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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총선과 대선이라는 보도의 공정성이 한층 더 요구되는 새해를 맞아 MBC 기자들은 처절하게 반성한다. '공정방송, 인권존중, 보도의 자율과 독립'을 명시한 공영방송 MBC의 방송 강령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과 시청자에게 마음 깊이 사죄드린다."

 

MBC 기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지난 한해 보도를 스스로 돌아보며 사죄했다.

 

사실 MBC가 시민들의 돌팔매를 맞은 건 지난 1987년 이후 처음이다. 25년 만이다. 기자들이 스스로 꼽은 것처럼 청와대 내곡동 사저,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미FTA 날치기, PD수첩 판결, 반값 등록금 문제, KBS 도청의혹, 김문수 도지사 119 전화 논란 등 굵직굵직한 사안마다 MBC는 정도를 걷지 못했다. 청와대나 여권의 해명자료를 베껴 쓰거나 보도를 아예 누락했다.

 

김재철 사장이 재작년 낙하산 인사로 투입된 뒤, MBC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은 역사를 거슬러 정권의 압력에 굴종했던 과거로 퇴행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자들을 한직으로 내쫓고 뉴스를 장악했다. 시사 프로그램은 죽이기로 일관했다.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을 담당하던 <100분 토론>은 자정 이후 시간대로 밀려났고, <뉴스후>는 폐지되었다.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 불리던 <PD수첩> 역시 솎아내기 인사와 잦은 아이템 검열로 무력화되었다.

 

최근 언론 관련 학자 1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MBC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63%가 나왔다. 총선과 대선 보도가 우려된다는 응답자도 무려 79%나 되었다. 이들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친정부 성향의 간부들에 의한 보도통제를 지적했다. MBC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는 더 적나라하다. MBC의 신뢰성이 위기라는 응답이 95%를 넘었다. 김재철 사장의 잔류에 대해서도 93.5%가 반대했고, 노조의 김재철 사장 퇴진 투쟁에 87.7%가 찬성했다.

 

그런데도 김재철 사장은 별 문제가 없다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단체협약에 규정된 정당한 인사요구마저 거부하고 있다. 노조의 쇄신인사 요구에 대해 "일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다. 청와대와 여당에 튼튼한 줄을 대고 있는 주요 인사들을 쇄신인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권은 무너져 가지만 정권의 낙하산은 오로지 위만 바라본다.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을 향해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MBC 구성원들은 이제 더 이상 정권의 주구 노릇을 하는 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MBC 노조는 이번 김재철 퇴진 투쟁에 조합의 명운을 걸었다. 그래서 이번 싸움은 결코 패할 수 없는 싸움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런데 주변의 시선이 반드시 곱지만은 않다. 심지어 단순한 정권말기 현상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왜 이제야 나섰느냐"는 질타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부족했다. 우리는 이미 재작년 김재철 사장의 낙하산 투입을 반대하며 39일이란 긴 기간 파업을 했다. 하지만 당시 김 사장을 쫓아내지 못하고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의 가슴에는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이번에 다시 일어나면 김 사장을 쫓아낼 수 있을까? 또 다시 회사가 망가지든 말든 '배째라' 식으로 김재철 사장이 무조건 버티면 과연 우리는 이길 수 있을까?

 

MBC노조는 작년에도 파업을 준비했다.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업 돌입 사흘 전 전격 철회했다. 일단은 당초 세웠던 목표인 단협을 따냈기 때문이다. 전세가 불리하다고 본 김재철 사장이 당초 해지한 단협을 회복하기로 대폭 양보하며 앞장서서 파업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실 단협만 지킨다면 MBC 보도의 공정성은 담보될 수 있다. 물론 김재철 사장의 단협 준수의지에 대한 신뢰는 당시에도 없었다.

 

예상대로 김재철 사장은 단협을 철저히 무시했다. 우리가 4개월 여 만에 다시 김재철 퇴진 투쟁의 깃발을 들 명분을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이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MBC 노조는 당분간 우리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MBC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은 물론 향후 정권의 향배에 따라 좌우되는 나팔수로 전락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MBC 노조는 1987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10번의 파업을 했다. 초기 6번의 파업은 방송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1999년 이후 10여 년 동안 파업 없는 기간을 보냈다. 정권으로부터의 압력이 사라지면서 보다 현실적인 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의 얘기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디어 악법 날치기로 탄생한 괴물 조중동 종편, 지상파 방송에 대한 지속적인 낙하산 사장 투입. 이명박 정부 이후 4년 동안 MBC 노조는 무려 네 차례에 걸친 파업으로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해고와 정직을 비롯해 무수한 징계를 당했고, 수십 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제 다섯 번째 파업으로 또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깃발을 내릴 수 없다. 더 이상의 침묵은 MBC 스스로 존재가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용마 기자는 MBC 노동조합 홍보국장입니다. 


태그:#MBC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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