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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8일 일요일 12시께였습니다. 울산 매암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직속 엔진공장안 한 공정에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그날은 일요일 특근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출근하였고 점심시간이라 공장 안엔 점심 먹으러 가는 현장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 점심을 먹으러 가던 한 노동자가 불길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불에 타고 있어 급히 소화기로 불길을 잡고서 119와 노동조합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119 구급차에 의해 동강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상 전문병원이 아니어서 응급조치만 하고 부산 화상전문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 전화하여 1월 8일 일어난 분신사건에 대해 알아보니 권오일 대외협력실장이 그날 경위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노조 열사회 홈페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분신한 노동자는 신아무개라는 현대자동차 노조 정규직 조합원이었습니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정규직이 왜 분신까지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열사회 홈페이지엔 신씨가 왜 분신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있었습니다. 열사회는 현장에 배포된 벽보를 통해 이번 분신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측의 현장탄압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 공장에 걸쳐 자행되고 있다. 특히 생산라인의 경우 생산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사측의 현장통제가 더욱 극심해 조합원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신아무개 동지가 근무하는 엔진 5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관리자와의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건 전날인 1월 7일(토)에도 작업장 바로 옆 간이휴게실에서 담당조장과 작업관련 대화를 하는 와중에 부서장 OOO는 "작업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무단이탈 처리하겠다"라는 협박을 했다."

 

지난해 6월 타임오프 매뉴얼 문제로 회사의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자 현대기아차 아산공장에서 근무하던 박아무개씨가 세상과 등졌습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현장통제 강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분신사태로 지난 9일엔 잠시 작업중단까지 갔으나, 노사가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곧 정상조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족과의 협의가 아직 남은 상태라 장례는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17일 대의원 대회를 열고 신아무개씨를 노동열사로 추서하고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5시 30분부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신씨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강성 노조로 평가받는 현대자동차에서 또다시 한 노동자가 분신이라는 극단의 수단을 선택한 것입니다. 의사진단 결과 신씨는 80도라는 전신화상을 입었고, 수술을 하였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저는 비정규직이고 숨진 노동자는 정규직이지만 생명을 내던지며 억울함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숙연함이 저를 추모제 장소로 이끌었습니다.

 

 

"요 몇년 동안 현대차는 무분규로 명성을 얻었지만 현장에선 말도 못할 감시와 현장통제가 있어 왔습니다. 그런 극심한 노동탄압이 또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울산의 하늘은 벌써 3일째 비가 내리다 말다 했습니다. 추모제가 열리던 날도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우산을 쓰거나 1회용 비옷을 입고서 추모제에 참여했습니다.

 

"신아무개 조합원은 68년 경북 포항 출신으로 91년 소형엔진부에 입사하였습니다. 2003년 소의원 의장을 맡으면서 노조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신 조합원은 부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우리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항상 우리 곁에서 희망을 노래하던 그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현대차의 살벌한 현장통제와 감시에 항거하며 분신으로 맞섰던 것입니다. 사건 발생 전날 저녁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에겐 두 아이가 있습니다. 신 조합원은 두 자녀를 끔찍히도 사랑했다 합니다. 사랑하는 처와 자식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날 추모제는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숙연하게 진행됐습니다. 경과보고도 하고 추도사도 하면서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말없이 진행하는 몸짓 공연도 있었습니다. 울산지역 문화운동을 하는 분들이 여럿 나와서 공연을 했습니다.

 

'생산제일주의'란 푯말이 보였습니다. 노동자는 생산에 여념이 없다가 모두 쓰러집니다. 사다리를 놓고 더 높은 곳으로 가라고 강요하는 기업주, 거기서 신음하는 노동자. 생산제일주의 때문에 노동자가 기업주의 돈벌이에 희생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말이 없는 몸짓 공연이었지만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가 나와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잘못해서 현장이 탄압받고 또 한 조합원을 이렇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신 조합원은 처음에 70도의 전신 화상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수술 들어가고 80도 전신 화상이라고 의사가 다시 정정 진단을 내렸습니다. 회생이 불가하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고 했습니다. 이번 일로 회사는 경영기획팀을 해체하고 담당 간부를 경질했습니다. 8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추모제 일정이 끝나고 헌화 시간 후 행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진행된 추모제는 비가 오는 가운데 그렇게 조촐하게 끝이 났습니다. 현대차 정문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경비실 안 불은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추모제가 끝난 후 저는 왠지 도마뱀 꼬리가 생각 났습니다. 도마뱀은 꼬리를 잡으면 꼬리가 끊어 집니다. 도마뱀은 그렇게 잡히면 스스로 꼬리를 끊어낸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도마뱀 꼬리는 다시 자라 납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분신사태로 노무관리 부서로 악명 높았던 경영기획팀을 해체 했다고 합니다. 또한, 경영기획팀을 운영하던 간부도 경질시켰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론 공장을 멈추게 했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를 고소고발했다고 합니다. 담당 부서를 해체 한다고 지금까지 진행해 오던 노무관리 방식도 해체 되었을까요? 또다른 부서가 그 노무관리를 그대로 받아 진행 시킬 것입니다. 마치 잘린 도마뱀 꼬리가 다시 자라 나듯이. 


태그:#현대자동차, #분신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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