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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 10일 오후 대구시 남구에 위치한 자신의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이명박 정부에서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성과를 낸 것도 있지만 좀 미흡했던 것도 있었다며 이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으로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이다"며 설명했다. 박 전 차관 뒤편으로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지식경제부 2차관에 임명되며 찍은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 10일 오후 대구시 남구에 위치한 자신의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이명박 정부에서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성과를 낸 것도 있지만 좀 미흡했던 것도 있었다며 이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으로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이다"며 설명했다. 박 전 차관 뒤편으로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지식경제부 2차관에 임명되며 찍은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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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정부내 역할이 없자 나를 공격했다?"

- 정두언 의원은 박 전 차관을 "국정농단세력"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왜 그렇게 박 차관을 계속 공격했다고 생각하나?
"정 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부터 대선까지 오랫동안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거기에 합당한 MB정부내 역할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나를 공격하게 된 계기가 아니겠나?"

- 그런데 '정부 내 역할'이 실제 없었나?
"정두언 의원 사람들도 청와대든 공기업이든 많이 들어간 걸로 안다. 그 숫자는 모르겠다. VIP(대통령)와 여러 차례 독대했다고 전해들었다."

- 정두언 의원과 박 전 차관의 갈등에는 이태규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등장하는데.
"지금 KT전무로 가 있다. 봉급이 얼마나 센지 아나?"

- 정무라인에 기용해야 할 사람을 연설기록비서관으로 앉힌 게 박 전 차관 아닌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정무와 정무수석이나 대통령실장이 생각하는 정무가 달랐던 것 같다. 대통령의 모든 대국민 메시지가 연설을 통해 나간다. 그래서 연설기록비서관이 중요하다. 그래서 연설기록비서관을 시킨 것이다. 그런데 글이란 대통령이 갖고 있는 철학과 맞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 실제 이태규 비서관이 작성한 연설문에 많이 삭제되거나 안 나간 걸로 아는데.
"류우익 실장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할 때부터 중요한 연설문을 많이 써왔다. 연설기록비서관이 있긴 하지만 류 실장이 대통령의 워딩(단어구사)를 제일 잘 안다. 본인이 올린 것과 다를 수 있다. 자기가 올린 대로 될 것 같으면…. 그런데 KT전무로 간 뒤로 청와대에서 많이 그를 부러워했다. 억대 연봉에다 법인카드한도까지 포함하면 엄청나다."

-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상득계-이재오계-정두언쪽' 등으로 나뉘어 권력내부 갈등이 심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당시 총선 국면이 있었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총선 국면이 닥친 것이다. 인수위가 (2007년) 12월 21일부터 가동됐는데 (2008년) 1월부터 공천에 들어갔다. 큰 정치적 시점을 두고 정무쪽에서 판단을 잘못됐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됐으니까 대통령 당선의 후광으로 총선은 아주 쉽게 갈 거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총선이라는 판은 대선과는 전혀 다르다. 대선은 전국이 단일이슈, 단일인물로 구성된 단일판이다. 하지만 총선은 완전히 각각 싸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천을 두고 친이 내부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서로 어디 가겠다고 싸웠다.  게다가 친박계와의 갈등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사조직에서 일했던 유력인사들이 끼어들었다. 자기공천 받으려고 아군, 적군이 따로 없이 막 싸우는 것이다. 그 부분와 관련된 정무적 판단이 굉장히 부족했다. 그게 갈등의 원인이었다."

- 집권 초기부터 불거진 '이상득-이재오-정두언' 간의 분열과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하나?
"대선과정에 기여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전방위로 몰려들었다. 각 세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도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면서 균열이 시작됐던 것이다. 대선 국면 바로 뒤어 이어질 총선 국면의 관리방안에 관한 구상이 없었던 것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통치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래서 입법부 구성에는 신경을 못썼다. 공천과정은 당에 많이 위임된 상황이었다. 이방호 사무총장 등 당 공식 라인에 있는 몇몇 분들에게 위임됐다. 강재섭 대표라든지 이재오, 정두언 등에게 많이 위임돼 있었다. 공천 중반 이후에는 몇몇 분들의 개인적인 욕심이 좀 개입됐다."

