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춘천시가 무상급식 문제로 또다시 홍역을 앓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진원지는 뜻밖에도 무상급식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는 이광준 춘천시장이다. 시장으로서 논란에 휩싸여 좋을 것 없는 사안을 가지고 시장 스스로 이슈를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무상급식 문제가 최근에는 4·11 총선과 맞물려 총선 이슈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으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당적을 가진 이광준 시장은 무상급식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춘천시장이 무상급식 거부하는 진짜 속내는?

 

강원도와 강원도교육청은 올해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무상급식을 실시하기로 하고 각 시군에 무상급식에 필요한 전체 예산의 80%(강원도 20%, 강원도교육청 60%)를 지원하고 있다. 시군은 전체 예산의 20%만을 보조하면 되는데, 그나마 현재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급식 지원 예산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10% 정도의 비용만 더 부담하면 된다.

 

이런 조건에서 강원도 내 18개 시군 중 유일하게 춘천시만이 무상급식을 거부하고 있다. 표면에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재정이 열악해 무상급식을 지원할 여력이 없으며 노인복지 같은 것과 비교해도 무상급식이 그리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광준 시장이 무상급식을 거부하는 데는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에서 실시하는 무상급식은 진보진영에 속하는 최문순 도지사와 민병희 교육감이 내건 공약이다. 이 시장이 무상급식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는 진보진영 도지사와 교육감이 내건 공약 실현을 자신이 나서서 도와줄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울에서는 무상급식 문제로 주민투표를 강행한 오세훈 시장이 스스로 시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광준 시장이 무상급식을 거부하는 이유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 '강원도의 오세훈'이 되기를 자처한 셈이다. 

 

내 돈 쓰기 싫다? 빈 손으로 급식 제공하겠다는 춘천시

 

춘천시는 최근 도청과 교육청에 공문을 발송해 도와 교육청에서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 무상급식 예산 80%를 세 가지 용도 중에 하나로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용도 가운데 하나는 그 80%를 가지고 "선택적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고등학교 수업료를 면제(6천 명 58억 원)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학교시설개선비(30억 원)를 그 비용으로 충당해달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유익한 제안 같다. 기왕 잡혀 있는 예산 묵히지 않고 춘천시민을 위해 사용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제안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도청과 교육청에 따르면, 시에서 20%의 보조금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80% 예산 집행도 불가능하게 되어 있고, 설사 지원을 한다 해도 다른 시군과의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무상급식에 정해져 있는 예산을 그와 무관한 항목에 사용하는 것은 더욱 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청과 교육청의 담당 공무원들은 춘천시가 왜 그런 요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지금 춘천시는 불가능한 일을 가지고 도청과 교육청에 떼를 쓰고 있는 셈이다. 춘천시가 이처럼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는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청의 교육복지 담당 공무원은 "무상급식(도청에서는 '친환경급식'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이 기사에서는 '무상급식'으로 사용)은 계획이 이미 확정되어 있는 상태다, 강원도 내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 전체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며 "춘천시만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예산에서 춘천시가 10억만 더 보태면 무상급식이 가능하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는 2013년에는 중학교까지, 그리고 2014년에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시군과 달리 춘천시만 계속 예외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도지사에게 '느닷없이' 공개토론 제안한 춘천시장

 

이런 가운데 이광준 시장은 지난 1월 28일 느닷없이 최문순 도지사에게 무상급식 문제 등을 가지고 1대 1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시장은 이날 아침 시청 기자실을 찾아 하루 전 신년인사를 겸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도지사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며 마치 당장이라도 공개토론이 이뤄질 것처럼 공표했다.

 

이 시장은 자신이 강원도 시군협의회 의장인 것을 내세워 토론에서 '광역-기초자치단체 재정분담 비율 및 인사 교류, 2018 평창동계올림픽, 무상급식' 등의 문제를 폭넓게 협의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방송사에 프로그램 편성이 가능한지까지 타진했다.

