 활동가로 평가된다.

스피라의 활동이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동물권리나 해방에 대한 주장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적 변화를 실제로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스피라는 자신이 사회주의 노동당에 몸담을 당시 깨달은 점을 동물운동에 적용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후에 대중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고심하라. 무엇보다 현실감각을 가지라."

스피라의 이 조언에 싱어는 이렇게 덧붙인다. "너무나 많은 운동가가 동료 운동가들과만 어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들처럼 생각할 것이라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전에 스스로 빠져들어 일반인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감을 잊어버린다." 스피라는 마르크스-트로츠키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이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동료들의 실패를 생각했다.

동물해부반대 전면 금지 이외의 목표를 받아들이는 것은 타협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스피라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남들 못지않게 동물실험을 철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일 더 많은 일을 합시다."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하라는 것. 한 번에 한 걸음씩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라는 것이다. 인식 제고는 캠페인의 성공에 달려 있다. 많은 활동가들이 원칙고수와 순수성에 집착해 현실판단능력을 상실하곤 한다. 목표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 있지, 자신이 얼마나 동물을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운동은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다. 동물은 죽음 이후 내세에서의 행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바로, 당장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활동가들의 임무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양적으로 팽창한 동물단체가 가장 경계할 흐름이 있다. 관료주의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관료조직은 목표를 이루기보다 조직을 키우는데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동물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들이 조직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느라 업무 시간의 80퍼센트를 쓰는 상황은 동물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동지를 만났고, 깊은 영감을 준 시민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늘 느꼈던 사실은 동물을 위한 활동은 위대한 영웅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이 책이 그 흐름에 동참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두 번째 이야기

피터 싱어 엮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2012)


태그:#동물해방, #피터 싱어, #공장식 축산, #동물보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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