- 그 몇몇 분들은 누구인가?
"하하.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안된다.".

- 이재오 의원 등인가?
"공식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이 좀 그랬다. 이방호 사무총장 등등…. 나도 옆에서 지켜보니까 공천심사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외곽에서는 안 통한다. 공천심사위에서 직접 인물들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공천 초기에는 바깥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공천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중반 이후에는 보니까 공천심사위에 들어간 사람들의 입김이 제일 셌다."

"한 정권을 만든 사람은 정권의 처음과 끝 같이 해야"

- 정두언 의원과 화해할 생각은 없나? 못 건너올 다리를 건넜나?
"아니다. 저는 국회 갈 때마나 사무실에 명함도 놓고 간다. 그리고 사석에서 좀 봤다. 나는 정 의원에게 섭섭한 게 없다. 손바닥TV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옆에 정 의원이 있다'고 하기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했는데 전화를 안 받겠다고 하더라."

- 아직도 갈등의 앙금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응답없는 메아리인 셈이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진실이 밝혀져야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 '사랑방모임'을 통해서 두 사람의 화해를 주선했다고 하던데. 
"몇몇 분들이 노력했다. 신재민 전 차관도 원래 정 의원과 되게 친했다. 나중에 차관되면서 나하고 친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화해) 역할을 했다. 박형준 전 정무수석이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그렇게 노력했다."

- 그래도 화해를 하지 못했다.
"정 의원쪽에서 만남 자체를 많이 거부했다. 부끄럽다. 같이 사선을 넘었던 사람으로서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있다는 것 자체가 대통령이나 국민들에게 부끄럽다."

- 그런데 정두언 의원이 박 전 차관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MB정부로 비판대상을 넓혔다.
"답답한 측면이 있다. 내가 정 의원 처지라면 그런 방식으로 안한다. 사람 성격 차이겠지만."

- 대통령을 공격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편에다 총 쏘는 것인데.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은 중간에 일을 하다가 잘못됐든 아니면 더 배려를 못받았든 간에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정치적 짐이다. 그것에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그러한 국민들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한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 정권의 처음과 끝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권에서 못했던 것, 잘못했던 것, 아쉬웠던 것들을 가슴에 새겨서 자기정치에서 그것들을 해결해야 할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시작하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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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서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성과를 낸 것도 있지만 좀 미흡했던 것도 있다. 저는 우리가 못했던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미흡하고 못했던 것)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게 이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역할이다. 한 정권의 임무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 과제이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군가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이다."

-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과 그의 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로도 지목됐다. 당사자와 무관하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 기억에 이런 게 있다. 박형준 전 수석과 정두언 의원, 그리고 한분이 있는데 그분들의 사모님이 화랑을 한다. (정두언 의원과 한분은) 인사동에 화랑을 가지고 있었고, 박 전 수석의 경우에는 부산에 있었다. 그런데 정부 출범 초기에 강남의 한 빌딩에 화랑을 같이 열었다. 그것과 관련해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났다.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정권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이 나면 안 좋다. 그런 차원에서 현장 확인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부분을 (민간인 사찰로)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어느 정권에서 (그렇게 안 좋은 소문이 나면) 비리 사전예방 차원에서 확인을 한다. 사찰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의 경우에 조선이나 항공업이 어렵다고 하면 청와대가 직접 나선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나. 그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부에서도 있어왔고, 그런 수준을 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국민은행을 공기업으로 생각하고 김종익씨 조사"

