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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골의 얼짱 부처님

 

감실부처상의 은은한 미소를 마음에 담은 채, 탑골을 지나 미륵골에 이르렀다. 미륵골 마애여래불과 흔히 '얼짱 부처님'으로 알려진 보리사 석조여래좌상을 뵈러 가는 길이다. 보리사 석조여래좌상은 남산의 석불 중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이는 부처님인 동시에 모습도 수려하다. 체구에 비해 두상이 크게 제작된 감은 있지만, 꼭 다문 입술에, 바람결에 날릴듯한 옷의 주름하며 광배의 화불(化佛)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모습인데,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보면 섬세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광배 뒷면에는 중생의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이 선각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단단한 바위 앞뒷면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려가며 불심을 키웠을 신라인의 불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탑도 사람도... 세월이란 결국 어울림이 아닐까?

 

통일전 주차장에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서출지(書出池)'이다.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조에는 서출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날 신라 소지왕이 행차하는데, 쥐가 와서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라"하였다. 까마귀를 좇아 남산 기슭에 이르니, 연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글을 바쳤다. 글에 이르기를 "뜯어보면 둘이 죽고,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하였다. 둘은 백성이요, 한 사람이 왕이라는 말에 봉투를 열어보니 "거문고 갑(琴匣)을 쏴라"라고 씌어 있었다.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쏘았더니, 내전에서 몰래 정을 통하던 승려와 궁주가 발각되어 죽고 말았다. 이후 노인이 나타났던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 명하였다.

 

서출지를 지나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드디어 칠불암이다. 경주남산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신선암 유희좌상에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칠불암에 도착하니 다들 이 곳에서 숨을 돌리는데, 모두의 시선은 하나같이 눈 앞의 큰 바위로 향해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벽면의 큰 바위에는 석가불과 두 분의 협시보살이, 그 앞의 바위에는 사방불이 새겨져 있어 절로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칠불암 마당에는 지난 흔적을 말해주듯 이런저런 모양의 돌들이 제각기 편한대로 놓여져 있다. 무심코 걸터앉을 뻔한 돌은 어느 부분을 이루었던 것인지, 저마다 다른 그림이 새겨져 있다. 또한 삼층석탑인듯 눈앞에 서 있는 돌탑을 보면 한 눈에 제 짝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모양은 지금대로 어느덧 어울리는 것을 보니, '세월이란 이런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도 오랜 세월 함께 하다보면 저렇게 한 몸처럼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이 당장 걸어 나오실지도 몰라!

 

칠불암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난 뒤, 신선암을 향해 출발했다. 얼마 전 <1박2일> '경주 편'에서 일행들이 낭떠러지 같은 바위를 끼고 돌아서, 바위 속에 날아갈 듯 앉아계신 부처님을 뵙고 감탄하던 그 곳이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산길을 오르는데, 처음에는 걸을만하더니 이내 급경사가 나타나는 통에 네 발로 걷는 것이 편할 지경이다. 무심코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가 호흡은 가빠지고, 카메라는 바위에 부딪힐까 조심스럽고,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 다행히 그런 시간이 아주 오래지는 않아, 허위허위 오르고 보니 신선암이 눈앞이다.

 

남산을 오르며 가장 뵙고 싶어 했던 부처님인지라 올라오느라 가쁜 숨으로 얼결에 마주치기는 싫었다. 그래서 1박2일팀이 그러했듯,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바위를 끼고 안으로 들어선 뒤, 그제야 천천히 눈을 돌려 '신선암 유희좌상'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음 한 켠이 '솨아~'하고 씻겨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날아갈 듯한 기분'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보는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올라올 때 힘든 것은 그새 다 잊혀지고 그저 바위 속에 앉아계신 부처님께 오롯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신선암 유희좌상 밑으로는 칠불암이 아득하게 내려다 뵈고, 앞으로는 탁 트인 남산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하지만 그 멋진 풍광도 잠시일 뿐, 시선은 여전히 바위 속에서 언제 걸어 나오실지 모르는 부처님을 향해 있다.

 

신선암 부처님은 가부좌에서 한 쪽 다리를 풀어 내려놓은 '유희좌'를 하고 계시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편안한 얼굴로 구름 위에 앉아계신 모습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그 편안한 모습을 뵈니, 내 마음 속의 잡념도 그 구름에 같이 실어 보낼 듯하다.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구름 속의 산책' 마냥 내 마음도 절로 편안해진다.

 

구름결에 잡념을 떨쳐낸 덕분인지, 내려오는 길은 조심스럽기는 해도 아까처럼 힘겹지는 않다. 오랜만의 산행이 힘겨울 법도 한데, 좋은 모습의 부처님을 온종일 뵙고 나니 마냥 좋기만 하다. 온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아로새긴 신라인의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름다운 그 모습도 오래도록 눈에 선하다.

 

이틀을 계획하고 온 경주남산행. '내일은 또 어떤 부처님을 뵙게 되려나?'하고 잔뜩 기대를 하며 첫 날을 마무리한다. 오늘 밤은 어쩐지 좋은 꿈을 꾸며 잠들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불산(佛山), 경주남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총 3편 중 두 번째 글입니다.


태그:#경주, #남산, #서출지, #신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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