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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벌금형 판결에 대해 검찰은 "봐주기 판결" "판사만 믿는 화성인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현직 판사가 "(검찰이) 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법원을 마음대로 농락한다면 사법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김형연 판사는 25일 법원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다시 법관독립위원회를 떠올리며-검찰 유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사법부 전체가 검찰의 부당한 공격에 대하여 단호히 맞서야 한다"면서 재판의 독립을 위해 법관독립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일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유죄를 인정, 벌금형(3천만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즉각 "이해할 수 없는 판결" "편향적이고 상식에 반하는 판결" "화성인 판결" 등의 표현을 써가며 법원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검찰, 대한민국은 당신들만 책임질 수 있어?"

 

김 판사는 곽 교육감 판결 관련해 언론보도로 드러난 검찰의 반응에 대해 "검찰의 법원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이라고 규정하며 이와 함께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 MBC 'PD수첩' 무죄판결 등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가 한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

 

2010년 1월, MBC 'PD수첩' 무죄판결이 나오자 이례적으로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 같다"며 "나라를 뒤흔든 큰 사태의 계기가 된 중요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검찰총장 이하 여러 고위급 검찰 관계자가 보이고 있는 위와 같은 정도의 언행이라면 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멸시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담당 재판부에 대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면서 "오로지 눈앞의 사건 결과에만 급급해 담당 재판부에 인신공격하는 악성 민원인의 모습과 이들의 모습이 다를 게 무엇일까"라고 되물었다.

 

김판사는 "법원은 1심은 물론 3심까지 줄곧 무죄를 받은 사건의 검사에 대하여 '기소를 터무니없이 하는 바람에 무고한 국민이 고초를 겪었으므로 합당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검찰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그 이유는 "기소권한은 검찰에게 있고 책임도 검찰 스스로 질 것이며, 무엇보다 사법제도 외에서의 불필요한 행동은 사법질서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어떤 국가기관도 자신이 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법원을 폄하하고 조롱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면서 "만일 다른 국가기관도 검찰처럼 함부로 법원의 판결을 공격하고 멸시한다면, 사법부의 재판을 통하여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리는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오직 검찰만이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는 독특한 행동양식을 갖게 된 데 대해 "▲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 있는 국가기관은 오직 그들(검찰)뿐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 그래서 수사와 기소를 넘어서 재판까지 하고 싶은 건지 ▲ 그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법원마저도 조롱해도 될 만한 권력이 그들에게 있다고 믿는 건지 ▲ 아니면 그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받아 적어 보도하는 언론의 힘을 믿는 걸까"라고 검찰을 향해 반문했다.

 

그는 이어 "언론의 힘을 이용하여 2심과 3심 재판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속셈인지 그것도 아니면 여론몰이라도 하여야만 자신들의 지위를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저로서는 상상만 할 뿐 감히 쉽게 알 수 없다"고 에둘러 검찰을 비판했다.

 

김 판사는 형사재판절차에서 법원과 검찰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개된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이 자유롭게 공방을 벌이고, 그 공방에 따라 법원은 증거능력 있는 증거에 의해서만 심증을 형성하고, 형성된 심증이 공소사실에 관한 합리적 의심을 남기지 않는 정도에 이를 때 비로소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것이 형사재판절차입니다.

 

따라서 형사재판절차에서 검찰은 피고인을 상대방으로 하여 법적 공방을 벌여 법원을 설득해야 합니다. 검찰이 공방을 벌일 상대방은 피고인이고, 법원은 검찰이 훈육할 상대가 아니며 공격할 상대도 아닌 설득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점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법원을 마음대로 농락한다면 사법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면서 "이런 상황, 작은 공안이 큰 공안을 해치고 있는 상황을 가리켜 '공안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해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법원은 검찰이 훈육할 상대 아닌 설득의 대상일 뿐"

 

그는 이어 "양승태 대법원장님은 올해 시무식에서, 재판과 법관에 대한 비판이 그 도를 넘어 저급하고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무차별적인 공격의 양상을 띠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근거 없이 비난하는 등의 행태는 민주주의를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서 재판의 독립을 수호한다는 굳은 각오로 이에 단호히 맞서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면서 "대법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재판의 독립을 수호한다는 굳은 각오로 사법부 전체가 검찰의 부당한 공격에 대하여 단호히 맞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 및 법관에 대한 내부 또는 외부의 부당한 간섭이나 공격이 있을 경우, 법관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거의 없고, 간혹 법관 개인이 직접 대응하려 할 경우 그 심리적 부담감은 매우 무겁다"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대안으로 법관독립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법치국가라는 헌법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기초가치가 법관독립·재판독립이고, 이와 같은 기초가치를 실제적이고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가 '법관독립위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판사는 끝으로 "재판과 법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정치권이나 검찰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재판당사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늘어나고 있는 이때, 대법원장은 '법관독립위원회'와 같은 재판 독립 수호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시어 재판의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글을 올린 배경에 대해 김 판사는 기자에게 "지금 법원은 검찰과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격당하고, 매도당하고 있으며 그 수위가 매우 높아지면서 재판의 권위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면서 "재판의 권위가 사라지게 되면, 이 사회의 분쟁은 제도에 의한 해결이 어려워지고 힘의 논리에 의한 해결만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혼란으로 가득찬 나라가 될 것"이라며 "이 나라의 사법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 초석이 재판독립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판사는 2009년 촛불재판 파동(신영철 대법관이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배당 몰아주기와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사건 진행에 관여하려 한 행위로 촉발된 사건) 당시에도 사실상 재판압력을 행사한 신 대법관의 '용퇴'와 함께 법관독립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바 있다.


태그:#곽노현, #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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