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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4년 4개월 만이다. 대통령의 참모로 그처럼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람도 드물다. 그때 국민은 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오면서, 들고 나온 것은 책과 개인 블로그.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바다출판사)과 '변양균닷컴(www.변양균.com)'이다.

 

그와는 오랜만이다. 지난 2006년 12월께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했다. 만 5년 만에 다시 마주앉았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다. 그동안 비체계적으로 살았다고 했다. 물론 농담조였다. 표정은 밝아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의 생채기였을까, 기자 생각엔 얼굴은 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그는 "별로 차이 없는데…"라며 애써 웃는다. 등산할 정도의 건강도 된다고 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주변에 미리 알렸다. 첫 반응은 예상대로 '신정아'였다. 트위터나 패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변 전 실장은 그냥 웃는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경제 이야기만…"이라고 말했다. '신정아씨가 낸 책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답이 없었다.

 

"신정아 사건 억울하냐고?... 석궁 교수 마음 이해돼"

 

- 신정아씨와 관련된 부분은 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는데.

"(다시 웃으면서) 뭐, 실체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다 아시면서…."

 

- 개인적으로 억울하다는 생각도 드는지.

"그런 이야기를 자꾸하면,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참… 오죽했으면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나오겠나. 석궁 교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그의 책 앞머리에서 "(변 전 실장이) 필요 이상의 죗값과 필요 이상의 희생을 치렀다"고 적었다. 신정아씨와의 관계 역시 "그렇게 까발려져서는 안 되는 사생활일 뿐"이라고 썼다. 문 이사장은 "사건 당시 언론들은 그를 파렴치한 공직자로 난도질했지만, 정작 무죄 사실은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 언론에 대한 서운함은 없는지.

"(곧장) 언론 전체에 서운함은 없다. 대신 문제는 정치언론인이다.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사람들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언론인을 말하는지.

"그때 내 사건을 다뤘던 보수언론의 주요 책임자, 데스크 등이다. 이 사람들 나중에 한 명도 예외없이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않았나."

 

- 지금 현직의원도 있나.

"현직에도 있고,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고…. 결국 그 사람들이 (당시 사건을 다룬) 목적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서운함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의 행태는 문제라는 생각이다."

 

 

"경제책임자로서 대통령 조롱거리에 대한 굉장한 자괴감 들어"

 

그는 "더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할 말은 많아 보였다. 애써 참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아내에게 커다란 실망과 상처를 입힌 건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회고했다. 그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도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 책 서문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라는 표현이 나오던데.

"(웃으면서) 듣고 보니, 너무 과격한 표현으로 썼네. 좀 오버한 것 같기도 하고…. 나에 대한 자괴감을 표현하려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그러니까, 이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심지어 '경포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난도 모자라 놀림감이 됐죠. 그런 이야기를 듣도록 만든 것에 대한 굉장한 자괴감이 있는거죠. 어쨌든 경제는 내 책임이었으니까…."

 

경제 이야기를 듣기 전에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을 물었다. 그는 "나와 노 대통령과는 어쩌면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고 했다. 속칭 명문대를 나와 고시합격으로 탄탄한 엘리트 관료를 밟았던 그였다. 그 스스로 '민주화운동', '재야', '변혁' 등과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과 첫 만남은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수석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갔을 때였다.

 

- 그 전까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전혀 몰랐나.

"이름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관료였으니까, 국회에서 마주치면 악수 정도 나눴던 것 같다."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은 없었나.

"당에서 가만히 보니까, 열혈 지지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정말 힘들고, 어렵고, 서민들이었다. 그들의 희망이었다. 나중에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도 희망을 걸었다."

 

'어떤 희망이었나'고 물었더니, 그는 "경제와 재정 쪽을 오래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곤 2002년 초 당시 노무현 후보와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정학을 보면, 첫 장에 '국가재정은 무엇인가'라고 나와요. 우리는 그동안 1년짜리 땜질식으로 해왔어요. 고민이 많았죠. 그때 노무현 후보가 딱 그러더라구요. '국민을 위해 재정을 배분했으면 좋겠다'고. 그 한마디에 '맞다'고 했죠."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두고 "인간적으로 따뜻한 것뿐 아니라 지도자로서 경제와 복지정책을 접근하는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 노 전 대통령이 일벌레였다고 했는데.

"(웃으면서) 그랬다. 그런데 남을 안 괴롭히는 일벌레였다. 일 벌레 중에는 자기가 이만큼 하고 있으며, 너도 하라고 하지 않나. 노 대통령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랫사람들 배려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셨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지방 출장길이면 하룻밤을 묵지 않고 굳이 늦게라도 서울로 올라온 이야기, 이동 중에 자동차보다 헬기를 더 이용한 사연 등을 전했다. 변 전 실장은 "대통령은 외지에서 잠을 자게 되면, 경호원부터 주변 사람들이 번거로워할까 봐 걱정했다"면서 "헬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이동에 따른 교통통제 등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 함께 일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없었나.

"대통령이 힘들어할 때 나 역시 그랬다. 내색은 잘 하지 않았지만…. 특히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을 때였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몇가지 있었다.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꼈는지, 속으로 끙끙대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 책에선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철저히 굴절되었다고 적었는데.

"노 대통령은 정말 철저하게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고집을 지켰다. 그 원칙에 따라서 일체의 '쇼'를 안 했다. 보수언론에서 '대통령이 너무 가볍다'는 식으로 철저하게 왜곡해서 전달했다."

 

- 청와대 참모진에서 의견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나.

"(참모 희의 때) 그런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했었다. 그랬더니 '다른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그것만은 못 받아들이겠다'고 할 정도였다. 옛날식 대통령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은 어떻게 들었나'라고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그냥 뉴스로 들었다"고 답했다. 다시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물었더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탁자 위의 커피 한 잔을 다 비우면서, "그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았다"고 전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라고 되물었다. 그는 단지 추측이라고 했다.

 

"제 개인적으로는요. 아마 대통령께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주변사람들의 희생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옆에서 쭉 지켜보니까, 자신의 어려움은 굉장히 강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자신 주변사람이나 아랫사람의 어려움은 못 견뎌하더군요. 책임은 항상 혼자 다 지려고 했던 분이니까…."

 

(두 번째 인터뷰- '노무현 경제에 대한 오해' 계속됩니다.)


태그:#변양균, #신정아,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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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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