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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민주통합당 입당에 관해 참여연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후배 시민운동가인 박원석 전 협동사무처장이 오마이뉴스에 서한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민심의 승리였습니다. MB 정권에 대한 심판의 민심이며, 낡은 정치를 혁신해 달라는 거대한 민심의 표출이었습니다. 40억 원에 가까운 선거비용 모금이 순식간에 채워지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로 희망캠프는 늘 북적였습니다.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려는 상대 후보의 추악한 선거캠페인조차도 시민들의 희망을 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감동은 비단 선거기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초등학교 전면 친환경무상급식 시행,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실현, 서울시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정치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믿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 삶을 바꾼 첫 시장'이라는 슬로건이 단지 선거 캠페인용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과 마음에 와 닿고 있습니다.

한미FTA 에 대한 의견표명, 뉴타운 재개발 정책의 전면 재검토 그리고 최근의 대형마트 규제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삶의 애환과 고통의 현장에서 서울시정이 뚜렷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의 원천, 추진력의 비결은 민심을 경청하고 정확하게 부응하려는 시장님의 감동의 정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전임 시장들이 보였던 권위주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소탈하고 격의없는 시장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보통의 정치인의 모습만 각인돼 있는 시민들에게는 취임식부터 신선하고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시민운동의 후배로서 그리고 참여연대를 함께 만들고 키운 동지로서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시장님의 고뇌와 결정 이해갑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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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제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 말씀 드리고자 외람되지만 편지글을 드립니다. 시장님께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실 예정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당선될 수 있었고, 서울시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의회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의 입당권유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저간의 사정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한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여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권에 가까이 있는 민주통합당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으실 것이라 판단합니다. 시장님의 그 같은 고뇌와 결정을 한편 이해하면서도 저는 후배로서 그리고 시민운동가로서 현 시점에서 민주통합당 입당을 재고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 드립니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심판의 선거'를 전망합니다. 저 또한 그런 관점에 공감합니다. 민심은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재보궐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권을 거듭 심판했고, 총선과 대선에 표출될 민심의 흐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은 '심판의 선거'를 넘어 '새로운 체제 만들기 선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체제는 낡은 질서를 총체적으로 뒤엎는 정치혁명과 사회경제 구조의 패러다임 전환 위에서 성립 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2013년 체제가 극복해야 할 유산은 비단 MB식 통치 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양극화와 분단체제 전반이며, 과거의 집권세력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민주통합당이 혁신과 통합을 내세우며 진보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민주당의 그와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매우 긴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민주당 내부에는 한미FTA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 지역주의 구태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이 있습니다. 또한 과거정부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정책실패 책임은 눈감은 채, 하루아침에 '시민', '혁신', '진보'를 자임하고 있습니다. 반사이익의 정치는 정체성이 아닙니다. 국민이 MB 정부의 무능과 실정에 지쳐있고 신물을 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누구나 MB 심판을 외치면 새로운 세력, 새로운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정부 시절 한미FTA 협정체결에 항의하며 분신한 참여연대 허세욱 회원을 여전히 가슴 아프게 기억합니다. 참여연대가 삼성을 비롯한 거대재벌과 수년간 싸워오며 조금씩 진전시켜왔던 재벌개혁은 지난 정부의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는 국정목표 하에 후퇴를 거듭했고, 끝내 형해화 됐습니다. 미친등록금의 나라로 불릴 만큼 가계와 생존을 위협하는 대학등록금은 지난 정부 시절 '교육자유화' 정책기조 덕분에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싸고 국무위원이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는 얘기가 나올 만큼 부동산 정책은 논란과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 사이 비정규직은 양산됐습니다. 힘의 열세가 명백했다지만 민주당이 제 1야당의 지위를 갖고 있던 지난 4년간에도 그 흐름은 계속됐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민주당의 변화를 한편 긍정적으로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박원순 시장님, 민주당 바깥에서 혁신을 주도해야 합니다

시대가 진보를 부르고 있습니다. 1% 부자정당인 한나라당 세력마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새누리를 열겠다고 나서는 것이 명백한 증거입니다. 표를 얻기 위해 매번 변신에 능통했던 한국의 보수정당들에게 정강정책을 바꾸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변화가 아닙니다. 해답은 압박과 감시에 있습니다.

진보정당의 정치적 확장을 통해 민주당의 진보와 혁신을 더욱 압박하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지고 국민의 깨어있는 감시와 비판이 지속될 때만, 과거처럼 자본과 보수언론에 쉽사리 타협하지 않는 정체성 정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시장님이 민주당의 바깥에 남아 혁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주시는 것이 한국정치를 위해 그리고 "모두 민주당으로 휩쓸려 간다"는 눈총을 받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라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확인된 들끓는 민심은 MB정권과 오세훈 시정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정치의 변화를 간절하게 원하는 유권자들의 목마름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민심이 현재의 불확실하며, 높은 지지율에 도취된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는 민주당으로 모두 수렴되는 것이 옳겠습니까?

저는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지금은 진보정치가 확장성을 갖도록 힘을 실어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힘은 약했지만, 한국 정치 현실에 준엄한 문제제기를 하고 낡은 관성을 깨뜨려 정치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시키는데, 진보정치의 분명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습니다. 시장님 또한 진보정당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정치와 시민사회의 발전 그리고 시민이 만든 서울시 공동정부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 시장님의 사려 깊은 결단을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 내내 강령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원석은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입니다.



태그:#박원순 ,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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