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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판에 얼어붙은 얼음을 녹이려 촛불을 켰다. 물과 불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광을 만든다.
▲ 몽환 유리판에 얼어붙은 얼음을 녹이려 촛불을 켰다. 물과 불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광을 만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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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판 위에 얼음이 얼어붙었다.
유리 아래 촛불을 켜니 얼음이 녹는다. 그리고 몽환적인 빛을 만들어 낸다.
저 빛이라면 불을 찾아 헤매는 부나비를 유혹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 오랜세월을 보내고 하늘을 날았을 때, 저 순간의 유혹이 그 모든 인고의 세월을 순식간에 불태우리라고 생각을 했을까? 그만큼 저 불빛의 유혹은 강렬했을까?

도시로 도시로 몰려온 이들의 삶, 그들의 삶은 마치 불을 찾아 헤매는 부나비와도 같은 삶이 아닐까 싶었다.

꿈에 빛깔이 있다면 이런 빛일까?
▲ 연록의 꿈 꿈에 빛깔이 있다면 이런 빛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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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었을 터이다.
도시로 가면 뭔가 있을 터이다. 이곳보다는 더 좋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꿈,
아마도 꿈의 빛깔이 있다면 저런 초록의 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꿈꾸며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도시는 친절하지 않았다. 냉혹했다. 뜨거워서가 아니라 추워서 그 삶을 접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에 불이 났다. 그곳에서 꾸던 꿈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 거여동재개발지구 다닥다닥 붙은 집에 불이 났다. 그곳에서 꾸던 꿈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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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 머물진 않을거야.
아주 잠시 머물다 나도 이 곳을 떠날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겨울이면 연탄가스의 매케한 냄새가 가득한 골목길 사이 쪽방에 보금자리를 틀었을 터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곳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꿈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알았을 터이다.

"불이야!"

그랬다.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꾸던 꿈 모두 타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기어이 그 불 속으로 뛰어들어 제 삶을 마감하는 부나비처럼, 그렇게 다 타버린 꿈일까?

휘어진 신발장에 놓여진 작업화가 서민의 삶을 보여준다.
▲ 신발장 휘어진 신발장에 놓여진 작업화가 서민의 삶을 보여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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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화가 그득한 신발장은 인생의 무게만큼 휘어졌다.
메이커도 없는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이랗게 말했단다.

"야, 그거 초록색 상자에서 주워왔냐?"

메이커 신발 하나, 옷 하나 사기 위해 등골이 휘어야 하는 사람들과 유행처럼 한 철 입으려고 메이커를 사는 이들과의 경쟁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겉모습은 같은듯 하지만 별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뒤섞인 도시인의 삶.

도시의 불빛이 반영된 유리가 금이 갔다. 그 안에 들어온 그림자도 금이가 어긋났다.
▲ 깨어진 그림자 도시의 불빛이 반영된 유리가 금이 갔다. 그 안에 들어온 그림자도 금이가 어긋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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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깨어진 유리에 반영되어 엇나간 그림자처럼 섬뜩하게 갈라진 삶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닐까?

아주 잠시 머물다 이곳을 떠날거야!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이젠 더는 뒤로 물러설 곳도 없는 삶. 그곳에 둥지를 틀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만큼은 그곳을 떠났으면 했지만, 그 아이가 또 그곳에 산다. 그리고 반짝 햇살처럼 다가온 재개발이라는 유혹.

어쩌면 나도 그 대열에 낄 수 있을지 몰라.
그것이 개꿈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그것마져도 깨어져야할 꿈이라면 너무 아픈 것 아닐까?


태그:#부나비, #도시인, #재개발지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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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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