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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는…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을 결의하며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 회사는 비상인력운영을 실시한다. 그 비율은 무급휴직/영업전직(48%), 희망퇴직/분사(52%)를 기준으로 한다.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실질적 방안으로 주간 연속 2교대를 실시한다. … 향후 경영상태가 호전되어 신규인력 소요가 발생하는 경우 공평하게 복귀 또는 채용한다.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에 대해서는 정부, 지역사회 및 협력업체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취업알선, 직업훈련, 생계안정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 회사는 6월 8일 퇴직자 중 일반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에 대하여 그동안의 갈등을 치유하고 희생의지를 모으기 위하여 형사상 고소고발은 취하하며…."

 

위 내용은 지난 2009년 8월 6일, 쌍용자동차(쌍용차) 노동조합이 쌍용자동차주식회사 이유일, 박영태 공동 관리인과 합의한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합의서'(8·6합의) 중 일부다.

 

그러나 이 합의 내용은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줄도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파업을 이끌었던 한상균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2년이 넘도록 차디찬 쇠창살 아래서 형을 살고 있으며,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 19명은 구조조정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쌍용차는 2009년 2646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면서 '1년 뒤 생산량에 따라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들을 차례로 복귀시키겠다'고 합의했으나, 비정규직 54명을 새로이 고용하면서도 그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노사합의서 한 줄도 지켜지지 않아

 

쌍용차 노조는 지난 12월 7일부터 희망텐트촌을 이끌어오고 있다.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쌍용차 희망텐트로 연대의 물꼬를 돌린 것이다. 평택 칠괴동 쌍용차 본사 앞에는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도 5~6동의 텐트가 비닐을 뒤집어쓰고 서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1300여 명의 시민과 노동자가 모여 제1차 '쌍용차 포위의 날'을 진행했다. 이어 1월 13일에도 1박 2일에 걸쳐 2차 '쌍용차 포위의 날'을 진행할 계획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전 국민의 화두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1월 5일, 평택 희망텐트촌을 찾았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신동기(36) 조직부장에게 희망텐트촌이 목표로 하는 것을 물었다. 그는 "희망텐트촌은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쌍용차는 그 중 하나로 이슈화됐을 뿐 이제 해고자와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됐다는 이야기다. 

 

현재 희망텐트촌에는 20여 명 노조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영하의 날씨에 노숙인과 같은 열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텐트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매 끼니 함께 밥을 해먹고, 매일 번갈아가며 쌍용차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신동기 조직부장은 "우리가 뭘 잘못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억울합니다"라는 말로 지난 2년 반 동안 이어져 온 투쟁을 말한다. 그는 77일 옥쇄파업 당시에 해고자 명단에 없었음에도 파업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이후 징계해고를 받고 현재까지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잘못한 것도, 무능한 것도 아닌 사람들이 해고당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었죠"라며 "그리고 노조원으로서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신 조직부장은 노조원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아빠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다. 그는 그동안 생계활동도 못했다.

 

"정부가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쌍용차를 매각할 때 이미 '먹튀'가 예견돼 있었습니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과 인력 유출을 적극적으로 막았다면 정리해고는 없었을 겁니다. 회사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며 3000명 가까운 노동자를 해고했어요. 그런데 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것을 만들어낸 이들은 다름 아닌 정부와 경영자였죠. 그런데 노동자만 퇴출되고, 당시의 정부와 경영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회계조작을 통한 고의 부실로 정리해고?

 

지난 2010년에는 정치권과 쌍용차 노조를 통해 '쌍용차 경영진이 고의적으로 회계를 조작하고 부실을 부풀려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즉 쌍용차 소유 부동산의 잠재적 부실규모를 크게 부풀리는 회계조작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신청을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이 결국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는 주장이다. 현재 쌍용차 노조 앞 현수막에는 '회계장부 부실조작으로 쌍용차 파업은 유도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당시 정비부서에 소속돼 있다 해고당한 이현준(44)씨는 노조사무실의 칠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쌍용차 사태로 인한 노조원들의 재판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현준씨는 "모든 노동자를 범법자로 만들었습니다"라며 "그 모든 일의 정점에 정리해고가 있는데, 우량기업을 회계조작으로 부실기업으로 만들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한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진실규명이 필요합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신동기 조직부장은 지난 '2009년 8·6합의'가 전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1년쯤 지나서 생각해 보니 '(정리해고 단행부터 이후 8·6합의까지의 과정들이)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한 수작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중국과 인도, 두 차례 걸친 매각의 피해와 손실은 오직 노동자만이 떠안은 셈이었다. 신 조직부장은 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다.