- 국무총리실로부터 사찰을 당한 김종익씨는 민간인이지 않나?
"그때도 해명했는데 나는 2008년 6월 9일 청와대를 떠났다. 그리고 야인생활을 8개월 했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긴 것은 2008년 8월이다. 나는 그때 마음을 달래느라 전국으로 다닐 때다. 그때는 내가 공무원에게 어쩌다 전화하면 이들이 내 전화를 꺼릴 정도였다. 그 팀이 구성될 때도 야인이었고, 김종익씨 일이 일어났을 때도 야인이었다. 그런데 내가 했다고 한다. (2009년 초기에) 내가 국무차장으로 복귀했는데 그 팀이 국무차장 산하로 있더라. 일부에서는 그걸 가져야 일을 할 수 있다고 하기에 '뭔 소리냐, 그런 거 싫다'고 해서 사무처장 산하로 편재시켰다.

국무총리실에 차관급이 두 명 있는데 국무차장과 사무차장이다. 국무차장은 국정 정챌분야를 조율, 조정하고, 사무차장은 언론홍보, 총리보좌 등을 하는 자리다. 그러니까 정무적인 일을 사무차장이 한다. 그런 업무성격상 사무차장 산하로 돌렸다."

- 그럼에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영준 사조직'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한 명이라도 내가 넣은 사람이 있나? 전혀 없다."

-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박 전 차관의 인맥이고 하던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영포라인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내 고향이 포항이라고 발표했다. 내 고향은 엄연히 경북 칠곡이다. 이인규는 노동부에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국회에서 이상득 의원 모실 때 노동부 소속으로 국회를 출입하던 모습을 봤다. 아마 포항고를 나왔을 것이다. 그 이후로 만날 일도 없었다."

-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체계가 이인규→이영호(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박영준→대통령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이영호 비서관이랑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노사분쟁 조정, 노사갈등 대책협의와 관련된 총리실 T/F팀에 이영호 비서관이 들어왔다. 노사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회의한 적이 있다. 그런 업무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사례가 몇 번 있다. 정운찬 총리를 모실 때 정 총리가 데리고온 고위직 공무원이 공직윤리지원관실 현장점검에서 걸렸다. 내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관리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나는 모른다'고 했다. 과천청사를 야간에 불시점검하는데 모 경제부처쪽에서 문제된 게 있었다. 그래서 그 부처의 차관이 나한테 전화를 해왔다. 그래서 황당해서 '내가 처리하는 것 아니다, 나는 잘 모른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 그런 사례들은 결국 당시 공직사회에서 박 전 차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관리한다는 얘기가 퍼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형식상 공무원이 담당하는 것이지만 역대 정부를 보면 대통령 측근들이 그런 업무를 맡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 김종익씨는 민간인인데... 총리실에서 그를 조사하는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완전히 법이탈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 사건이 터진 뒤에 물어보니까 공무원들이 국민은행을 공기업으로 알고 있더라. 2008년 8월에 만들어졌는데 멤버들이 베테랑도 아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십 년 지속되어온 조직인데 박재완 수석이 총리실 규모를 줄인다고 날려버렸다. 하지만 공무원 기강확립 때문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 만들면서 새로운 인원들로 채웠는데 그런 부분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보니 국민은행이 공기업인 줄 알고 의심의 여지 없이 조사한 것이다."

"4대 권력기관장은 지역을 잘 안배해야"

-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동향보고서 대통령에게 보도되나?
"대통령실에 가보면 알지만 비서관이 직접 보고하는 경우는 없다. 제1부속실장과 의전비서관 정도를 제외하고."

- 직접 보고했다는 것이 아니고 이영호 비서관을 통해 보고된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다."

- 박 전 차관이 전달하지는 않았나? 
"나는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거의 없다."

- 동향보고서도 박 전 차관이 지시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나는 그런 것에 관여해본 적이 전혀 없다."

- 보고받은 적도 없나?
"이런 것은 있다. 각 파트에서 공직비리관련 투서가 들어온다. 투서하는 사람은 온갖 군데에 다 넣는다. 내 이름 앞으로 온 것도 있어서 이첩한 적이 있다."

