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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인천시 남구 '영화공간 주안'에서는 인천지역 이주운동연대, 인천인권영화제가 주최한 '2011 인천 이주 노동자 미디어교육 상영회 - 발언(潑言)하다 season2'가 열렸다.

 

나도 지난해 4월의 서울여성영화제의 이주여성영화제작 워크숍에 참여한 뒤부터 이주민 대상의 미디어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개인적인 차원이긴 하지만, 주변의 다문화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교육 등을 준비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상영회에 거는 기대가 컸다.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말 믿고 온 한국

 

오후 3시부터 시작한 1부에서는 인도네시아출신의 두 감독의 영화가 상영됐지만, 나는 두 번째 작품 <Welcome to Korea>부터 봤다. 이 영화의 감독은 한국에 온 지 3년이 됐다는 바쿠시(Bagus)다.

 

"나의 가족, 가난하고 빚이 많았다"라는 고향 회상 장면부터 시작한 영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봐도 현장 같다는 그 풍경이 궁금했다. 나중에 감독들과의 대화 시간에 실제로 고향에 간 친구가 그의 친가에 가서 친동생에게 출연을 부탁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 영화가 보여준 진실성과 노력에 관심이 커졌다.

 

큰 사건도 없이 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그의 일상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 이 영화를 통해 느낀 것은 '그가 젊은 나이에도 한국에 와 가족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으니까 행복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태어났다면 대학생 정도가 될 나이에 사회에 나가서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마 그에게도 마음 고생이 있었겠지만, 아버지 대신에 가장으로서 빚을 갚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숱한 어려움을 극복했을 것이다. 그의 영상에는 그가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필터를 통해서 보이는 한국의 풍경들은 아름다웠다. 나도 잊고 있었던, 10여 년 전에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신선하게 봤던 풍경 같이 보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12년이면 등록하고 살 수 있을텐데..."

 

2부에는 바쿠스 씨와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일한 지 12년이 넘는 조이(Gobinda Barmon Joy, 방글라데시)씨의 <지나가는 한국생활(Passing through life in Korea)>가 상영됐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한국말을 알아 듣지 못해 직장에서 야단 맡고, 또 한국음식도 잘 먹지 못해 힘들었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게 되자 모든 일이 쉬워졌단다. 그리고 직장이나 동네 사람들도 많이 사귀던 그의 모습은 아주 보기 좋았다.

 

그런데 영화는 갑작스러운 귀국 발령을 낸 한국 정부에 대한 그의 말 한마디로 막을 내린다.

 

"유럽에서 12년이면 등록하고 살 수 있어요. 나는 곧 귀국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등록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대 청춘을 거의 한국에서 보낸 미등록 이주노동자 조이씨의 그 말은 너무나 간절하게 들렸다.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 중에도 다음 주에는 한국을 떠나야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한국에는 다시 돌아오기 힘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다르지만 같은 것이 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역군으로 3500만 달러의 외화벌이로 독일로 파견됐던 단기계약 노동자들은 독일의 단기 노동정책에도 대부분이 귀환하지 않았다. 2세대, 3세대를 이루며 살고 있단다.

 

내가 인천시내의 초중학교 등에 가서 '다문화 이해 수업'을 할 때 "한국에서 해외에 나가서 사는 국민들과,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어느쯕이 더 많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거의 70% 정도가 들어온 이주민들이 많다고 손을 올린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해외이주한 국민 수는 대략 700만 명이며,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 수는 120만 명 정도라는 이야기를 하면 놀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아직 이주노동자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것도 사실이란다. 그럴 때 내가 이야기 한 내용은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이주노동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자원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들이다.

 

"보기는 다르지만 같은 것도 많아요. 예를 들어면 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 위해서 일하러 왔다는 것이지요."

 

같이 영화를 본 막내 딸은 요즘은 한글 배우기에 약한 스트레스를 느꼈는지, 영화 속에서 이주민 아저씨가 힘들게 한글 배우는 장면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영화가 처음은 조금 무서웠지만 나중에 조금 재미있더라..."

 

아마 나와 같이 말을 배워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같이 사진도 찍고 보니 조금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한 말 같다.

 

학생 때 만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과 서로 통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제협력 NGO를 지원하는 온라인 모금사이트를 운영하고, 방그라데시의 빈곤가 아이들의 다큐멘터리 상영을 통해 그들을 지원한 유나이티드 피플 주식회사 대표인 세키네켄지(関根健次)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타인을 만들지 않고, '나는 너, 너는 나'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세계 평화의 길을 볼 수 있겠지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영화를 더욱 많은 시민들에게 보여주면서 이제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우리 이웃이라고 느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문화뉴스 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천, #이주 노동자, #인천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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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6~ 이주민영화제 실행위원 2017.3월~2019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3 3월~ JK DAILY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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