 

"나무가 있어요. 몇 년 동안 물도 거름도 안 주고 열매만 따먹었습니다. 이 나무가 잘 자라고 다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마힌드라도 '장기 경영할 생각이 없다, 기술 이전이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팔아먹었습니다."

 

그는 쌍용차의 구조조정을 국가적 차원의 구조조정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노조는 협의의 대상으로 국가를 가장 앞세운다.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라는 빌미로 정부가 구조조정을 유도했고, 더불어 쌍용차의 옥쇄파업을 폭력으로 탄압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회사에 투자를 강제하고 그래서 회사의 경영이 정상화돼야 해고자 복직이라는 요구가 실현될 수 있다고 쌍용차 노조는 말한다.

 

경영 상의 이유로 정리해고... 그래서 쌍용차는 나아졌나?

 

구조조정이 회사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방안이었다면 쌍용차는 2009년 정리해고 이후 경영정상화가 이뤄졌어야 논리상 맞을 것이다. 하지만 쌍용차는 현재도 아무런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여전히 기술만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해고 전 주·야간으로 돌아가던 공장은 현재 주간에만 돌아간다. 회사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2009년 이후 오히려 고사하고 있다. '기획 파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는 대목이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이야기가 여기 쌍용차의 이야기이다.

 

죽어간 19명의 쌍용차 가족 중에는 비해고자 2명도 포함돼 있다. 19명이란 이 숫자는 오늘 이곳의 참담하고도 비극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전에도 노조는 더 죽어나갈 것이라 예측했고, 지금도 노조는 또다시 죽음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정부와 자본은 그 죽음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신 조직부장이 말한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봅니다. 해고자와 그 가족을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해고자와 그 가족의 95%가 우울증을 앓고, 53%가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통계는 해고가 한 사람과 그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현재 쌍용차 공장 내부의 사정 또한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노동 강도가 비약적으로 심해지고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가 없으므로 점점 더 열악한 상황일 것이라 막연히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주·야간 교대도 없어졌으니 제대로 된 임금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내부에선 아직도 노동자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99%를 위한 세상을!

 

이현준씨는 27세에 쌍용차에 입사해 15년 동안 '뼈 빠지게' 열심히 일했다. 일해서 두 딸도 키워내고 조그만 집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제는 갈 데가 없다. 쌍용차 해직 노동자임이 밝혀지면 어디에서도 고용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희망텐트로 이제야 회사와의 싸움이 시작된 듯하다"고 말한다. 또 그는 "이 싸움이 단순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법 재개정을 위한 싸움에 나서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왜 이 싸움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구조조정이요? 단기간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건 아닙니다. 자본가는 1%이지만 우리는 99%가 쓰는 물건을 만드니까요. 99%가 먹고살기 좋아져야 우리 사회가 살아나는 거죠."

 

이제 시민과 노동자, 사회적 약자가 모두 모여 사회적 합의서를 써야 할 때다. 그 합의서에는 '비정규직과 해고자가 없는 세상' '노동자가 땀 흘린 만큼 대우를 받는 세상' '생계의 위협으로 목숨을 져버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도록 모두가 연대해 함께 싸우자는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다.

 

지난 부산 한진중공업 사태를 승리로 이끈 것은 '희망버스'로 대변되는 일반 시민들의 연대였다. 이제 그 희망버스가 향해야 할 곳은 쌍용차다. 연대만이 99%를 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신 조직부장은 노조사무실에서 다 같이 함께 먹을 점심을 준비했다. 그는 혼자 먹을 밥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먹을 점심을 준비한다.

 

그 자리에 우리의 작은 보탬이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밥은 뭐니뭐니 해도 여럿이 함께 먹는 밥이 최고니까.

덧붙이는 글 | [후원안내] 쌍용차 지부는 재정사업으로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전화(1577-6406)하면 수익금의 15%가 투쟁기금으로 적립된다. 후원물품을 보낼 수도 있다. 주소는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588-2번지 상가A동 104호.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쌍용자동차, #희망텐트, #쌍용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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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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