-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과도한 권한문제로 인해 정운찬 총리가 박 전 차관(당시 차장)의 용퇴를 이명박 대통령에 건의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것은 정 총리가 인터뷰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외곽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박 차장과) 일을 직접 해보니까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 그런데 왜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공격하는 사람들 있지 않나?"

- 공직에 있을 때 한상률 전 국세청장하고 자주 만났나?
"자주 만난 적은 없다.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 대통령 업무보고에 배석자로 들어간다. 국무회의도 배석하고. 그럴 때 만나 인사한 정도다."

- 따로 만난 적이 없다는 건가? 
"아마 단둘이 만난 적은 없다."

- 그럼 누구랑 함께 외부에서 만난 적은 있나? 
"없다. 내가 국세청장이랑 만날 일이 뭐가 있겠나. 거기는 징세업무하는 곳인데."

-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률 청장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유임됐는데.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국정원장 등을 인사할 때는 지역안배가 필수적이다. 이들 인사는 되게 민감해서 특정지역으로 쏠리면 난리난다. 그런데 한 청장은 충청도다. (4대 권력기관장의) 지역을 안배한 것이다. 어청수(경찰청장), 임채진(검찰총장)도 그랬다."

- 한상률 청장이 유임된 데는 그가 국세청 차장 시절에 작성한 'MB파일'와 관련된 것 아닌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정두언 의원이 그것에 관심이 많았다."

- 그 MB파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MB가 칠순 때 1억2000만원짜리 시계 받았다면?"

- 한 청장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와 자살로 이어졌는데.
"그것은 아니다. 검찰수사가 시작된 계기를 보라. 그때 상황을 확인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나만 느낀 게 아니고 청와대 근무했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느꼈다."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리 예우하더라도 부정과 비리가 나오거나 법률위반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나?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그랬고."

'왕의 남자'답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손목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왕의 남자'답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손목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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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을 적용하지 않았나?
"그때 수사를 다 해봤어야 진실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수사가 중단된 상태에 우리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때 영부인한테 650만 달러인가가 전달됐다. 그게 어마어마한 일인데 수사가 중단돼 진실은 역사에 파묻혔다.  지금 퇴임후에 가야될 관저가지고 저렇게 문제가 되고 하는데, 청와대 안에서 65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한 사건이다. 또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는 뭔가?

- 영부인이 청와대에서 돈을 받은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1억 원짜리 시계는 회갑 선물 아니었나?
"대통령이 현직에 있으면서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를 받을 수 있다면, 일반 공무원들도 회갑 때 120만 원짜리 시계를 받아도 되나? 이명박 대통령이 칠순됐다고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이중잣대는 안된다.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위해서나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나 제대로 수사돼서 죄인지 아닌지가 가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갑게 중간에 그런 불행한 일이 생겨 버렸다."

- 그런데 영부인이 받은 것을 남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가?
"조사해봐야 진실을 알지. 고위공직자의 마누라가 돈 받은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면…."

- 그 부분과 관련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명확한 증거도 없이 서둘러 소환조사한 것 아닌가? 
"내 경우 참고인인데도 피의자처럼 정문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게 뭔가?"

- 그럼 박배수 보좌관(이상득 의원)의 구속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잘못 있으면 구속하는 게 당연하다."

- 박 보좌관과는 몇 년간 같이 근무하기도 했는데 왜 의원실 직원들 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세탁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뻔하게 드러나는 일인데."

-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검찰로비와 관련 이창세 검사장에게 전화한 적 없나?
"없다. 이 검사장은 내 고등학교 한해 후배다. 이창세 검사장이나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은 학교를 빛낸 인물이다. 내가 평준화 2기고, 그들은 평준화 3기다. 이창세 검사장은 전국연합고사에서 차석인가 했고, 서울대 법대를 갔다. 우리 때는 서울로 진학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범서울로 동문회를 했는데 선배들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창세 검사장은 거의 안 나왔다. 그래서 교류가 거의 없었다. 1년에 두세 번 전화하는 선후배 사이다."

