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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전부터 많은 비판과 우려를 낳았던 얼음낚시대회가 12일 철원군 민통선 내 토교저수지에서 열렸다. 9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낚시를 진행하는 동안 수백 마리의 두루미는 저수지 뒤편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갔고, 독수리는 제방에 내려오지 못한 채 하늘 위를 빙빙 배회했다. 참가자들이 오기 전, 고요한 새벽 시간부터 낚시대회가 끝날 때까지 토교저수지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 말>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을 무렵, 새들이 일어나기 전 토교저수지를 찾았다. 꽝꽝 언 토교저수지 얼음 위로 눈이 하얗게 빛났다. 새벽의 어둠이 한쪽으로 밀려나며, 주변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토교저수지는 철원평야에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저수지로 1976년에 만들어졌다. 면적은 여의도보다 조금 크다. 토교저수지를 잠자리로 하는 두루미, 재두루미, 쇠기러기 같은 새들은 해가 뜨는 오전 7시에서 8시 즈음 기상을 하여 먹이가 풍부한 철원평야로 날아간다.

해가 뜨는 시간, 토교저수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두루미 한 쌍이 날아간다.
 해가 뜨는 시간, 토교저수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두루미 한 쌍이 날아간다.
ⓒ 생태지평(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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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두 무리의 새들이 보였다. 필드스코프로 확대해서 보니 한쪽은 두루미 16마리와 재두루미 10여 마리, 다른 한 쪽은 두루미 40여 마리와 재두루미 15마리가 모여 잠을 자고 있었다. 둘 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흰 눈 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한 쪽 다리를 올린 채 잠을 자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일부 어린 두루미들은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오전 7시 50분 두 마리의 두루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키가 153cm에 이르는 대형조류인 두루미가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여유로웠고 우아했다. 제방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는 10여 명의 사람들 머리 위로 두 마리의 두루미는 천천히 날아갔다. 이후 조금씩 간격을 두고 두루미들은 20~30마리가 함께 먹이터를 향해 날아갔다.

꽁꽁 언 토교저수지 위에서 잠을 자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들. 한 발을 올리고 서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꽁꽁 언 토교저수지 위에서 잠을 자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들. 한 발을 올리고 서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 생태지평(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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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순간도 잠시. 오전 8시 30분이 지나자 주차장에 모여 있던 얼음낚시대회 참가자 900여 명이 일순간 토교저수지로 몰려들었다.  

"여기 새가 어디있어? 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구만!"

목소리를 높이는 참가자도 있었다.

"위이이잉" 전기톱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얼음끌이 아닌 전기톱으로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얼음구멍을 뚫었다. 그렇게 얼음을 깨고 뚫을 때 제방 위에서 소음을 측정해보니 103dB이었다. 기차소리보다 더 큰 소리다. 고요했던 토교저수지는 900여 명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찼다. 결국 남아있던 30여 마리의 두루미가 날아올랐다. 방향은 이제까지 날아오던 방향과 정반대. 우리를 등지고 저수지 뒤쪽 산을 넘어 결국 사라졌다.

철새보호출입통제지역인 토교저수지가 철새 대신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2월 12일 얼음낚시대회 모습
 철새보호출입통제지역인 토교저수지가 철새 대신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2월 12일 얼음낚시대회 모습
ⓒ 생태지평(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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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교저수지 비롯 9개 저수지, 환경오염 이유로 낚시 금지

어떻게 이런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을까? 토교저수지를 비롯한 철원군 9개의 저수지는 수질악화와 주변 환경오염을 이유로 낚시가 금지돼 있다. 또한 토교저수지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곳이다. 이 부분은 특별후원이라고 명시된 철원군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철원 토교저수지는 낚시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다.
 철원 토교저수지는 낚시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다.
ⓒ 생태지평(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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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군수는 이번 행사를 해보고 철새들에게 많이 영향이 있다고 하면 앞으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지리 마을을 서울에 알리고, 토교저수지의 자연자원을 알리기 위해서 진행한 행사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4시간 동안 얼음낚시대회를 하며 양지리의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을까.

행사를 준비한 양지리 마을주민 가운데 한 분은 이번 행사를 통해 양지리에서 나는 철원 오대쌀을 알리는 것에 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겨울철새들을 보호하며 철원평야의 쌀을 생산해온 농민들이 그 쌀이 많이 알려져 잘 팔렸으면 하는 심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농업용수와 주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모든 저수지의 낚시를 금지했던 철원군이 지속적인 홍보와 도농간 신뢰구축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대규모 낚시대회를 진행했다는 것은 일관된 정책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900여 명의 얼음낚시대회 참가자들이 민간인통제구역 내 토교저수지에 왔다.
 900여 명의 얼음낚시대회 참가자들이 민간인통제구역 내 토교저수지에 왔다.
ⓒ 생태지평(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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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낚시대회에서 900여 명이 잡은 물고기는 전부 20여 마리 밖에 되지 않았다. 행사 종료 한 시간 전인 낮 12시부터 사람들은 저수지 밖으로 나왔다. 낚시대회를 주최한 서울시낚시연합회장은 다시 토교저수지에서 낚시대회를 열 거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이번 행사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채 생태자원을 무차별적으로 개방한 홍보성·일회성 행사로 끝이 났다. 이런 행사가 지속된다면 토교저수지의 생태적 가치가 점점 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철원평야의 두루미, 독수리도 지키고 마을도 더 잘 사는 방법은 없을까? 정부와 철원군, 마을 주민들이 전문가, 환경단체와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볼 수는 없을까?

900여 명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철새들이 다가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민간인통제구역이기 때문에 토교저수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시간은 있다. 오래오래 자연과 상생하는 두루미마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로 지켜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라본다.

토교저수지는 이렇게 많은 겨울철새들이 와서 쉬어 가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토교저수지의 이런 모습에 큰 감동을 느끼고 돌아갔다. 쇠기러기의 군무. 2008년 12월
 토교저수지는 이렇게 많은 겨울철새들이 와서 쉬어 가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토교저수지의 이런 모습에 큰 감동을 느끼고 돌아갔다. 쇠기러기의 군무.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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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은 시민들과 함께 정책연구와 현장실천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갑니다. 갯벌해양, 생태보전(4대강, DMZ), 환경보건 등의 분야에서 희망을 엮는 환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갑니다. 많은 후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트위터 : @ecohorizon)



태그:#토교저수지, #얼음낚시대회, #철새도래지, #철원,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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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실크로드 간사입니다. 더 많은 자료와 활동소식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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