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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일)는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 달력이 등장하기 전에 사용하던 24절기로 꼽으면 입춘일은 한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이 물러가고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토)에 '정월 대보름 풍물 한마당'이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다.

진포문화예술원 청소년풍물패의 ‘한바라기’ 공연
 진포문화예술원 청소년풍물패의 ‘한바라기’ 공연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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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군산 시민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군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진포문화예술원이 주관한 풍물 한마당은 작년 9월 개관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광장에서 열렸다. 임진년 정월 대보름은 2월 6일(월)로 평일이어서 앞당겨 개최하는 모양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대보름날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기원하고,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풍물놀이와 달집을 태우고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전통의 맥을 이어왔다. 묵은해의 근심·걱정을 모두 날려버리고 새 출발을 다짐했던 것.

임진년(壬辰年) '정월대보름 풍물 한마당'

풍어를 기원하며 매년 대보름날 열리는 ‘중동 풍어제’ 상에 오른 돼지머리.
 풍어를 기원하며 매년 대보름날 열리는 ‘중동 풍어제’ 상에 오른 돼지머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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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중동 당산제'에 들렀다가 경포천에서 열리는 '풍어제'까지 구경하고 오후 1시쯤 금강 하류가 내려다보이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인데도 많은 사람이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어 명절 분위기를 돋우었다.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은 개막식 인사에서 "선조들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동제나 마당 밟기(지신밟기) 등을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복을 빌었다"며 "이는 힘든 생활을 더불어 사는 지혜로 이겨내는 슬기로움에서 비롯된 중요한 의식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우리 군산은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하게 되어 국가나 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민속놀이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시민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는 화합의 축제로 만들어 우리의 역량을 결집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군산 근대역사막물관 앞마당에서 ‘투호놀이’를 즐기는 청소년들.
 군산 근대역사막물관 앞마당에서 ‘투호놀이’를 즐기는 청소년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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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이 열리는 중에도 어린이들은 투호 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썰매 타기, 윷놀이, 연날리기, 굴렁쇠 굴리기, 새끼 꼬기, 팽이치기 등 다채로운 민속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총 아홉 종목 중 여덟 종목을 체험한 어린이에게 기념품을 나눠준다니 인기를 끌 만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떡메치기와 굴렁쇠 굴리기에 도전하는 어른들의 서툰 솜씨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부모와 함께 전 부치기, 고구마 구워먹기, 부럼 먹기, 계란 꾸러미 만들기, 연 만들기, 탈 만들기 등을 체험하는 아이들도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탈에 색칠하고 있는 다섯 살배기 김재형군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탈에 색칠하고 있는 다섯 살배기 김재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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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만들기 부스에서 누나와 함께 색칠에 몰두하는 김재형(5살) 어린이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물감이 뭍은 붓을 주먹에 꼭 쥐고 장인(匠人)의 표정으로 가녀린 손목을 이리저리 놀리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재형 어린이에게 다가가 "탈이 무섭지 않아요?" 하고 물으니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30대로 보이는 재형이 엄마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네 식구가 나왔다"며 "재형이는 집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재형이가 무척 대견스러운 모양이었다.

풍요를 상징하는 달이 1년 중 가장 크고 밝다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으로는 지신밟기, 부럼 깨기, 찬 음식 먹기, 해뜨기 전에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나무 아홉 번 하기, 마당 아홉 번 쓸기, 오곡밥 아홉 번 먹기, 소원 빌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이다.

밥 얻어먹으며 돌아본 대보름 민속놀이 마당

자원봉사자들이 김치전을 나눠주고 있다. 이날 먹는 음식은 모두 ‘꽁자’!
 자원봉사자들이 김치전을 나눠주고 있다. 이날 먹는 음식은 모두 ‘꽁자’!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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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서 왔다는 이병철(75세), 박정자(73세) 부부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익산에서 왔다는 이병철(75세), 박정자(73세) 부부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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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찰밥과 부침개, 인절미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순간 '정월 대보름은 밥 얻어먹는 날'이 뇌리를 스쳤다. 대보름날이면 얼굴에 검댕을 바르고 거지 옷차림으로 밥을 얻으러 다니던 동네 아주머니들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70대 어르신 두 분이 음식을 서로 권하는 모습이 너무도 다정하게 보여 가까이 다가갔다. 이병철(75세), 박정자(73세) 어른으로 예상대로 부부였다. 찰밥을 맛있게 먹던 이병철 어른은 익산에서 사는데 TV 뉴스를 보고 왔다며 나오는 음식이 모두 맛있다며 흐뭇해했다. 

