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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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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제주도 광치기해변의 바다는 핏빛이었다고 한다. 붉은 해가 바다를 물들인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폭도로 몰려 죽은 이들의 핏물이 바다를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바다는 지금 해돋이를 맞이하는 관광명소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제, 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움에 취해 1948년의 그 핏빛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역사, 잊혀진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아파도 기억해야 하고, 빚진 심정으로 속죄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의 하늘
▲ 붉은하늘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의 하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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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09년 1월 20일, 용산망루에 불이 났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용산은 그때와 다를바 없는 진행형이다. 먼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태동한 후, 이명박 정권이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영어의 몸이 되어 지금도 철장에 갇혀 있지만, 이명박 정권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산은 여기저기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붉은 빛, 붉은 빛을 보면 속죄하지 못한 마음 때문인지 용산의 망루가 떠오른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붉은 빛, 어떤 광기 어린 이들이 그들을 죽였을까? 누가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을 반역자라고 처단했을까?

차라리,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거나 악마의 탈을 쓴 이였다면 최책감을 덜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나와 다르지 않는 사람들이 방관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위해 혹은 세뇌당해 학살의 주체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해돋이의 시간, 물빠진 광치기 해변을 달리고 있는 견공들
▲ 광치기 해변의 견공들 해돋이의 시간, 물빠진 광치기 해변을 달리고 있는 견공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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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지자 바위가 드러났다. 그 위를 견공이 달리고 았다. 이렇게 숨겨진 바다가 드러나듯, 숨겨진 역사도 드러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모든 이들이 생생하게 역사를 보고, 다시 물이 들어와 바다에 잠겨도 가늠할 수 있는 그런 투명한 역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 멀지않은 역사도 꽁꽁 감추어져 있는데, 목격자와 가해자가 얼마 남지않은 수치스러운 역사들은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먹먹해 진다. 반나치 투쟁을 벌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가까스로 살아난 프리모 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우도도항선에서 바라본 한라산 백록담에는 흰눈이 쌓여있다.
▲ 갈매기와 제주바다 우도도항선에서 바라본 한라산 백록담에는 흰눈이 쌓여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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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을 품지 않는 기계적인 인간들, 그들은 내 부모일 수도 있고,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

바다에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새우깡 하나 던져주지 않건만, 갈매기는 도항선을 따라 줄기차게 날아올랐다. 저렇게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듯, 우리네 영혼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어떤 족쇄에 묶여 평생 편협한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제주의 검은 화산석에 파도가 흰눈처럼 내린다.
▲ 제주의 돌과 파도 제주의 검은 화산석에 파도가 흰눈처럼 내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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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처럼 깨어지면 좋겠다. 자작자작 깨어지는 순간들, 그것을 이어보면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풍광으로 남는다.

깨어짐의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서 생명의 바다가 되게 하는 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아니, 이젠 만나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아주 작은 빚이라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 저 파도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반복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을 서서히 죽여가는 그런 끔찍한 반복 말이다. 제주바다, 그날은 마냥 슬프게 보였다. 속죄하지 못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어서.


태그:#광치기해변, #제주4.3항쟁,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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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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