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9일, 점심을 먹고 나서 난 차를 몰고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입상을 보기 위해 갔다. 강동리의 마애입상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고려 초의 보살입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 일각에서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사람인 도마(刀馬)의 마애인물상으로 비정(比定)되고 있다.

예전에 찍은 원래의 모습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예전에 찍은 원래의 모습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초행길이라 길을 찾기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이 강동리 산 87-1번지라는 주소가 있어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않게 입상 앞에 당도했다. 차를 세우고 길 좌측 언덕 위에 있는 입상을 보는 순간 나는 자지러지는 줄 알았다.

최근의 모습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최근의 모습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누군가가 탁본을 뜨기 위해 입상 곳곳에 먹을 칠해 상하좌우 4곳이 크게 훼손돼 있었다. 문화재자료 제474호로 지정된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꼴을 하고 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탁본을 뜰 정도라면 역사를 좀 안는 사람인데, 이런 짓을 하다니." 무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훼손된 모습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훼손된 모습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아무튼 무척 화가 나서 현장 사진을 여러 장 찍고는 입구 우측에 있는 안내판을 읽어 보았다.

안내문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안내문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이 불상은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왕유(王留, 왕머리)마을에서 당곡골로 넘어가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왕유마을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가던 공민왕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동리 마애보살입상은 고려 초에 유행하던 거석마애불(巨石磨崖佛)계열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가 5,76m에 이른다.

불상의 머리는 유실되었으나 목 부분에 턱의 일부가 남아있어 원래는 몸체와 한 돌에 조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위면의 상태에 따라 어깨와 가슴부분은 고부조(高浮彫)로 새기고 아래는 선으로 조각하였다. 발아래는 구름문양과 3겹의 연화좌(蓮花座)가 조성되어 있으며 오른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또한 불상 좌측부에는 4개의 감실형(龕室形)조각이 있은데 이제까지 다른 곳에서는 그 유래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곳이어서 매우 주목된다."

 마애인물상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마애인물상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학계의 입장은 모양이 아주 특이한 고려초기의 마애보살입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내가 이번에 이곳을 찾은 이유는, 왕유마을 마애인물상은 지난 20여 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사람인 도마의 인물상으로 추정되고 있어 성지순례지로 방문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과 논문 등에 나온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왕유리 마애인물상은 예수의 제자인 도마가 일찍이 복음 선교를 위해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와 뱃길로 김해를 지나 낙동강을 거슬러 영주까지 선교를 다녀간 흔적의 산물이다. 대략 서기 400년경에 제작된 분처상(分處像)으로, 1908년 발견된 중국 돈황석굴의 경교화상(景敎畵像)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며, 왼쪽 어깨 부분에 쓰인 4자의 히브리어는 '도마의 손과 눈'이라는 성경구절과 일치한다.

인물상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인물상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하단의 명문은 '야소화왕인도자도마[耶蘇(야소)는 花王(화왕)이고 引導者(인도자)는 刀馬(도마)] 명전행(名全行)'라고 되어있다. 여기에 손은 양손가락 끝을 빗장뼈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손등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는데 이 모양은 기존 불상의 손 모양과는 전혀 상이하다. 발가락 노출도 예수상의 보편적 기법이며, 가슴 부위에 양각된 십자가 모양이 희미하게 보인다.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 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왕유마을의 마애인물상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아무튼 이 인물상이 고려초기의 마애보살입상인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도마상인지는 내가 판별할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난 탁본을 뜨기 위해 마구 더럽혀진 인물상의 모습에 매우 화가 났다.

그러나 첫눈에 보기에도 그 동안 보아왔던 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얼굴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기는 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훼손된 인물상의 사진을 영주시 관계자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이런 답이 왔다.

"제가 보기에는 역사를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탁본의 기본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탁본을 뜨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도마상이라고 주장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을 급하게 탁본을 떠간 흔적으로 사려 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곳에만 먹칠을 하여 탁본을 뜬 흔적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저도 조만간 실물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을 할 생각이며, 우선 먹물을 닦아내는 청소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주시에서 역사문화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관리가 소홀했던 점은 우선 사과드립니다."

영주시의 빠른 조치를 기대하면서 나는 인근의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기와 가마터인 와요지를 보기 위해 갔다.

와요지 설명문
▲ 평은면 와요지 와요지 설명문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310호로 용혈리 1238-1번지에 있는 이 기와 가마터는 1998년 금광~용혈리 간의 도로 확포장 공사 중에 발견된 것으로 서북쪽 방향으로 3개의 가마가 3.5m와 약 5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1호 가마는 길이 9m 폭 3.3m이며, 2호 가마는 길이 5.6m 폭 2.4m이며, 3호 가마는 길이 3.2m 폭 1.4m이다.

1호 가마와 2호 가마의 구조는 구릉의 경사면에 형성된 풍화암층(風化岩層)을 터널식으로 파서 만든 지하식 등요(登窯-가마의 경사가 비스듬히 올라가는 형태로 오름 가마 혹은 비탈가마라고도 한다)이다.

3호 가마는 1호 가마와 2호 가마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마의 몸체가 없어져서 바닥에 흔적만 남아있다. 암층의 두께와 바닥 높이로 보아 반 지하식 등요로서 벽체(壁體)천장을 지상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가마바닥에 남아있는 기와 조각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와요지
▲ 와요지 철 구조물 집 와요지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 와요지 역시도 너무 아쉬운 것이 많았다. 흙과 벽돌로 만들어진 가마터라 외부의 침입에 의해 훼손이 심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인지, 지나치게 접근을 막아 둔 것이 흠이었다.

입구에 안내판을 설치해 둔 것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문화재가 안에 있다는 사실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철 구조물로 집을 만들어 실제의 가마터를 자세하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만들어 둔 것이다.

앞 쪽에 유리 창문을 여러 개 만들어 유리를 통하여 안을 볼 수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인지 안쪽을 상세히 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냥 흐린 창을 통하여 가마 3개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을 했지만, 너무 아쉬움이 많았다.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통상적인 출입도 되지 않는 집을 만들어 아무 생각 없이 보존하는 것이 역사를 지키고 가꾸는 일인지 묻고 싶어졌다.

최소한의 출입구나 출입을 관리할 인력이 없다면 안쪽을 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창을 깨끗하게 청소 하든가, 사람 머리 정도 크기 정도로 구멍을 내어 눈으로 확인을 하거나 카메라 촬영 정도는 가능하도록 만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화가 나도록 아쉬웠다.

난 이틀 동안 영주와 봉화의 숨은 역사문화유산을 살펴보면서 크게 실망을 했다. 방치하고 숨기는 것이 문화재를 보존하는 방법이 아니라, 100~200년 후의 후손들을 위해 문화유산을 가꾸고 쓰면서 다듬어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치창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태그:#영주시 평은면 왕유마을, #마애인물상, #마애보살입상, #기독교 예수의 제자 도마상, #문화재 훼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