- 신재민 전 차관이 이국철 회장과 관련된 청탁을 하지 않았나?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주 열린 차관회의에서 보기도 했는데 이국철 회장과 관련된 청탁을 받은 적은 없다."

- 이국철 회장과 관련, 이창세 검사장 등 검찰 고위간부와 연락한 사실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와 관련해서 지난번 명예훼손 검찰조사 때 묻더라."

"김대중 정부 때 대북휴민트 작살났다"

- 이명박 대통령 취임할 때 북한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취임사절단으로 보내겠다는 메시지가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글쎄. 그때 보면 소위 대북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했다. 그런데 믿을 수가 없잖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대북관계에서 이 라인이 있다, 저 라인이 있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인수위 시절 그걸 확인할 방법도 없고."

- 리호남 북한 참사가 메신저를 앞세워서 박 전 차관에게 접근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런 사실 없다. 리호남이란 이름을 처음 듣는다."

- 월간 <신동아>를 보면 리호남이 보낸 사람이 인수위 시절 북한 동향이나 평양발 메시지를 박 전 차관에게 전달했는데, 거기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축하사절단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대북관계에서 어떤 사람도 접족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

- 최근에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이 반엠비라는 박 전 차관의 모략으로 물러나면서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 라인이 붕괴됐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이 휴민트(인적 정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알고 있는 거다. 휴민트는 대북한 인적 정보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완전히 작살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흑금성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 라인이 노출돼 그 당시 중국쪽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던 휴민트라인과 북한내 라인들이 아주 필사적으로 탈출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많이 체포되면서 완전히 붕괴됐다고 한다. 휴민트 라인을 하나 형성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아직도 복원이 안됐을 것이다. 이제 4년 밖에 안됐는데. 그렇지 않아도 복원하는 데 엄청 힘들다고 하더라."

- 대북 휴민트 붕괴는 이전 정부 책임이다? 
"그렇다.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다. 그건 국정원에서 상식으로 통하더라. 수백명이 쫓겨났다고."

- MB정부에서 대북정보수집을 수행하는 라인 자체를 없앤 것 아닌가?
"전혀 아니다. 우리는 복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는 걸로 안다."

- MB정부 들어서 대북관계도 안 좋은데 굳이 복원할 필요가 있었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특히 적대적 관계가 남아 있는 국가와 관련해 휴민트를 당연히 만들어야 한다. 국가안보는 한 번 잘못되면 끝이다. 경제는 망가져도 다시 복원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망가지면 끝이다. 그건 국가위기 관리 차원에서 복원해야 한다. 세계에서 휴민트 조직을 안 가지고 있는 나라 있나?"

- MB정부 시절에 국정원 3차장실 전체가 교체되지 않았나?
"나는 국정원의 정무직 라인 사람 정도만 임명되는 걸 봤지 그 밑으로는 알 수 없다. 조직이 비밀스러우니까."

"국민은 '올마이티대통령'을 원하지만..."

- MB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공했다고 보나?
"남북관계에는 흐름이 있다. 상당히 적대적이었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유화적인 국면으로 갔다. 지난 대선 때 국민 여론을 보면 지난 10년간 정부의 대북정책에 국민들이 굉장히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에 대응한 MB정부의 대북정책이 나왔다. 그것은 국민과 한 약속이었고, 남북관계에서 최소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국민의 요구였다. MB정부가 특별히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상당히 적대적이었던 것 같은데.
"YS 때보다 적대적이었겠나? YS 때 적대적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다."

