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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한미FTA 전선에 불이 지펴졌다. 불을 당긴 것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요,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14일 "모두가 미국과 FTA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발효도 하기 전에 (한미FTA를) 폐기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며 "외국 대사관 앞에 찾아가 문서를 전달하는 것은 '국격'을 매우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지난 8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미 대사관에 '한미FTA 발효 중단 촉구문서'를 전달한 것에 대해 '국격을 떨어뜨렸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같은 비난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발언과 '짝 맞춘 듯' 궤를 같이 한다.

 

박 위원장은 지난 13일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FTA를 추진한다고 하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민주통합당을 향해 '이례적인'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박 위원장은 "우리의 나태와 안일로 그런 일이 있다면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도 했다.

 

새누리당의 공세는 계속됐다. 바통을 받은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4일 "자유통상에 대한 확고한 철학없이 국가를 이끌 수 없다"며 박 위원장의 말을 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FTA를 잘 몰라서 추진했던 것이라면 지금 포기한다는 말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지 국민들은 혼동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옥임 의원도 가세해 "2007년의 FTA와 2011년의 FTA가 '자동차'만 빼면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김진표 원내대표가 모를 리 없다, 만약 모른다면 공무이행이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봐야한다"고 맹비난했다.

 

김진표 "2007년 FTA와 2010년 FTA 근본적으로 달라"

 

이처럼 정부여당은 '단일 대오'를 형성해 한미FTA를 총선의 최대 이슈로 끌고 가려하고 있다. 이같은 도발은 일단 야당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발언은 2007년도에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FTA와 2010년의 한미FTA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전혀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며 "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위원장의 위상에 맞지 않는 무지의 소치요, 몰역사적 궤변"이라고 쏘아 붙였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따로 논평을 발표해 "미국의 법과 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제2의 을사늑약'인 한미FTA에 대해 그간 박근혜 위원장은 철저히 방관자였다"며 "박 위원장이 'FTA를 폐기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국노 이완용이 '국익' 운운하며 김구 선생을 비판하는 격'"이라고 비꼬았다.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나라를 맡길 것인지 말 것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동업자 박근혜 위원장은 그런 말할 자격도 없다"고 일갈했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이명박 대통령이 국격을 말했다, 국격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되는 것"이라며 "비리와 헛발질, 절차적 합리화로 만신창이가 된 국격을 진정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며 이 대통령의 '국격'론을 되받아쳤다.

 

더 센 발언은 진보신당에서 나왔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아직도 자기가 박정희 왕조의 공주님인 줄 아냐"며 "나라를 맡길 수 없다니 이 나라가 자신의 것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한미FTA 등 불평등한 조약으로 재벌 대기업만 살리고 노동자서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데다, 날치기를 일삼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국민 알기를 봉건시대 백성만큼도 생각 안하는 반민주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며 박근혜 위원장의 말을 되돌려줬다.

 

민주당 "새누리당이 FTA로 총선 정국 몰아가려 해"

 

이처럼 한미FTA를 두고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은 앞으로의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FTA로 총선 정국을 몰아가려 한다"며 "국정 심판과 측근 비리를 덮고 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향후 대응 방향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FTA가 총선의 최대 이슈로 부각되는 것에 대한 경계다.

 

'FTA 재협상 및 정권재창출 후 폐기'를 강조하는 민주통합당의 전선이 모호하다는 통합진보당의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4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었던 'FTA 발효 중단을 위한 야당 시민사회 연석회의'가 무산되면서 비판의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일정상의 이유로 연석회의에 불참했다.

 

이에 김선동 통합진보당 원내부대표는 회견을 열고 "한미FTA 저지를 위한 공동의 결의를 모으기 위한 회의가 무산된 것에 유감"이라며 "민주당이 한미FTA에 원죄가 있지만 재협상이 없으면 폐기한다는 입장을 세운 만큼 이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걸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된 이후 FTA 연석회의는 한 차례도 개최되지 못했다"며 "FTA 폐지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선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의 FTA 전선 단일대오는 단단히 갖춰졌는데 이에 대응하는 야당의 단일대오는 명확히 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통합진보당의 비판에 대해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의 대표 일정 변경관련 주장은 정치적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한 것일 뿐 확대해석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연석회의 참석은 연기한 것일 뿐"이라면서도 "한미FTA만을 두고 당의 정체성을 평가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태그:#박근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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