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 학교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문제일까.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왕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사회적 약자인 그들을 보살피고 배려하려는 노력 대신 경제 논리, 개발 논리 앞세워서 생존권조차 위협하고 폭력적 진압도 서슴지 않는 현상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학교폭력'도 사회 현상의 일부이다.
23년 전 탄광 지역 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겪었던 일들을 돌아보면 요즘 '학교폭력'을 둘러싼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중심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대책을 급조하고 있는 교과부의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가출, 폭행, 폭행치사, 소년원 수감, 교사에 대한 반항 등등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들과 잦은 마찰을 보였던 어느 교사가 교회에서 예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골목에서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을 뻔했던 일, 폭행치사죄로 수감된 반 아이 면회 가서 쇠창살 사이에 두고 대화했던 일, 끝도 없이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 앞에서 "너희들 잘못 지도해서 미안하다"며 스스로 종아리를 때렸던 선배 교사….
힘겨운 아이들의 삶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면 아이들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어 많이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 교사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대응했다. 몽둥이에 감정을 실어 때리기도 하고, 화단 옆에 불러 앉혀놓고 차분차분 얘기도 하고, 싫다고 꽁무니 빼는 아이 억지로 끌고 가정 방문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진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부모를 보살피며 새벽에 신문 배달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학교 다니던 아이, 탄광에서 얻은 진폐증으로 사람 구실도 못하고 누워있는 아버지와 생활하던 아이, 탄광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집을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 아이들의 삶에 눈을 뜨면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좀 더 많이 했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을 나누어야<자퇴상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에서는 학교 부적응 아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성적 문제로 고민하다 자퇴한 아이, 무관심 속에 서성이다 자퇴한 아이, 야단맞을 게 두려워 자퇴를 생각한 아이, 부모의 혐오감이 그대로 투사되어 생활하는 아이, 학교의 강제 규정에 상처 입은 아이, 집단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는 아이….
책을 읽으며 23년 전 탄광지역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아이, 끝내 붙잡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보냈던 아이, 어렵게 정말 어렵게 졸업했던 아이들, 식당에서 일한 돈 모아 조그만 선물 사들고 왔던 녀석, 군대 간다고 찾아왔던 녀석, 결혼한다고 청첩장 보냈던 녀석 …. 모두 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긍정의 눈으로 보면 문제행동은 있어도 진정한 문제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는 닫힌 마음의 문부터 열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나면 상담은 저절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것을 고칠 생각이 없고 노력할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다. (책 속에서)일 저지른 아이들 세워놓고 야단치고 훈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등교 정지 시키고 다른 곳으로 전학 보내는 것도, 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 기록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와 갈등을 이해하고, 닫힌 아이들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나눌 때에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학교 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더 머물고 싶은 학교"를 열어가고 싶다, 학생들이 불가피하게 학교를 떠나야 한다면 절망감 대신 격려와 희망의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글이 뭉클 가슴을 울려주는 계절이다.
덧붙이는 글 | 신규진/자퇴상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우리교육/2009.1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