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착장에서 배 타기 전
▲ 메콩 강 건너 라오스 선착장에서 배 타기 전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국경을 넘는 날이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숱하게 국경을 넘어봤어도 나는 여전히 이 날이 설렌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두 발로 걸어 또박또박 두 나라의 경계를 넘어설 때면 왠지 모르게 내 안에서 나를 가르고 한정해온 어떤 경계 또한 넘어서는 것 같아 그냥 기분이 좋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아내가 아프다. 전날 야간 기차를 타고 17시간 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했을 때부터 힘들어하는 것 같더니 결국 감기몸살이 오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천성적으로 튼튼한 사람이다. 대학 다닐 때는 모꼬지 같은 데를 가서 밤을 꼴딱 새워 이야기를 나누고도 다음 날 아침이면 깔깔깔 계곡물만큼이나 맑은 웃음소리로 다른 이들의 잠을 깨우고, 사회운동 할 때에는 하루에 십수 명의 사람과 연이어 만나고도 지칠 줄 모르던 이가 아내였다.

여행길에서는 10시간은 보통이고, 한번은 파키스탄 훈자마을에 갈 때 카라코람 산악도로의 그 험한 길을 4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달렸어도 나와는 달리 멀쩡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제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도, 아내 본인도 나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늘 몸이 전하는 말보다는 마음에 차오르는 욕심을 따르다보니 탈이 나게 된다. 감기몸살도 그 탓이다.

일부러 먼 길 택한 까닭... "아이들을 고생시키려고"

라오스 훼이싸이 선착장 풍경
▲ 강 건너 국경 넘기 라오스 훼이싸이 선착장 풍경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사실 라오스로 입국하는 여러 길 중에서 굳이 북부지역에 위치한 훼이싸이의 국경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아이들을 고생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슈욱 이륙했다가 휘익 착륙하거나, 방콕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를 타고 단번에 국경을 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안겨주고 싶었다.

우리 부부의 욕심은, 이틀 혹은 사흘 동안 밤새 기차에 몸을 싣고 온종일 버스를 타고 달리고서도, 정작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다시 '뚝뚝'이나 오토바이를 타야 하고,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걷기도 해야 하며, 마침내는 강을 건너기 위해 거룻배의 신세까지 져야만 넘어설 수 있는 그런 국경이라야 했다.

그래야 국경이라곤 TV나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휴전선 정도가 전부인 아이들에게 국경이 그저 지도 위에 그어진 선 정도가 아니라 그곳 지역민의 삶과 여행자들의 여로 속에서 살아 있는 그 무엇이라는 걸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코스였다. 그런데 정작 고생인 것은 감기몸살에 걸린 아내였고 여태 잔기침이 떨어지질 않아 아침저녁으로 콜록거리는 나였다. 아이들은, 물론 집 떠나와 낯선 잠자리에 까칠한 밥에 무거운 배낭에 많이 걸어 아픈 다리에 이래저래 불편하겠지만, 눈빛만큼은 라오스 하늘의 별처럼 말똥말똥한 것이 우리부부의 작전(?)이 먹혀들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치앙콩까지 7시간 내내 잠만 자는 아이들
▲ 국경으로 가는 먼 길 치앙마이에서 치앙콩까지 7시간 내내 잠만 자는 아이들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국경까지는 먼 길이었다. 국경도시 치앙콩까지 아직도 버스로 7시간을 달려야 했다. 한 열에 다섯 개씩의 의자가 놓인 버스는 빈자리 없이 승객들로 꽉 들어찼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아이들과 감기에 걸린 아내는 내내 잠만 잤다.

역시 국경에 다다르는 길은 기대한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치앙콩에 도착해서 '뚝뚝'을 잡아타야 했다. 두세 명씩 나누어 황톳길을 20여 분쯤 달린 후에도 다시 배낭을 메고 10여분을 걸어 내려가자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콩이었다.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해 태국과 라오스를 가르고 캄보디아를 끼고 돌아 베트남으로 흘러드는 바로 그 4400여 킬로미터의 메콩 강이 눈앞에 있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국경관리사무소에서 출국신고서를 작성하고 강으로 내려섰다. 강 너머에 마을이 또렷이 보였다. 우리가 발 딛게 될 라오스의 첫 마을, 훼이싸이였다. 모터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작은 거룻배 두 척에 나누어 타고 강을 건넜다. 채 5분이나 걸렸을까.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라오스 땅에 첫 발을 내려놓았다.

작은 밥그릇에 담긴 '찐밥'... 라오스에 온 게 실감나네  

강 건너 마을이 훼이싸이.
▲ 출발 라오스로 강 건너 마을이 훼이싸이.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말하자면, 그것으로 '국경넘기'가 끝났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루면 다다를 수 있는 길을 장장 5일이 걸려 도착한 것이다. 참으로 먼 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국경을 넘는 일이 너무 간단해서 신기하다는 것이다. 강 건너 이쪽은 태국이고 강 건너 저쪽은 라오스라는 것도 재미있는데, 종이딱지 하나 써서 여권에 도장 받고 배 5분 정도 타니까 다른 나라라는 것이 너무 신난다고 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돈도 바뀌고, 강아지나 사람들도 더 친절한 것 같고, 마을도 조용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는 것이다.

강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라오스에서의 첫 식사를 다 함께 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가진 돈과 메뉴판을 비교하느라 시끌벅적했다. 태국보다는 물가가 떨어진 것이 그들을 즐겁게 하는 모양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내가 주문한 라오비어와 '카오 냐오'(찐 밥)가 나왔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작은 밥그릇에 담겨진 '찐 밥'을 보고 있자니 라오스에 도착했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났다.

라오스의 평범한  식단
▲ 치킨 스프와 찐 밥 라오스의 평범한 식단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
▲ 라오비어와 찐 밥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찐 밥'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아이들에게 라오스 현지인들처럼 먹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당장 따라하는 녀석도 있고 밥을 손으로 주무른다는 것이 꺼려지는 모양인지 주저하는 녀석들도 많다.

식사가 끝났다. 환전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오늘 점심은 내가 한꺼번에 낼 거라고 공지했다. 순간 예상치 못한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앗싸!"
"이~씨, 그럴 줄 알았으면… 음료수도 시키는 건데."

환호하는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맘껏 시킨 녀석들이고, 탄식하는 아이들은 돈을 아끼느라 요리도 싼 걸로 주문하고 음료수는 아예 시키지도 않은 녀석들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데, 그날 하루 국경을 넘은 것으로 내게는 왠지 절반의 길이나 지나온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 -서윤미(18살)


엄마, 나 지금 라오스야.
태국에서 배로 강을 건너 국경을 넘었어.

어제 자전거를 7시간 탔는데
오늘은 버스를 7시간 탔어.

내 체력이 이 정도란 거에 나도 놀랐어.
잠을 적게 자는 데도 힘들지 않아.

여행의 힘일까?

이곳에 와서야 현재를 느낄 수 있어.
흐르는 메콩 강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걱정 없는 잠시를 느낄 수 있거든.

아직 한 달이나 남아 멋진 광경을 잊지 않으려고
눈에, 사진기에 꼭꼭 담아두고 있어.

다행히 아직은 한국 음식이 먹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와 아빠는 보고 싶어.

다음에는 같이 오자. 엄마, 사랑해.

- 엄마의 사랑스런 큰 딸, 서윤미 씀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다.



태그:#여행학교, #라오스, #국경 넘기, #훼이싸이, #치앙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