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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약을 매일 먹을 필요가 있을까?

부모님께서 상경하셔서 서울의 손자손녀와 함께 계십니다. 농번기에는 서울에 오시기 힘드니 겨울동안만이라도 늘 고소 싶어 하셨던 손자손녀와 함께 계실 수 있게 지난 늦가을에 아내가 모셔왔습니다.

2월 8일 헤이리를 다녀가시는 길에 아내는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2년 전 간기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잠시 입원했던 병원의 담당의사를 만나서 경과를 말씀드리고 다시 건강점검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평생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매일 드셔야할 처방약조차도 아껴서 먹어야한다고 여겼습니다.
 평생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매일 드셔야할 처방약조차도 아껴서 먹어야한다고 여겼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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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증상이 심해지지 않는 한 병원가시는 것을 꺼리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기에 아내는 의사에게 사정을 전해 2년 전 퇴원시 2개월 치 약을 처방받아 함께 내려 보냈습니다.

마침내 두 달 치 약을 다 드셨을 시점에 다시 증상을 물어서 약을 처방받을 심산으로 아내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 드셨어야 할 약이 절반 이상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일주일쯤 약을 먹으니 불렀던 배도 가라앉고 소화도 잘 돼서 이틀에 한 번씩 약을 먹어도 괜찮더라. 그래서 약을 아껴먹었다. 비싼 약을 매일 먹을 필요가 있겠나?"

아버지는 매일 드시도록 처방된 약을 아껴 이틀, 혹은 삼일 걸러 드셨던 것입니다.

약은 규정된 시간에 규정된 양을 드셔야한다는 며느리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아껴야한다는 생각을 실천하신 게지요.

몸만 치료하는 의사

약까지 아껴드셨던 터라 개운한 마음일 수 없었던 아내는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의사를 찾은 것입니다.

아내가 간에 명의라는 60대 의사 사이의 대화를 제가 전해줬습니다.

"약을 더 드시지 않아도 될까요?"

아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2년 동안 괜찮으신 거면 괜찮은 겁니다."

"발등이 자꾸 붓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님, 발등을 좀 보여드리세요."
"됐어요. 88세라 그러셨죠? 그 연세에는 모두가 그래요."

"등도 자꾸 가렵다고 하시는데..."
"연세가 드시면 피부가 건조해져서 그래요. 그 연세에는 모두 그래요. 괜찮아요."

저는 모두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전해 들었지만, 그 의사의 진료 태도가 좀 서운했습니다.

30년 뒤면 그 의사도 아버지의 나이가 될 것입니다. 그 의사가 아버지의 나이가 돼서 후배의사들을 찾아갔을 때 똑같은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 약을 더 먹지 않아도 될까요?
"할아버지, 지금까지 괜찮았다면 괜찮은 거예요."

- 발등이 부어서 발을 딛기가 불편한데...
"할아버지, 그 연세에는 모두가 그래요."

- 등이 자꾸 가려워서 피부가 벗겨지도록 자꾸 끓게 되요.
"할아버지, 그 연세에는 모두 그래요."

그 의사는 왜 이런 말을 못했을까요.
"축하합니다. 이제 약을 드시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지셨어요."
"발등이 좀 부으셨군요. 이 정도면 약을 드실 정도는 아닙니다. 며느님에게 한 번씩 만져달라고 하세요."
"특히 겨울이라 피부가 많이 건조할 때입니다. 봄이 되면 더 좋아질거에요. 약은 드시지 않아도 될 만합니다. 손자와 한버씩 목용탕에 다녀오시면 참을 만 하실 겁니다."

그 의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병은 의술만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 상태만으로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까지 치료하는 의사

지난해 9월 말, 울산북구청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저의 운전을 맡아준 아내의 요청에 의해 부산 범어사의 원효암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도중에 몸살 기운을 느낀 저는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가장 가까운 병원에 들렀습니다. 부산 외곽 골목길의 작은 내과의원이었습니다.

한적한 골목의 1층 의원의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병원 내부는 고요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더군요. 대기실 위쪽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라는 성경 말씀이 적힌 액자 하나가 걸려있을 뿐 인테리어도 소박했습니다. 곧바로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길을 가다 들어간 부산 인근의 강내과의원.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 의사께서는 환자의 마음까지 고려하는 진료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길을 가다 들어간 부산 인근의 강내과의원.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 의사께서는 환자의 마음까지 고려하는 진료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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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긴 듯한 의사 선생님은 진료 뒤에 저의 행장에 호기심을 느끼셨는지 제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파주에서 왔고 아내의 요청으로 절을 방문하기위해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고요한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저는 의사의 의외의 대답에 궁금증이 동해 되레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 선생님은 기독교인이 아니신가요?
"입구의 성경 액자를 보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교입니다. 절도 좋고, 교회도 좋으나 현재는 어느 곳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 그럼 그 성경말씀은 어찌된 영문인지요?
"제게는 여러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홀로계신 연세가 많으신 어머님이 계시고요. 그런데 어머님이 매일 아프시다는 거예요. 여러 처방을 해보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뚜렷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동안 어머님은 많은 자식들을 거두느라 평생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이셨어요. 그런데 그 자식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어머님은 갑자기 자신의 역할이 없어진 거예요. 그 공허함이 무료함을 지나 몸이 아픈 증세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동안 어머님은 절에 다시시던 독실한 불교신자였어요. 그런데 불교는 스스로 염불하고 정진해서 깨달아야 하는 종교잖아요. 절에 가셔도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홀로 독경을 해야 했던 거지요.

그래서 저는 인접한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지요. 어머님을 이 교회로 모셔 올 테니 한순간도 홀로 있지 않게 해달라고…. 교회는 함께 성경 공부하고, 찬송하고, 여러 활동들이 많아서 한가할 틈이 없지요. 특히 목사님께 부탁을 드리니 어머님께 신자한분을 붙여서 성경공부를 시키고, 지겨울만하면 찬송하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냈습니다. 홀로된 시간이 없어지니 어머님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님이 목사님을 모시고 오시면서 그 액자를 들고 오신 겁니다. 어머님이 목사님께 아들을 줄 좋은 성경 말씀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것이지요. 어머님이 가져오셨으니 걸어둘 수밖에요. 어머님은 오늘도 여전히 교회에서 바쁘십니다. 물론 아픈 곳도 없고요."

저는 이 의사의 말을 듣고 환자의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 아버지가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더라면 더 크게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게 포스팅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진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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