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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은 '학교의 꽃'이 아니라 '봉'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예외 없이 주어지는 업무에다 많게는 40명도 넘는 아이들의 생활지도까지 챙겨야 한다. 그렇잖아도 학년 초 기피 업무 1순위였는데, 숫제 올해부터는 학교장이 담임을 시킬라치면 휴직이라도 신청해야 할 판이다.


교실 내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현직교사가 연이어 불구속 입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리 밝혀두지만, 같은 교사로서 처벌을 받게 된 해당 교사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방조'가 알고도 모른 채, 보고도 못 본 채 했다는 의미일텐데, 경찰이 적시한 그 혐의가 나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한다.


전국의 교사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경찰의 세심한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몇몇 만만한 교사들에게 본때를 보여준다고 학교폭력이 줄어들까. '견찰'이라고 조롱 받아온 경찰이 여론에 편승해 실적 하나 크게 올리려는 '쇼'이거나, 피해자들을 대신해 화풀이하는 효과 정도라면 모를까…. 단언컨대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외려 부화뇌동하듯 그저 학교폭력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정도의 인식만으로 엄단 운운하는 그들의 '칼춤'이 더 두렵다. 그들의 눈에는 뉴스에 오르내리는 학교 현장이 조직 폭력배의 소굴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절대다수의 아이들은 늘 그래왔듯 함께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소중한 터전이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진과의 전쟁' 선포한 경찰... 진단이 틀렸다


경찰에 끌려가는 교사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설령 그가 무능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아 쫓겨난다 해도, 학교 내에서 절차에 따른 아이들과 동료교사들의 평가에 의한 것이어야지, 생뚱맞게 경찰이 앞장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이미 '학교의 신뢰는 무너졌고, 자신들이 나서야 할 정도로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한 모양이다.


"그 선생님들,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같긴 해도 참 재수 없게 걸렸다."

 

일선 교사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아무리 무능한 교사라도, 학년 초 담임을 맡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자기 학급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교감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사랑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배정 받은 학급에 어떤 아이들이 들어오느냐가 '성패'의 갈림길이 된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워온 '조숙한' 아이들이 몇 명이라도 있을라치면 그 해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고 자조한다. 그러한 '오피니언 리더'는 순식간에 학급 분위기를 황폐화시키고, 세포 증식 하듯 자잘한 'B급 리더'들을 양산하게 된다. 이쯤 되면 담임의 교감은커녕 통제조차 무력화된다.


이른바 '리더'들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탓에 폭력과 장난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설정한 '범주'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아이들을 '찌질이'(요새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별명)라며 집단적으로 놀려댄다. 담임이 개입하더라도 그때뿐. 눈에 띄지 않게 학교 안팎에서 괴롭힘은 계속된다. 우리끼리의 장난 방식을 이해 못하는 '담탱이'와는 세대차이가 난다고 떠들어대면서.

 

애꿎은 담임 하나 벌준다고 상황이 달라지나

 

습관처럼 굳어진 아이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으려면 습관이 몸에 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담임으로서 어떻게든 그들과 대면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해도 시간이 없다. 수업 시간을 빼면, 잠깐의 아침 조회와 점심시간 자투리 시간뿐이다. 입시에 '올인'해야 하는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더욱 열악하다.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그들은 완전한 '자유의 몸'이 돼 다른 학교의 또래, 선후배들과도 어울리게 되는데, 그때 담임의 안테나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열에 일곱여덟은 담배를 피운다는 전문계(특성화)고등학교는 이른바 '일진'들의 아지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또한 '일진들의 아지트'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일진'들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애꿎은 담임 하나 벌준다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앞으로도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해당 담임교사의 방조 혐의가 확인되면 누구든 입건할 것"이라는 경찰의 확언에 담임교사들의 일치된 반응은 '서류 챙기기'다. 면피용 상담일지를 갖춰놓기 위한 아이들과의 형식적인 만남, 불 보듯 뻔하지 않는가. 전국 40만 교사들을 단숨에 쫄게 하면서 대단한 위세를 확인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부디 '닭짓'을 멈춰주길 바란다.

 

일진은 실체가 아니라 '폭력적 문화'를 말한다

 

이참에 학생부장으로서 만난 몇몇 경찰들의 무지를 일깨워주고 싶다. '일진'이라는 용어는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추켜세우는 말인 '1빠'의 고상한 한자어 표현이다. 곧, '잘 나가는 애들'이라는 의미다. 무슨 체계적인 조직인 양, 마치 회장, 부회장 등의 수뇌부(?)만 검거하면 조직이 와해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황당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일진'이란 학교폭력 서클로서의 '실체'라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자존감을 잃고 어느덧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심지어 그것을 즐기려는 아이들이 학교에 독버섯처럼 뿌리 내린 학교 내 폭력적 '문화'를 일컫는다. 조만간 일선 경찰서의 담벼락마다 학교폭력근절 현수막으로 도배될 테지만, 근본적 원인은커녕 의미조차 잘 모르는 그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 반에서만큼은 무탈하게 1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만으로 안일하게, 솔직히 말하자면 나태하게 보내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학년 초에 세운 거창한 학급운영계획들이 현실의 벽에 부닥쳐 하나둘씩 무산되면서 의지가 꺾인 교사도 있고, 애초에 억지 춘향으로 담임을 떠맡게 돼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경우도 더러 있다.


더욱 솔직해지자면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아이들을 되레 귀찮아하는 교사도 많고, 아이들 앞에서 서기 민망할 정도로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도 있다. 설령 입건된 교사가 그런 부류였고, 실제로 학교폭력을 방조한 혐의가 짙다 하더라도 형사 처벌에는 신중했어야 했다. 그들의 의도대로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을지는 몰라도 공교육 붕괴를 가속화시킬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단언컨대, 담임을 희망하는 교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월 13만 원의 담임수당만으로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담임교사와 해당 학교가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기 위해 출석정지 또는 출교(전학) 징계처분을 남발할 우려마저 있다.


경찰차가 수시로 들락거리는 학교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경찰이 교사를 대신해 직접 아이들을 교육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부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교사의 든든한 협조자로 머물러 달라. 가해자든, 피해자든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부대끼는 사람이 어떻든 교사일진대 의욕을 북돋워 주지는 못할망정 자존감에 생채기를 남겨서야 되겠는가.


태그:#학교폭력, #현직교사 불구속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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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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