밥은 물론 간식거리도 공짜여서 먹지 않아도 맡겨놓은 것처럼 든든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찰밥을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해서 한 공기 얻어먹으려고 다가가 얘기하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수한 찰밥에 홍어회와 나물 한 접시, 구운 김도 한 봉지 내주었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언제나 꿀맛. 특히 얻어먹으면 더욱 맛있는 법이다. 찰밥 한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먹고 나니까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기가 입안에 착착 감기는 찰밥에 홍어회. 식탐이 발동했으나 자제하고 발길을 돌렸다.

연 만들 재료를 받으려고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연 만들 재료를 받으려고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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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만들기 부스 앞에는 사람들이 20m가량 길게 줄지어 있었다. 컴퓨터와 전자오락이 생활화된 어린이들이 야외에서 벌어지는 전통놀이를 체험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날리기도 주어진 재료로 연을 만들어 날려보기를 한 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새끼 꼬기 부스도 인기가 좋았다. 주어진 짚으로 새끼를 50cm 이상 꼬아 도우미에게 확인을 받으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어린이가 도전했는데 손바닥에 힘주며 낑낑대는 모습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비슷한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  

계란 꾸러미 만들기는 대부분 어른이 참여했다. 누구나 도우미에게 계란을 두 개 받아 짚으로 계란꾸러미를 만든 후 확인을 받고 계란과 꾸러미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완성된 계란꾸러미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녀 모습도 보기 좋았다.

"엄마랑 아빠랑 부자로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한쪽에서는 자그만 한지에 소원을 정성스럽게 적어 달집에 매달고 있었다. 대부분 액운을 물리치고 행복과 건강을 비는 내용이었다. 혼자 외롭게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김시환(10살) 어린이로 '우리 가족 오래오래 건강하고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적어 매달았다.

"가족이 건강하고 잘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적었는데, 왜 혼자 왔어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이모들하고 함께 왔습니다. 엄마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나오지 못했어요. 아빠도 엄마 일을 도와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부자로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땅을 바라보는 학생 표정이 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부모와 함께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다른 어린이들과 비교되면서 아픈 마음을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고,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후회되기도 했다. 더는 대화를 진행할 수 없었다.

유학 준비 중인 방영희 학생과 이은주 학생이 소원이 적힌 쪽지를 매달고 있다.
 유학 준비 중인 방영희 학생과 이은주 학생이 소원이 적힌 쪽지를 매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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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준비 중이라는 군산대학교 3학년 방명희 학생과 전북대 4학년 이은주 학생이 '2012 원하는 것 다 된다'라고 적어 매달아놓은 쪽지가 잠시 우울해졌던 마음을 풀어주었다. 앞동산에 떠오른 쌍무지개처럼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동신 시장도 달집 소원 적기에 참여했다. 문 시장은 "대보름을 맞아 군산 시민 모두가 건강하시고 올해는 꼭 뭔가 하나씩 이루게 해달라고 기원하려고 왔다"며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군산시민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세요!'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시골 '잔칫집 마당'으로 바꿔놓은 '노래자랑'

예선을 거친 11명이 겨루는 주민 노래자랑 시간은 '대보름 풍물 한마당' 행사장을 시골 잔칫집 마당으로 바꿔놓았다. 출연자들의 흥겨운 노래에 함성과 손뼉으로 열띤 응원전을 펼치기도 하고, 여럿이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고춘순 아주머니가 조미미의 <눈물의 연평도>를 열창하고 있다.
 고춘순 아주머니가 조미미의 <눈물의 연평도>를 열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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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앞에서 춤추는 관객들. 구경하는 문동신 시장 손을 붙자고 나와 춤을 추기도.
 무대 앞에서 춤추는 관객들. 구경하는 문동신 시장 손을 붙자고 나와 춤을 추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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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동 대표로 나왔다는 고춘순(66세) 아주머니는 <눈물의 연평도>를 간드러지게 불러 인기를 독차지했다. 주위 추천으로 노래자랑에 나왔다는 고 아주머니는 평소 노래를 좋아해서 요양병원, 양로원, 노인정, 보육원 등으로 '노래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한국 신랑을 만나 1년 전 군산으로 시집온 '판느꾸인'(21살)은 2등 상을 받았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신청해서 언니 '황터딘'(26살)과 함께 왔다는 그는 어눌한 한국어로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행복한 흑용의 해가 되기를 기원해요!"라고 덧붙이기도.

임진년(壬辰年) '정월 대보름 풍물 한마당'은 참가자들이 손잡고 달집을 도는 강강술래에 이어 저녁 6시 10분 달집에 불을 점화,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희망찬 출발을 다짐하면서 막을 내렸다.

30만 군산 시민의 소원을 담은 달집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30만 군산 시민의 소원을 담은 달집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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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월대보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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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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