- 북에서 내는 성명서나 담화문, 사설 등을 보면 적대적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나?
"북한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히 적대적이진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월드컵 경기를 하고 있는데 서해대전을 일으켜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우리가 북한에 우호적이었지만 핵실험 했고, 미사일 실험 했다. 그런 부분과 관련해 국민들이 더 이상 일방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반도 전체를 공멸시킬 핵문제에서만큼은 비핵화로 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최소한 요구조건이었다.

한반도가 핵지대로 있는 한 주변 강대국이 통일을 용인할 리 없다고 본 거다. 7000만, 8000만 되는, 핵무기를 가진 통일국가의 등장을 달가워할 주변국가는 없다. 통일을 위해서도 비핵화를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 비핵화 협상에 나서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야 북한에 지원도 하고, 경제적 협력도 강화하겠다는 것이 MB정부의 정책기조다."

- 이번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 이희호씨와 현정은 회장만 조문을 보냈는데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조문단을 보내는 게 좋지 않았겠나?
"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워낙 남북문제를 두고 국민적 의견이 대립되지 않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문단 파견 반대라는) 국민여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번 일은 아쉽지만 현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 정부가 안되면 국회차원의 조문단을 허용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여야간 합의가 안됐잖아. 남북관계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엄연한 대치상태이고, 또 한편으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풀어나가고, 어떤 형태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시대에 따라 경색되기도 유화되기도 한다. MB정부 시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경색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도 답답하지 않겠나?"

- 그러니까 경색국면을 풀어야 하지 않나?
"요즘 류우익 장관이나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그런 의지가 느껴진다."

-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몇 년 간 유일하게 북 최고지도자를 못 만난 남한 지도자로 남게 됐다. 
"그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더 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희생할 부분이 있으면 희생해야 하지 않나? 또 견뎌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견뎌내야 하지 않나?"

- 남쪽도 정상회담 의지가 있었지 않나? 
"항상 있었다."

-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남북관계를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간에 뇌졸중 때문에 지도자 공백기간이 생겼다. 우리는 집권 초기에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한 대통령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올마이티대통령'를 원하는 것 같다. 정권 말기가 되면 부족했던 부분만 부각되고."

"검찰이 권력 주변을 제대로 수사 못한 게 있나?"

- MB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독립성이 많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검찰이 권력 주변을 제대로 수사 못한 게 있나?"

- 했지만 제대로 한 적이 없지 않나?
"글쎄. 구속도 많이 됐지 않나? 다만 수사환경이 옛날보다 많이 어려워진 것 같다. 모든 조서를 검사가 직접 작성하고 강압수사 등을 피하기 위해 영상녹화해야 하고, 항상 변호사 입회할 수 있다. 업무량은 늘어나고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 한명숙, 미네르바, 정연주, 피디수첩 등과 관련된 사건은 1심이나 2심, 심지어 일부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검찰의 자유권 분위기가 확산된 것 같다. 정권 차원에서 개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명숙 사건의 경우 한 전 총리가 전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 피디수첩 사건의 경우 담당 부장검사가 기소할 수 없다고 했는데 수사팀을 교체하면서까지 결국 기소했지 않나?
"법원에서도 피디수첩이 사실관계를 다르게 보도했다고 인정했다. 단지 그게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정말 많은 사회적 파장과 국민적 관심을 일으켰던 부분과 관련해 팩트냐 아니냐를 가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 하지만 담당 부장검사가 기소할 건이 아니라고 했는데 수사팀을 교체한 것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모르겠다. 지금 시대만큼은 대통령을 마구잡이로 비하하고 욕하는 때가 있었나? 나는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이전 정부들보다 언론의 자유가 신장됐다?
"그건 아닌데, 언론자유가 위축됐다는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문재인 비서실장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했는데,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다. 자기가 반대했던 것을 자기가 역으로 당하니까. 결국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선과 양식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나가는 거라고 본다. 정권이 두 번 교체됐지 않나? 그렇게 정권교체되면서 훈련을 하는 거라고 본다."


태그:#박영준, #이명박, #노무현, #정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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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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