 

하지만 토론 상대로 지목된 최문순 도지사 측은 이 시장의 이런 행동에 의아해한다. 강원도청 비서실에 따르면, 도지사는 그날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춘천시가 무상급식을 실시할 의향이 있다면 (그 조건하에) 토론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뿐 실제 토론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제안도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현재 시점에서 무상급식을 주제로 공개토론을 할 경우 서로 상대방 입장을 확인하고 끝날 게 분명한데 그런 토론은 무익하다고 판단했다.

 

래서 토론 주제는 물론이고, 토론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행할지 실무적인 내용은 하나도 정해놓지 않고 이 시장이 도청과는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청 출입 기자들에게 공개토론을 공표한 것에 황당해했다.

 

비판 여론이 높지 않다고? "3월이면 폭발한다"

 

'친환경 학교 의무급식 실현을 위한 춘천네트워크'의 김정애 대표는 이런 이광준 시장의 행태를 한마디로 "꼼수"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춘천시장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다, 아마도 내가 춘천시민을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며 "사실은 무상급식을 피해 가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흐리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춘천시가 시민들의 비판 여론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두고 봐라, (학부모들이) 3월이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부모들이 급식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세금 내고 다른 지역은 다 받는 혜택을 춘천시만 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용인하겠냐"고 되물었다.

 

황환식 민주통합당 춘천시지역위원회 위원장은 이광준 시장이 최문순 도지사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과 관련, "보편적 복지가 추세인 마당에 그걸 거부하려니 혼자 외로워지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꾸 그런 제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춘천시장이)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시장이 춘천시장이 아니라 강원도 18개 시군을 대표하는 시군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토론을 하자고 하는 것에는 "현재 17개 시군은 모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상급식은 이제 순수하게 춘천시의 문제다"라며 "그러면 춘천시 내에서 토론 상대를 찾아야지 도지사는 아니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이어 그는 "예산은 의지의 문제인 만큼 될 가능한 한 빨리 확보하라"고 촉구하면서 "춘천시장은 새누리당 시장이 아니라 춘천시장으로서 (자신에게) 찬성하는 쪽만 아니라 반대하는 쪽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새누리당 일부 예비후보들 "올해 무상급식 실시 찬성"

 

이광준 시장이 무상급식과 관련해 공개토론을 요구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자, 정치권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황환식 위원장이 지역위원장 자격으로 이 시장과의 '맞짱토론'을 제안하고 나서는 동시에, 4·11 총선 예비후보로서 올해 당장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모두 무상급식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올해 당장 무상급식을 실시하라는 목소리는 민주당에서만 나오고 있는 게 아니다. 새누리당의 총선 예비후보는 현직 국회의원인 허천 의원을 비롯해 모두 4명이다. 그중에서 허천 의원과 임송재 예비후보가 올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고, 김영린 예비후보와 김진태 예비후보는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허천 의원실의 박관희 비서관은 무상급식에 관한 견해를 밝히기에 앞서 "이광준 시장이 소신을 가지고 실행하는 일에 국회의원이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황환식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춘천에서 무상급식이 정치 이슈화하는 것은 민주당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 비서관에 따르면, 허천 의원은 무상급식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전면적으로 하느냐, 단계적으로 하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어쨌든 올해는 실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 언제쯤 실시하는 게 좋겠냐"는 물음에는 "예산 편성은 시장의 고유 권한이므로 시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대답했다. 결국 시장이 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못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에 새누리당 김영린 예비후보는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다. 김영린 후보는 "복지가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사회 갈등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계속 분란을 일으키면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춘천시장이 당의 흐름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예산은 (시장이)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진태 예비후보 역시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쪽이다. 그는 "강원도 내 다른 시군은 모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데 춘천시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무상급식을 무분별한 복지라고 비난하고, 도 정책에 반대하는 일에 춘천시민이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춘천시에서는 올해도 무상급식이 논란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자 해묵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문제가 춘천시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그 누구도 손대기 힘든 난제로 남아 있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이광준 춘천시장뿐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 해결이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춘천시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무상급식이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 아닌데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밥 못 먹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의 말이 춘천시장의 생각과 의지를 대변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무상급식, #이광준, #춘천, #최문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