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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풀이 눕는다.
▲ 바람과 풀 바람에 풀이 눕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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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풀이 흔들리고, 바람에 풀이 눕는다.
풀이니까 흔들리고 눕고, 그렇게 흔들리고 눕기를 반복하다 사그러들고 다시 피어난다.
흔들리고 눕는 것이 그들에겐 흠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눕지 않는 것이 세상 사는 지혜가 아니다.

때론 흔들리고, 눕고, 찢기우니까 삶.
한 점 바람도 없어 꼿꼿하게 서 있기만 한다면 그 삶은 또 얼마나 밋밋할까?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보며 바람을 담는다.

흔들리니까 풀이다.
▲ 바람과 풀 흔들리니까 풀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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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바람을 담는다는 것은 허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과연 실재인지, 이미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부터 실재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요, 평면의 카메라에 담긴 순간부터 그 현실은 사망선고를 당한 것은 아닐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거나 혹은 더 긴 시간, 1/250초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1/1000 혹은 느릿느릿 눈이 담을 수 없는 실재하지 않는 세상을 담아야 바람을 담을 수 있을까?

헛된 소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람을 담으면서 보이지 않아도 실재한다는 것과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 허구일 수 있다는 사유를 얻는다.

풀이 바람에 눕는다.
▲ 바람과 풀 풀이 바람에 눕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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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세뇌당한 사람들의 세상은 물신(物神)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실패자의 삶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세상은 틀렸다.
늘 실패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던 이들에 의해 역사는 이어져온 것이다.
자본의 종말, 다보스회의에서 더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없고, 우리가 처한 위험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논의 혹은 머리로만의 이해가 아닌 우리의 삶으로 살아지기까지 물신을 향한 달음박질은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두가 그렇게 달려가지 않는 세상이라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흔들리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 바람과 풀 흔들리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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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칠 뻔했다.
비썩 마른 갈색의 풀 사이에 초록의 풀이 어우러져 있다.
한 가지 색이 아니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싶었다. 온 세상이 획일적인 하나를 요구할 때, 다양성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 지금도 여전히 돌과 바람은 많지만 육지와 다를 것 없어진 삼다도에 정말 여자가 더 많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 숨비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해녀들이 힘찬 자맥질이 펼쳐진다. 아직은 삼다도가 맞다.

그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삶을 살아간다.
▲ 해녀 그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삶을 살아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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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가운 겨울날이었다.
바람소리를 헤집어놓는 날카롭고 경쾌한 숨비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 말의 톤도 높고 거칠게 들린다. 마치 싸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왜 그런지 알고 나면 정겨워지는 말이다.

그들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흔들렸을까?
흔들려 눕고 때론 다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여전히 살아오면서 얼만마 더 강인해진 것일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보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 좋다.
상처 받아보지 못한 사람보다 그 상흔을 새기고라도 넉넉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좋다. 조금 못났어도, 조금 거칠어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좋다.

흔들리니까 풀, 비틀거리니까 사람이다. 난 그런 풀, 그런 사람이 좋다.


태그:#바람, #풀, #삼다도, #해녀,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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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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