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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기세다. 임진년 용의 해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많은 행운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차이나타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기세다. 임진년 용의 해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많은 행운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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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명소인 차이나타운의 설날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기자가 둘러본 차이나타운의 거리는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한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혹 중국음식점으로 손님을 모시려는 고함소리만이 여기가 차이나타운임을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인천역 앞에 보이는 패루.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정교한 중국식 전통 대문이다.
▲ 차이나타운 인천역 앞에 보이는 패루.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정교한 중국식 전통 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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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에서 내리면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에 패루(중화가)가 보입니다. 이 패루는 차이나타운의 상징적인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패루는 마을 입구나 대로를 가로질러 세운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 대문이라고 합니다. 이 패루를 지나면 양쪽 길에 붉은 색의 가로등이 차이나타운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번화가인 중구 북성동(차이나타운 2가) 일대는 혹시 어떤 모습일까. 간혹 관광객이 오고가지만 여전히 조용합니다. 명동과 같은 이 골목에는 길 양편으로 짜장면 집을 미롯해 추석에 먹는 다는 월명과 공갈빵, 중국 차, 인형,  도수 높은 배갈 종류의 술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배갈은 40도를 넘습니다. 몸에 좋은 십전대보탕 술도 있습니다.

가장 번화한 차이나타운의 2길, 설날을 앞두고 아직은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차이나타운 가장 번화한 차이나타운의 2길, 설날을 앞두고 아직은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김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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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떡만두국이 설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중국도  만두나 빵이 설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하니 설과 춘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두는 2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화덕에 굽는 구운만두와 중국정통수제비만두라고 합니다. 화교인 유모(57)사장은 한곳에서 2대째 중국정통수제비만두만을 만들고 있는데 설날은 바쁘다고 합니다.  

대만이 고향이라는 아주머니는 설날이 오히려 불편한 듯 보였습니다. 돌구슬로 팔지를 만들고 있는 아주머니는 대만에서 온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은 모두가  서툰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서툰말로 '행운의 팔찌를 사세요. 하나 이천원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습니다. 금년은 장사가 되지 않아 직접 실에 돌구슬을 꿰어 팔기 때문에 적자는 겨우 면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은 절대 사절이라며 팔을 젓습니다. 

꿀타래를 만드는 곳에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꿀타래를 만드는 모양을 보여 주겠다며 최모(23)씨는 꿀과 엿을 타서 만든 둥근 모양의 덩어리를 가루에 몇번 섞어 보이더니 어느새 1만 6천가락의 타래를 거뜬하게 만들어 보여 주었습니다. 명주 실같은 오리를 보며 관광객들은 감탄, 기자가 원조가 이태원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곳에서 졸업하고 이곳에 왔다며 자기들이 원조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공화춘 옛 건물이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공사중이다.
▲ 차이나타운 공화춘 옛 건물이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공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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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 건립해 사용한 주상복합건축물이다. 중국 요릿집과 상가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 차이나타운 1925년에 건립해 사용한 주상복합건축물이다. 중국 요릿집과 상가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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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역사 깊은 건물이 보입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공사중이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공화춘의 전신은 청국 조계지의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로 있던 산동회관으로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개업, 이듬해 중화한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일제강점기에는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했다는 경인지역의 최고의 요리집이었다고 합니다.

자장면은 100년전 인천이 개항하고 중국 텐진, 상하이 등지와 교역이 증가하자 싼 임금의 부두노무자로 산동선 사람들이 많이 건너왔다고 합니다. 이들이 건너올 때에 고향에서 가지고 온 춘장으로 볶은 밥을 만들어 국수에 얹어 먹은 것이 짜장면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공화춘이 한국 전쟁 이후 짜장면 보급에 앞장섰다고 하니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짜장면이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 옆에는 1925년 중국인들이 건립해 사용하고 있는 주상복합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화교인이 중국요릿집, 상가 주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와조의 2층 벽돌조 건물로 각각의 공간이 연속으로 있고 중국특유의 원색을 사용해 화려한 색채를 강조, 박공형 지붕과  목조 청풍 차양 개방형 발코니가 특징이라고 합니다.

삼국지 속의 이야기로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의 무용과 지모를 소개하는 150미터 길이의 대형벽화다.
▲ 차이나타운 삼국지 속의 이야기로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의 무용과 지모를 소개하는 150미터 길이의 대형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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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차이나타운에는 삼국지 벽화거리가 있습니다. 소설 속의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등의 무용과 지모를 소개하는 150미터 길이의 대형벽화입니다.  차이나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후한말의 역사적 사실을 고사성어와 그림을 보면서 과거로의 여행을 해보는 것도 차이나타운을 찾는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금년 차이나타운의 설은 이렇다할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화교들은  임진년 용의 해를 맞아 더 많은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태그:#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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