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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여성가족부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하여 "2011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성평등지수를 8개의 부문으로 나누어 지수화함으로써 성평등 수준을 파악하고,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자료였다.

부문별 성평등 수준 - 출처 : 여성가족부 <2011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
 부문별 성평등 수준 - 출처 : 여성가족부 <2011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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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우리나라 국가성평등지수 값은 62.6로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부문이 '의사결정' 부문으로 19.2였다. 개별 지표를 살펴 보면 국회의원의 경우 여성의 비율은 14.7%, 5급 이상 공무원 중에는 9%만이 여성이었다. 민간의 경우 조사대상 91개 주요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고작 1.9%에 불과했다. 정부도, 국회도, 기업도 여성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자료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북유럽의 선진국들인 스웨덴(45%), 핀란드(42.5%), 노르웨이(39.6%), 벨기에(39.3%)만 성비가 높은 게 아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44.5%), 아르헨티나(38.5%), 쿠바(43.2%), 스페인(36.6%), 뉴질랜드(33.6%) 등 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30% 이상의 높은 성비를 보여 준다. 아시아에서는 네팔(33.2%), 베트남(24.3%), 중국(21.3%) 등이 눈에 띄인다. 북한(15.6%)마저도 우리나라보다 근소하나마 높았다.

지역별 평균 여성 의원 비율 - 출처 : 여성가족부 <2011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
 지역별 평균 여성 의원 비율 - 출처 : 여성가족부 <2011년 한국의 성평등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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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가까운 여성이 의사결정 참여하는 나라, 어떻게 노력했나

40%에 가까운 여성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대부분의 나라들은 여성할당제를 도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4개 국 가운데 법적 규정, 혹은 정당의 자율적 할당제를 도입한 나라는 91개국이며, 그 가운데는 의석 자체를 여성에게 의무 배당하는 여성의석제를 시행하는 경우(벨기에, 이탈리아, 탄자니아, 방글라데시)도 있다. 할당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13개국 뿐이다.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나라의 여성 비율(23.3%)은 도입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15.5%)보다 약 8% 가량 차이가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 개정된 정당법 31조의 아래 조항을 통해 여성의 국회 진출을 돕고 있다.

"④ 정당은 비례대표전국선거구국회의원선거후보자중 100분의 30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여야 한다." 더불어 시·도 의원 비례대표에 여성공천할당 비율은 50% 이상이며 후보 명부에 "순위에 따라 2인마다 여성 1인이 포함되도록"하여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 오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이 15%선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여성할당제가 비례대표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선출직인 지역구 의원의 경우에는 정당법에 할당제 조항이 없으며, 개별 정당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전 의원(왼쪽 세번째) 등 예비후보들이 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구의 15%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다는 원칙과 관련해 '과도한 특혜'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전 의원(왼쪽 세번째) 등 예비후보들이 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구의 15%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다는 원칙과 관련해 '과도한 특혜'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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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지난 6일 당무위 회의에서 전체 지역구 245개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지역에 여성을 공천토록 당규를 개정하기로 한 것은 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지역구 의원까지도 여성할당제를 당 자체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여성 의원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아 여성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에 대한 여성할당제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민주당이 내놓은 15%는 여성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 해 온 비례대표 50% 및 지역구 의원 30% 할당에는 못 미치는 아쉬운 수치다.

현재 민주당 의원 89명 가운데 여성 의원은 13명으로 이미 15%다. 공천 기준으로 15%라면 실제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국회의원이 되는 수는 더 적을 수 밖에 없고, 이는 비례대표를 감안하더라도 18대 의원 성비보다 더 후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지역구 여성 공천 30%안을 내 놓은 바 있다. 비록 "지역구 30%에 여성을 공천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민주당의 15%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15% 여성할당제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8일 민주당 내 '낙하산 공천 반대 여성 의무할당 15% 이중특혜 반대를 위한 출마자 모임' 소속 출마 예정자 12명이 한명숙 대표를 항의 방문하고 15% 할당제 수정을 요구했다. 현재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여성 후보가 41명 뿐이라서 이대로 공천 신청이 이뤄진다면 사실상 모든 여성 신청자가 공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청래 전 의원은 트위터와 다음 아고라 등에 민주당 내 이대 출신 후보자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게재하며 "민주당이 이대 동문회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를 비롯해서 이 일을 추진하는 이들이 이대 출신의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정청래 전 의원, 얼굴이 너무 두껍지 않으세요?

다음 아고라에 있는 정청래 전 의원의 글
 다음 아고라에 있는 정청래 전 의원의 글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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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대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면서 이대출신을 공격한 이 글은 민주당 여성 후보의 실명을 적고 "이대 출신. 뒤에서 총질한 대표적 인물"이라는 식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자당의 국회의원 예비후보 가운데 여성의 수가 15% 밖에 안 되어 공천 신청한 여성 모두에게 공천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제껏 민주당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정당을 운영 해 왔으며, 여성에 대한 배려라든지, 여성 지도자를 키워 내려는 노력이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대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역시 그 정도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하면 여성 정치인으로 살아 남을 여건이 안 되는 참담한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청래 전 의원이 했다는 말 "얼굴이 너무 두껍지 않습니까?"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여성 예비후보의 수가 적다는 것은 15% 여성 할당제를 반대할 명분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당장 도입해야 할 명분이 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발굴하고 삼고초려 해서라도 후보군으로 합류시키고, 엄격한 검증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공천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 출신. 뒤에서 총질한 대표적 인물"마저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천할 수 밖에 없는 게 지금 민주당의 현실이다.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 될수록 사회 전반의 부패 수준이 감소한다고 한다. 민주당의 15%를 넘고 새누리당의 30%를 넘어 실질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평등하게 이뤄질 때 이 나라의 부패 수준은 현저히 낮아져 있을 것이다. 15%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이다.


태그:#민주당, #여성할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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